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대한민국 국민을 수능 등급으로 나눈다면 1, 2등급은 고작 760만명이다.
'공부 좀 했다'는 등급을 2등급까지라고 하면, 국민 나머지 4,300만 명은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도 국제 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일본이나 이탈리아, 스페인보다 높아 꽤 부유하게 사는 편이다. 그러니 공부라고 하는 것은 잘하면 좋은 것이지만 그렇게 못했다고 사람구실 못하고 산다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공부 못했던 그 친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의 작가 '구론산바몬드'는 1980년대 학창시절을 보냈던 X세대다.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이후 군대를 전역하고 영어 교육과로 전과한다. 우여곡절 끝에 임용고시를 치룬 그는 결국 영어교사가 된다. 20년간 교직이 있으며 그는 현재 중학교 교감 선생님으로 재직 중이다.
이 책은 '어떻게 살고 있냐?'하고 묻는 전화 통화으로 시작한다. 학창시절 공부 좀 했다는 친구로부터 걸려 온 전화다. '과연 공부 못했던 그녀석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하는 호기심으로 전화를 했을 것이라는 작가의 추측을 시작으로 '수필'은 시작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약간의 자격지심 같은 것이 일어났단다.
책은 학창시절부터 시간의 순서대로 진행된다. 공부 못했던 과거를 이야기하며 점차 성장해가는 과정을 기록한다. 제목과 다르게 수필은 '공부'에 관한 주제는 아니다. 평범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단순 이야기가 아니라 '에피소드 모음집'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꽤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 소재들이 워낙 자극적인 내용이 많기에 '아, 이래서 필명을 사용하셨구나' 싶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건데 학창시절 성적이 인생 성공의 등식은 아니다. 어쩌면 방정식에 가깝다. 분명 거기에는 '미지수'가 포함되어 있다. 그 미지수에 어떤 값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니 변수라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또한 굳이 비교해보자면 입력값에 출력값이 달라지는 '상자속 함수값'을 모르고 사는 바와 같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입력값이 아니라, 입력값을 변환하는 함수 속 숫자다. 다 같은 공부를 해도 다른 결과값을 내놓는다. 빌게이츠는 법학을 공부했지만 '컴퓨터 관련 회사'를 창업했다. 스티브잡스도 철학을 공부하고 '컴퓨터 회사'를 창업한다.
입력값이 전혀 출력값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곧 패배자라는 인식은 학교에서 강제로 심어진다. 어떻게든 하기 싫어하는 것을 하게 만들어야 하는 '공교육'이 '패배주의'나 '열등감'을 만들어 놓는 듯하다.
동기부여 할 수 밖에 없는 우리네 교육 현실이 안타깝다. 독일의 경우에는 진로가 빠르게 결정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바로 현장에 투입되기도 한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괜찮은 편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불완정한 미래로 인해 '일단 능력을 최상으로 끌어 올리고 보자'에 집중한다. 그러니 목적이나 본질 없이 경쟁만 치열해진다. 언제 겨울을 맞이 할지 몰라, 에너지만 축적하고 보는 살찐 야생곰 같다.
다시 책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수필은 적절한 허풍과 과장이 섞여 있다. 직접적인 표현과 긍정적인 마인드가 소설을 읽는 내내 즐겁게 했다.
'그렇지, 공부가 아니라 이런 마인드가 중요한 거지.' 생각해보면 삶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게 재밌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