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성술 살인사건 - 시마다 소지, 한희선 역, 검은숲(2020)
점성술 살인사건
줄거리
점성술사 겸 탐정, 미타라이에게 한 여성이 찾아와 ‘우메자와가 점성술 살인사건’을 의뢰한다. 40년 전, 밀실에서 살해당한 화가가 남긴 광기 어린 수기에 따라 살해된 여섯 딸의 시체가 일본 전역에서 발견되어 경찰이 대대적으로 수사했지만 결국 미제로 남은 사건이다. 여성은 미타라이에게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또 다른 수기를 건네주는데…….
페이지
pp.14-15
인간의 육체에는 이처럼 행성에 의해 강화된 부분이 한군데씩 있다. 예를 들어 양자리의 인간이라면 머리가 강화되고, 천칭자리에서 태어난 사람은 허리가 별에 의해 강화된다. 태어나는 순간 태양의 위치에 따라 강화되는 부분이 결정되는데, 바꿔 말하면 강화된 부분이 하나뿐이라는 점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살아 있는 동안 결코 인간이라는 흔해 빠진 존재 이상이 될 수 없는 것은 별의 축복을 몸의 한 부분에만 받았기 때문이다.
머리가 강화된 인간, 배가 강화된 인간, 이런 식으로 제각기 강화된 부분을 하나씩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 중에서 머리가 강화된 자의 머리, 가슴이 강화된 자의 가슴, 배가 강화된 자의 배 같은 식으로 서로 다른 부분이 강화된 인간 여섯 명을 모아 각각 강화된 부분만을 떼 내어 하나의 육체로 합성할 수 있다면 어떨까!
육체의 모든 부위에 행성의 축복을 받은 완벽한 육체, 빛의 무용수가 탄생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힘을 받은 자는 대개 아름답다. 만일 이 빛나는 육체가 여섯 명의 처녀로 만들어진다면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가 될 것이다. 캔버스에 여성의 완성미를 줄기차게 추구해온 자로서 이렇게 구현될 아름다움을 나는 무섭도록 동경한다.
p.173
“맞아요. 미즈타니 씨가 제 친구예요. 그 사건 때 정말 어떻게 하나 했는데, 여기 상담하러 왔더니 바로 해결해주셨다고 했어요. 미타라이 씨는 점뿐만 아니라, 그, 탐정 같은 재능도 있으시다는 말을 자주 하더군요. 아주 머리가 좋은 분이시라고.”
pp.265-266
이렇게 매일 별의 움직임을 뒤쫓으면서 살다 보면, 지구 위 소소한 우리의 행위는 허무한 게 정말 많아.
그중 제일 허무한 것이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소유하려는 경쟁이야. 그것만큼은 도저히 열중할 수가 없어. 우주는 천천히 움직이지. 거대한 시계의 내부처럼, 우리 별도 구석에 있는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톱니바퀴의 얼마 안 되는 톱니 중 하나야. 인간 따위는 그 끝에 들러붙은 박테리아 같은 역할이고.
그런데 이 패거리들은 시답잖은 일로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눈 한번 깜빡이는 시간 정도의 일생을 야단법석을 떨면서 보내지. 자신이 너무 작아서 시계 전체를 볼 수 없으니까. 그 메커니즘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자만하고. 참 우스워. 이런 생각을 하면 언제나 웃음이 나. 박테리아가 변변찮은 돈을 모아서 뭐가 된다는 거지? 관 속까지 들고 갈 것도 아니고. 왜 그런 시시한 일에 그렇게 열중할 수 있을까?”
p.420
“이 경우는 지폐와 다르니까, 잘라낸 시체를 테이프로 이어 붙일 수는 없습니다.”
미타라이는 흥분한 우리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따라서 그것을 대신할 강력한 접착제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니까 불투명 테이프의 역할을 한 것이 아조트라는 환상입니다. 이 이론인지 환상인지가 너무나 강렬하고 엽기적이어서, 우리는 시체의 일부분들을 옮겨서 맞추어본다는 지극히 간단한 생각을 하지 못한 겁니다. 각각 한 부분이 부족한 여섯 구의 시체가, 아조트를 만들기 위해 한 군데씩 잘려 나간 결과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p.437
“염색체는 어떤 것에서든 채취할 수 있어. 혈액에서도, 타액, 정액, 피부, 뼛조각으로도 알 수 있지. 그러니까 시체를 까맣게 태웠다고 해도, 백골이 되었다 해도 이제 이런 트릭은 무리야. 1936년이니까 가능했지. 지금이라면 백골로 만들어서 뼈를 보슬보슬한 가루가 될 때까지 갈아버리지 않으면 안 돼. 그렇게 하면 혈액형도 염색체도 골조직도 알 수 없게 되니까. 지금은 현미경 단위까지도 수사의 대상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현대는 범죄자에게 꿈이 없는 시대야.”
