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통, 화, 불안감에 휩쌓였을 때, 그것이 그저 '상념'이라는 것을 깨우치면 그것으로 족하다. 악몽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단 하나다.
'아, 꿈이었구나' 하고 꿈에서 깨는 것이다.
우리는 감각기관을 통해 사물을 인식한다. 눈은 빛깔을, 귀는 소리를, 코는 냄새를, 혀는 맛을, 몸은 감촉을, 뇌는 법을 인지한다.
이런 인식 대상을 육경 즉,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라고 한다. 또한 인식 기관을 육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 한다.
다시 눈이 빛깔과 모양을 인식하는 것을 안식이라하고 귀가 소리를 인식하는 것을 이식이라 하며,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 작용하는 것이 육식이다.
이렇게 감각 기관을 통해 인식 작용이 일어난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카메라와 녹음기라는 입력장치가 기록해 둔 바를 다시 돌려보는 일과 같다. 관제센터에서 녹화된 영상과 소리를 다시 재생하면 지나갔던 그 상황이 마치 다시 일어나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수상행식(色受想行識)'은 불교에서 말하는 오온(五蘊)의 개념이다
'반야심경'은 설명한다. 인간 존재는 다섯가지 요소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 모든 것은 공하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불교 수행의 핵심이다
색(色): 물질적인 요소,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
수(受): 감각적 느낌, 감수작용
상(想): 인식, 개념화, 기억
행(行): 의지적 형성 작용, 정신적 활동
식(識): 분별 작용,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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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과거를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인식과 저장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시 재생하는 작용에 있어서 그렇다.
이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결을 같이 한다. 칸트는 인간의 인식이 '물자체'에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물자체'란 사물 그 자체를 의미하는데, 우리는 대상에 대해 감각과 인식능력에 의해 해석된 것만 알 수 있지, 대상 그 자체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방식으로만 알 수 있는데,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현상'일 뿐이며 우리 감각과 인식 구조에 의해서 재구성된 것일 뿐 사물 자체의 본질은 아닐 수 있다.
고로 그것이 객관적 진리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칸트 철학이 말하는 '인식론적 한계'는 불교의 공 사상과 공통된 철학적 입장을 갖는다.
말이 어려워졌지만, 다시 말해서 우리는 눈 앞에 놓여 있는 사과를 두고도 그 '물자체'에 대한 정확한 본질을 알지 못할 수 있다. 하물며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한 해석은 더 불분명하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만지는 현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지나간 과거와 미래를 안다는 것은 얼마나 허무맹랑한가. 결국 그런 의미에서 현실의 모든 것도 사실상 '공'하고, 거짓을 인식하여 저장했던 과거의 기억조차, '공'하며, 그것으로 만들어낸 상념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공'하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는 지각과 인식이 왜곡되는 신경사례들이 나온다.
자신의 몸이 비상적으로 크거나 작게 느껴지는 증상들이다. 어떤 환자는 자신의 손이 거대해졌다고 느꼈고, 어떤 사람은 반대로 손이 작아졌다고 느꼈으며, 어떤 사람은 내 손이 내 것이 아니라고 느끼기도 했다. 이런 이상 지각증세는 '뇌 손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다리를 보고 '자신의 다리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경우, 거울을 보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하는 경우,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는 경우 등 체성감각 피질의 이상으로 신체상이 왜곡되어 느껴지는 경우들이 많다.
그들의 지능은 특별하게 우리와 다르지 않다. 다만 인식기관과 해석 기관의 능력차이로 그렇게 느낄 뿐이다. 과연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구조적으로 조금씩 그들과 가깝거나 멀뿐인데, 우리가 느끼는 인식과 해석은 과연 정상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 감각과 인식이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인정해야 한다. 신경학적 사례들을 보면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은 절대적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우리의 손 조차 사실은 다른 사람이 보는 것과 다르게 생겼을 수 있고 우리 바라보는 구름도 다른 사람이 보는 바와 다른 색일 수 있다. 고로 이런 허상 위에 생겨난 거의 대부분의 현실, 과거, 미래는 허상에 가깝다. 결국 연기로 만들어진 무언가처럼 잠시 그 형체를 이루다가 사라지는 듯 '공'하다.
고로 모든 것은 일장춘몽과 같다.
얼굴을 붉히는 것도, 어떤 고통, 화, 불안감에 휩쌓이는 것도, 모두 '공'하다는 것을 깨우치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것이 악몽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이고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