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에서 종교적 율법에 따라 육식을 금하는 것은 상당히 일반적이다. '힌두교'는 소를 신성시 여겨, 소고기를 먹지 않는 금기 풍습을 인도에 만들었다. '이슬람'은 돼지고기를 부정한 것으로 여겨 섭취를 금지했고, '유대교'는 돼지고기나 갑각류 등의 특정 동물 섭취를 금지했다. 불교에서는 계율에 따라 채식주의를 권장하며, 천주교의 사순절에는 전통적으로 고기를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경우에도 육식을 금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농업혁명'이라 불리는 농업기술 혁신이 일어나기 전까지, 생선이 유럽인의 식단을 지배했다. 프랑스 부르봉왕조의 창시자인 '앙리 4세'가 '모든 평민이 일요일마다 닭고기를 먹을 수 있는 살기좋은 나라로 만들겠노라 공언한 때가 16세기다.
인류 역사에서 닭고기가 현대와 같이 풍족하게 식단에 올라온 것은 비교적 최근이라는 의미다. 돼지의 경우에는 가뜩이나 물이 부족한 '이슬람 문화권'에서 무섭게 물을 해치우는 가축이다. 얼마나 위협적이냐면 사료보다 물을 더 많이 마실 정도다. 종교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집단 전체를 위협에 빠뜨릴 수 있을 정도다.
어쨌건 사료나 물도 들지 않고 저렴하며 단백질과 열량이 풍부한 식단이라면 '생선'이라고 볼 수 있다. 알프스 북쪽 유럽에서는 대륙 서쪽의 북대서양에서 잡히는 대구와 청어를 즐겨 먹었다. 이곳의 청어는 가격도 저렴하고 어획량도 많았다. 이 물고기를 잡아다가 이들은 염장하고 훈제하여 보관하고 운송,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은 이들에게 막대한 경제적 이윤을 만들어 냈다.
다만 청어의 경우에는 서식지를 옮겨 다니는 습성이 있다. 고로 당대의 청어 어장의 변화 위치가 유럽 국가의 세력 판도를 바꿀 정도로 영향을 미쳤다. 근해에 청어 어장이 형성되면 해당 국가는 큰 돈을 벌었고 국력을 키울 수 있었다. 다시 근해의 청어 어장이 사라지면 이들은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보며 국력이 약해질 정도였다.
11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대규모 갯벌과 진펄 간척사업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간척과 제방 공사는 북해 연안, 특히 네덜란드 지역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간첩사업으로 북해에 거대한 청어 어장이 형성된다. 이로써 저지대 땅에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진다. 이 땅이 낮은 지역은 오늘날 '네덜란드' 지역이다. 네덜란드는 청어 무역을 기반으로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다. 13~14세기에는 한자 동맹과 연결되어 유럽 북부의 경제 중심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로써 네덜란드가 해양 강국이 되는 계기가 된다.
참으로 무력할 정도로 어이 없게도, 인간의 역사를 결정 짓는 것이 대로는 '지리', '태양의 흑점활동' 혹은 '청어 서식지 변화' 따위에 의존되는 경우도 많다.
이후 네덜란드는 영토나 인구에 비해 조직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한다. 이로써 이들은 아시아 등의 해양 무역을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다만 아시아 항해는 카리브해나 아프리카에 비해 시간과 비용이 적게는 두배에서 많게는 네배까지 들었다. 또한 이들의 선박은 여러 이유로 대략 20%가 침몰하곤 했다. 이런 이유에서 네덜란드는 원양 무역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주식, 보증, 채권'과 같은 신용거래를 활성화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바로 '동인도 회사'다. 이들은 해상 무역을 독점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 받았고 막대한 이윤을 창출했다. 이로써 정부로 부터 군대 편성 같은 군사적 권한도 위임받는다. 이 '회사'들이 병력과 함대를 앞세워 아시아, 아메리카 각국을 '식민지화'하기 시작한다.
14세기 후분 부터 청어 어장이 서서히 북상하기 시작한다. 해류의 변화나 과도한 어획, 해양 환경의 변화등으로 어장 중심지가 서서히 북상한 것이다. 이어 이들의 서식지는 네덜란드 해안에서 점차 멀어진다. 이로써 청어 서식지가 영국 동해안과 덴마크, 노르웨이 북쪽으로 옮겨진다. 영국이 새로운 청어 어업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물론 '청어 서식지'가 변해서 '세계 패권'이 옮겨갔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실제로 네덜란드는 어장 쇠퇴로 경제적 타격을 입었으나, 이미 축적한 자본과 항해술을 기반으로 이후 무역과 상업 중심의 해양 국가로 자리잡았다. 다만 영국과 북유럽 국가들이 청어 어장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새로운 경제적 이익과 성장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영국은 네덜란드와 달리 인구가 풍부하다. 또한 육군을 유지할 필요가 없는 섬나라다보니, 소규모의 상비군을 운영해도 될 정도로 군비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런 지리적 배경으로 내실을 다져온 영국은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재정혁명을 이어받아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에 완성했다. 그리고 국력면에서 월등했던 프랑스를 제치고 서구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더니 18세기 후반에는 산업혁명을 일으키며 역사상 최초의 본격 자본주의인 산업자본주의의 서막을 연다. 이후 칠련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함으로써 영국은 인도의지출을 가로막을 유럽의 경쟁자가 없어졌음을 알게 된다.
당시 무굴제국은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었다. 인도는 목화의 원상지이기도 하고 당시 세계 최대 면직물 생산지였다. 다만 무굴제국은 아우랑제브 사후 급속히 몰랍하며 해체됐고 이곳에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진출하면서 산업혁명으로 만들어진 증기기관과 면직물 생산방식의 변화로 급격한 세계 역사의 판도가 바뀐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