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님의 서재
  • 메이지유신
  • 박경민
  • 21,600원 (10%1,200)
  • 2025-12-05
  • : 940

1853년, 일본 에도 앞바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군함들이 나타났다. 당시 일본의 배는 대부분이 목선이었다. 일본 배들이 '풍력'에 의존하던 시기다. 바람이 멈추면 배도 함께 멈췄다. 반면 미국에서 온 군함은 달랐다. 검은 군함은 '증기선'이었다. 석탄을 태워 움직였고 끊임없이 연기를 뿜어댔다. 바람과 상관없이 전진했고, 연기를 내뿜었다.


 선체는 검게 칠해져 있었고 대포가 노출되어 있었다. 이 배가 일본인들의 눈에는 기이하게 보였다. 익숙한 배의 모습은 아니었다. 이 사건 이후 일본 사회는 '쇄국정책'으로는 더이상 국가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당시 일본을 통치하던 도쿠가와 막부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개항을 둘러싸고 그들은 우왕좌왕했다. 그 사이 내부 통제력도 약해졌고 막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1868년, 정치 권력은 막부에서 천황 중심의 정부로 다시 넘어갔다. 이 정권 교체가 '메이지 유신'이다.


 같은 시기, 조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 역시 오랫동안 쇄국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선도 서양 세력의 접근을 경계하고 있었고, 이양선이 해안에 나타나 통상요구와 무력 시위를 하곤 했다. 본질적으로 조선이 받은 충격은 일본과 본질적으로 같았다.


 여기서 '일본'과 '조선'은 각각 다른 선택을 한다.


 조선은 체제를 바꾸기보다 유지하는 쪽을 택한다. 외세의 접근은 '막아내야 할 위협'으로 인식했고 통상 거부로 이어졌다. 덕분에 내부 권력 구조는 유지됐다.

 반대로 일본은 권력 구조부터 바뀌었다. 막부를 해체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국가 운영 체계를 다시 짰다.


 19세기 중반 미국과 유럽은 '산업혁명' 이후 공급력 폭발이 일어났다. '증기기관'이 돌아가고 기계가 물건을 생산하면서 공급이 늘었는데 그것을 소비할 수요처를 찾기 힘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는데 물건을 판매할 판매처, 값싼 원료를 사올 수입처가 필요했다. 이 시기를 경제사에서는 '산업자본주의의 과잉 생산 단계'라고 본다.


 조금더 크게 보자면 '제국주의'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보면 '동아시아'의 입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당시 '미국'과 지금의 '미국'은 꽤 다르다. 당시의 미국인구는 일본보다 적은 수준이었고 조선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인구가 2500만에서 3500만 수준인 반면 청나라의 인구는 4억에 이르고 조선 인구도 2000만에 가까웠다.


 당시 서구의 입장에서 동아시아는 '문명화 해야 할 지역'이전에 물건을 팔 수 있는 거대 소비 집단인 편이다.


 당시 '쇄국정책'에 대해서 지나친 비난이 있을 수 있지만, 동아시아 삼국이 쇄국을 유지하려던 이유는 지금의 무역 경제 논리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생산설비가 불균형한 두 국가간의 자유무역은 곧바로 후진국가의 국내 경제 붕괴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삼국의 경우에는 농업 중심 경제다. 화폐보다 '곡물'이 실질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생산성이 낮고 미곡반출은 인건비 상승과 물가 상승으로 직결됐다.

 서양 공산품이 대량 유입될 경우, 값싸고 품질이 일정한 물품이 시장에 쏟아져 들어오게 되고 그렇게 되는 경우에 국내 수공업 전통 산업이 바로 붕괴하게 된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쇄국은 '시대착오'라기보다 '경제 방어 정책'에 가까운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역시 '조선'과 마찬가지로 개방이 위험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다만 1853년 검은 군함의 등장으로 일본은 '개방' 여부가 '시기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 조선에도 '제너럴 셔먼호'가 등장한다.


 여기서 차이점이라면 일본 앞바다에 온 '검은 군함'은 미국의 '해군 군함'이었고 '조선'이 마주한 배는 '미국 민간 상인'이 운용하는 '무장상선'이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군함'을 통해 '외교 요구'를 받은 상황이고, '조선'의 경우에는 '민간 상선'이 '무단 침입'한 사건에 가깝다.


