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인도에 한 '비구니'가 있었다. '비구니'는 삭발하고 낡은 장삼을 입는다.
삭발과 낡은 장삼이지만 그녀은 매우 아름다웠다. 그러다 마을에 한 젊은 청년이 '비구니'를 보고 반한다. 그녀의 눈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청년은 '비구니'의 눈을 찬미하며 다가갔다. '비구니'는 청년의 고백을 정중하게 거절한다.
"외모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비구니의 맑고 고요한 그녀의 눈에 대한 청년의 찬미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청년은 그녀가 '비구니'로 사는 것이 아깝다고 여겼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보석처럼 맑고 아름다웠다.
청년은 다시 '비구니'에게 구애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비구니는 계속해서 거절 의사를 비친다.
그래도 청년은 포기하지 않고 날마다 같은 말을 반복하며 '비구니'를 찾왔다.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 청년을 그녀는 조용히 바라봤다. 그러고는 앉은 자리에서 자신의 한쪽 눈을 뽑아 청년 앞에 내던졌다.
"그렇게 아름다우면 가지고 가십시오."
청년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청년이 사랑한 것은 '그녀'였을까. 그녀의 '눈'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언젠가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이었을까.
이 이야기는 '백유경'에 나온다. 외적 아름다움이란 얼머나 허멍한가. 붓다의 이야기를 보면 육체란 '똥자루'와 다르지 않다는 구간이 자주 등장한다. 우리의 육체란 실제로 배속 가득 오물을 싣고 다니는 '똥자루'와 같다. 그 외형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사실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
'청년'이 사랑한 것이 '외모'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은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사랑은 '외형'만큼 부질없고 때로는 조건이 있을 수 있다.
조건이란 언제나 변화무쌍하다.
고로 우리의 사랑은 얇디 얇다. 대부분 나이가 들면서 사라지거나 의미가 없어지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진정한 사랑은 어쩌면 '무조건적인 사랑'인지 모른다.
이성간의 사랑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사랑이 그렇지 않은가.
청년은 자신이 그토록 찬미하던 상대의 '눈'을 얻었지만 도망치지 않았던가. '사랑'의 대상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데 몇분도 걸리지 않았다.
'사랑'의 모양을 오해하면 일어나는 일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살인 사건은 배우자 혹은 연인 등을 상대로 범죄가 일어난다. 대한민국의 살인 사건 4건 중 1건은 친밀한 파트너에 의해 일어난다.
사랑의 모양을 오해하면 일어나는 일이다. 실제 대부분의 살인 사건은 왜곡된 애착과 집착에서 비롯된다.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이 상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변질될 때, 종종 이야기는 비극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