'당신이 믿고 있는 것들 중 상당수는, 사실 당신의 생각이 아니다'
생각이라는 것은 과연 개인의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생성되는 것일까, 아니면 언제든 외부에서 만들어지고 조작할 수 있는 것일까,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사례가 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 즉 '지구 평평론자'들은 흔히 '무지하거나 비이성적인 집단'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들 중 상당수는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공학이나 과학, IT분야의 고학력자도 적지 않다.
이들은 어느날 갑자기 '지구가 평평하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왜 지평선은 항상 평평해 보이는가', '왜 비행기 항로는 직선처럼 보이는가'
이러한 질문까지는 충분히 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런 최초의 질문은 아주 작을 수 있다. 다만 우연하게 비슷한 의문을 품었던 이들과 커넥션이 생기면 그 뒤로는 개인 내부가 아니라 집단이 제공하는 '서사'를 따라가게 된다.
집단에서 만들어진 서사는 '신념'으로 바뀐다. 그들 내부의 결속은 '필터버블'을 형성하여 자신들의 논리에 '확증편향'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보는 유튜브 알고리즘도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의문을 가지고 가벼운 질문을 던진다고 해보자. 우연찮게 하나의 영상을 클릭 했을 때, 그 우연에 의해 다음 영상은 비슷한 추천 영상이 올라온다. 몇번의 선택이면 흔히 말하는 '필터버블'에 갇혀, 자신의 생각에 '확증편향'을 갖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이 믿음은 '정보부족'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정보 과잉 속에서 '선택적으로 정보를 구성한 결과'다. 자신이 보고 싶은 정보만 보고, 믿고 싶은 설명만 연결한 끝에 하나의 완성된 '세계관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세계관 안에서 모든 반대 증거는 '조작'이고, 모든 반론은 '세뇌'라고 인식한다.
여기에 '딱'하고 들어 맞는 일상 심리 용어가 있는데 바로 '인지부조화'다.
인지 부조화는 1950년대, 한 가지 이상한 집단을 관찰하다가 만들어진 용어다. 미국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왜 사람은 틀렸다는 증거 앞에서도 생각을 바꾸지 않는가'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당시 미국에는 '한 여성'이 이끄는 소규모 종교 집단이 있었다. 그 여성은 스스로 외계인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고로 곧 대홍수가 일어나 지구가 종말할 것이며, 자신들만 외계 우주선에 의해 구출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예언은 날짜와, 시간까지 구체적이었다.
신도들은 당연히 이 말을 믿었다. 그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재산을 처분하고, 가족과의 관계도 단절했다.
그러던 어느날 여성이 예언했던 그날이 왔다. 그러나 실제로 당일에는 대홍수는 커녕 맑은 날씨가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외계인은 당연히 오지 않았고, 홍수도 없었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아,.. 우리가 속았구나'하고 생각해야 한다. 다만 대부분의 신도는 정반대로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의 믿음'에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자신들의 순수한 믿음과 기도가 지구를 구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신들의 기도가 외계인에게 닿아 그들의 계획을 바꿨다는 논리로 변경된 것이다.
이 장면을 목격한 '페스팅거'는 이렇게 정리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믿음을 바꾸기보다 현실을 재해석하는 쪽을 선택한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걸었기에 그들의 믿음은 곧 그들의 정체성이 되어 버린다. 단순한 믿음에 '시간, 돈, 관계, 자존심'이 얽히면서 '믿음'이 곧 '자신'과 일치화된다. 이 과정에서 그 믿음을 바꾼다는 것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바와 같다. 고로 그들은 '믿음'을 바꾸기보다 '새로운 해석' 즉, 망상으로 스스로를 유지한다.
'내가 믿어온 것'과 눈앞에 현실'이 충돌할 때 생기는 정신적 긴장상태, 페스팅거는 이를 '인지부조화'라고 불렀다.
중요한 점은 이렇다. 인지부조화는 무지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확신이 강할 수록 생긴다. 투자할 것이 많을수록 더 강하게 작동한다. 고로 사람은 틀렸다는 증거 앞에서 생각을 고치지 않고 설명을 붙이고 음모를 만들고 적을 상정한다.
지구평평론이나, 외계인 은폐론, 극단적 종교 신념도 모두 이런 구조에 놓여 있다. 굳이 멀리 갈 것도 없다. 최근 '젠더 갈등', '세대 갈등', '정치 이념 갈등'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갈등에 극하게 몰입하는 경우, 그들은 웬만해서는 그 신념을 바꾸지 못한다. 다만 그들이 그런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은 아주 작은 의심과 생각에서 시작을 했고 그런 이들이 더 쉽게 모이도록 하는 알고리즘도 한 몫 한다.
최근 이런 사회 문제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추세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극한 대립으로 양극화 되어 있는 모습에서 우리는 쉽게 '집단 망상'에 대해 체험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보면 늘 안도한다. '저 사람들은 극단적이다' 혹은 '나는 저 정도는 아니다'
다만 '집단망상'의 저자 '조 피에르'는 '집단망상'을 특정 집단의 병리로 다루지 않는다. 그저 '정말 스스로 믿는 다고 생각하는가'하고 묻는다.
생각은 개인 내부에서 태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언제든 환경에 의해 유도되고, 집단에 의해 강화되며, 알고리즘에 의해 반복된다. 또한 그 생각에 시간고 ㅏ감정, 관계와 자존심이 얽히는 순간 그것은 더이상 의견이 아니라 '자아'가 된다.
그뒤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검증하기보다는 확증편향에 의해 더 견고해 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