p.450
˝만주에 있었다고 했어.˝
˝만주……, 그렇구나, 영국의 범죄자가 미국으로 도망가는 것 같은 거네.˝
˝일본에 돌아왔을 때 기차에서 창밖을 보면, 우리는 창에서 보는 산을 먼 거리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개념으로 생각하잖아? 그런데 그녀는 일본 기차에서 보이는 산들이, 품에 뛰어들어 오는 느낌이었다고 했어, 일본은 좁으니까. 시적이고 참 좋지? 정말 인상적이었어.˝
˝그 시절은 좋았을지도 몰라. 지금의 일본인은 지평선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의외로 많아.˝
pp.457-458
“아니, 이 사건을 누가 해결했냐고? 너잖아? 그런데 완전히 무시당했어! 원래라면 지금쯤 네가 텔레비전인지 그런 데 나와서 훨씬 유명해졌을지도 몰라. 돈도 벌고.
아니, 네가 그런 생각하는 타입이 아닌 건 알아. 그래도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편이 살기 편한 경우가 많잖아. 이 일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해. 조금 더 좋은 건물로 옮기고 이쪽에 좀 더 멀쩡한 소파도 놓을 수 있거든?”
“그리고 이 집은 뇌 대신에 구경꾼 근성밖에 없는 정체 모를 저능한 인간들로 우글거리게 되겠지. 나는 집에 들어올 때마다, 네가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큰 소리로 불러서 찾아야 할 거야. 너는 이해 못 할지도 모르겠는데 지금 이 생활이 마음에 들어. 머리를 어딘가에 두고 온 패거리 때문에 내 페이스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
다음 날 일만 없으면 원하는 시간까지 잘 수 있어. 파자마 차림으로 신문도 읽을 수 있고. 좋아하는 연구를 하고, 마음에 드는 일만을 위해 저 문을 나가고. 싫어하는 녀석에게는 재수 없는 놈이라고 말할 수 있고, 백은 백, 흑은 흑이라고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말할 수도 있지. 이것들은 모두, 언젠가 형사도 말했듯이 세상이 상대해주지 않는 놈팡이라 불리는 것에 대한 대가로 손에 넣은 재산이야. 아직은 잃고 싶지 않아. 쓸쓸해지면 너도 있고, 나는 외톨이가 아니야. 이 생활이 정말 마음에 들어.”
p.504
세상일을 완전히 이해하기까지 글쓰기를 기다려야 하는 이유는 사실 없다. 나이가 얼마든 모르는 것은 있고, 젊을 때 잘 알다가 점점 잃어버리는 세계나 지식도 있다.
또한 이야기는 살아 있는 것이며, 그것이 만일 걸작이라면 쓴다는 행위 자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가르쳐준다. 많은 독자가 의미 있게 받아들인 이야기가 세상의 구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적에 쓴 것이어도 신기하게도 모순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쓰는 사람의 순수한 영혼을 통해 하늘의 누군가가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점성술 살인사건》을 읽고, 아하 이런 세계도 있구나, 재미있네, 라고 생각한다면 소설을 쓰는 걸 고려해보면 좋겠다. 당신의 내부에, 당신 자신도 모르는 거대한 능력이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분류(교보문고)
소설 > 일본소설 > 미스터리/스릴러소설
기록
2020.06.19(金) (개정판 2쇄)
초
다.
2008.05.01(木) (초판 1쇄)
신
다.
한 줄
안 본 눈 삽니다
오탈자 (개정판 2쇄)
못 찾음
확장
소년탐정 김전일 애장판2권(이진칸촌 살인사건) - 아마기 세이마루, 그림 사토 후미야, 이현미 역, 서울문화사(2006)
『점성술 살인사건』의 트릭은 아이러니하게도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무단으로 도용하여서 더 유명해지게 된다. 무단 도용에 대해서 미스터리의 저변을 넓힌다는 의미에서 시마다 소지는 법적 대응은 하지 않았고 영상화 제작은 반대하여서 만화책 버전에만 실린 에피소드.
데드맨 - 가와이 간지, 권일영 역, 작가정신(2023)
가와이 간지의 데뷔작이고 『점성술 살인사건』의 오마주. 6조각의 신체로 이루어진 데드맨이 나오는 가부라기 형사 시리즈. 초판 2013년, 개정판이 나왔다.
저자 - 島田荘司(1948)
원서 - 占星術殺人事件(1981)
구판 - 점성술 살인사건(1997)
구판 - 점성술 살인사건(2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