 이처럼 배의 차이가 인식의 차이를 만들었고 결국 일본은 '개항'을, 조선은 '쇄국'을 선택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가장 먼저 손댄 것은 '제도'였다. 제일먼저 '신분제'를 폐지했다. '사무라이'가 사라지고 '농민, 상인, 무사'는 법적으로 같은 신분이 됐다. 이는 프랑스나 미국에서 말하는 '사회적 평등'이라기 보다 '인력 동원'을 위한 정비에 가까웠으나 어쨌건 '일본사회'도 역시 근대의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은 분명했다.


 1871년에는 '번'을 폐지하고 '현'을 설치했다. 지방 영주가 세금을 걷던 구조를 없애고 '국가'에서 직접 세금을 거뒀다. 이때부터 일본은 '국가' 단위 예산을 운용할 수 있게 됀다.


 또한 '세금'을 걷는 방식 역시 변화했다. '지조개정'을 통해 세금을 쌀이 아니라 현금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 조치 하나로 일본 경제의 기준이 '곡물'에서 '화폐'로 이동한다. '쌀'이 반출되면 '물가가 상승'하는 구조에서 벗어나는 기반이 만들어지면서 자유 무역구조에서 버틸 수 있는 최소 조건이 만들어졌다.


 근대화 초기에 일본의 산업정책은 더 직접적이었다. 초기에는 국가 주도적으로 공장을 세워 산업화를 시작했으나 이후 수익구조가 '민간'에게 넘어감녀서 '미쓰이, 미쓰비시'와 같은 대규모 자본 집단이 만들어졌다. 유학생을 대규모로 서구로 보내고 동시에 외국 기술자를 일본으로 불러 들였다.


 같은 시기 조선은 다른 선택을 했다. 조선은 '질서유지'를 위해 '개혁'을 뒤로 미루었다.


 '개항'을 '경제문제'가 아니라 '안보문제'로 인식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봤을 때, 조선인들은 안보적으로 나름 괜찮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일본이 국가 주도로 인력을 재편하고 산업을 키우던 시기, 조선은 정치 불안과 민란을 위해 개혁을 '위험' 요소로 여기고 '체제 안정'에 힘을 기울였다.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구가 겪었던 것과 같은 단계에 진입한다. 공장을 돌리기 시작했고 생산량은 늘었다. 공급이 늘어나 국내 시장만으로는 그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일본 역시 '넓은 판매처'를 필요로 했다.


 '처음'에는 그들 역시 내부 수요를 키우려고 했으나 한계는 분명했다. 사업을 하다보면 공장은 끊임없이 돌아가고 공급이 과잉되면 '상품가격'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온다. 고로 '시장확대'는 필연적이다.


 '미국'과 '프랑스' 등 여러 서구 국가가 문을 두드렸으나 끝까지 버텨낸 두 시장인 '청'과 '조선'이 남아 있었다.


 청과 조선은 여전히 완전히 열리지 않은 시장이었다. 조선과 청은 서구에게는 꽤 거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부담이 큰 시장이었으나 일본에게는 달랐다.


 지리적으로 가가웠고 군사적 접근도 용이했다. 또한 이미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대상이기도 했다.


 고로 일본 역시 서구가 했던 판단을 그대로 하게 된다. 


1876년 일본은 군사력을 배경으로 조선의 문을 연다. 강화도 조약은 통상조약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질은 시장 개방에 가까웠다. 일본 상품이 들어오고 조선의 쌀과 자원이 빠져나갔다.


 메이지 유신으로 시작된 일본의 근대화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시장을 더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뀐다. 결국 근대화는 '제국주의'로 이어졌다.


 역사를 감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선과 악, 가해와 피해의 구도로만 정리하면 그 시대가 왜 그렇게 움직였는지 보이지 않는다.


 19세기 동아시아의 선택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는 이미 공급 과잉을 전제로 돌아가는 체제로 넘어가 있었고, 그 질서에 들어가지 못한 국가는 의지와 무관하게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은 그 구조에서 비교적 빠르게 적응한 편이고, 조선은 그 구조에서 '체제 안정'을 더 중요하게 봤다. 어느 쪽이 옳았는지 보기에 앞서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하는 질문을 하는 쪽이 좋은 것 같다.


 조선이 무능하고 일본이 단순히 '앞서 나가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역사가 바뀌었다기 보다 무수한 우연과 흐름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생각이 든다. 


 박경민 작가의 '메이저 유신'을 읽으면서 단순히 '일본'이 먼저 개항해서 '근대화했다'라는 인식이 많이 사라졌다. 일본 역시 조선처럼 많은 갈등과 선택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사실을 보게 되니, 흥미로웠다. 일본의 근대사에 대해 이처럼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준 '박경민 작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