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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님의 서재
  • 달세뇨
  • 김재진
  • 13,950원 (10%770)
  • 2019-12-13
  • : 137

김재진의 장편소설 <달세뇨>(문학동네)
- 내 맘대로 후기


페이지 넘버가 없는 328페이지의 판권까지 읽은 후 책을 덮고 겨울 점퍼를 입었다. 절두산을 향해 걸었다. 다리를 절룩거리는 여자와 키 큰 남자가 팔짱을 끼고 내 앞에서 걷고 있었다. 그들의 뒷그림자 농도는 같았다. 절두산에 올라 2천 원짜리 초를 사서 성모마리아님께 올리고 기도를 하고 동쪽을 바라보며 만트라를 읊고 벤치에 앉았다. 우울증 약처럼 파란 하늘과 빈 속에 흘러든 소주 첫잔처럼 쨍한 햇살이 추웠다. 작은 두 손바닥에 기억을 쏟아 부었다. 혹시 D.S.(달세뇨) 악상 기호가 있지 않을까 하고...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있기에.


김재진 작가의 <달세뇨>는 여러 가지 흥미 넘치는 스토리와 보통사람들에겐 낯선 스피리추얼한 통찰이 섬세한 무늬로 직조되어 있는 소설이다. 전생, 윤회, 카르마, 채널링, 최면, 카를 융의 집단무의식, 유체이탈, 자각몽, 육체와 아스트랄체, 지구인과 외계인, 시리우스와 오리온자리, 플레이아데스, 과거, 현재, 미래의 병렬 개념, 여기에 고대에 가라앉은 전설의 아틀란티스 대륙 등 광범위한 영역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특이한 소재의 가벼운 판타지, SF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전생이나 카르마에 대해 낭만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짭잘한 재미를 본 소설이나 영화는 많다.
재미와 흥미를 우선 추구했더라면 누구보다 박진감 넘치고 황홀한 이야기를 들려줄 법한 김재진 작가는 그런 데는 애초에 흥미가 없어 보인다. 작가의 관심은 인간의 삶과 지구 안에서의 생명 순환, 그리고 더 나아가 우주 안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생과 사를 컨트롤하는 엄정한 톱니바퀴 같은 근원적 질서에 대한 진리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이 질서의 두 얼굴이자 하나의 법칙이 바로 삶과 죽음이다. 소설 제목 ‘달세뇨’는 중의적인 표현으로 삶과 죽음, 그리고 카르마를 지칭하고 있다. 이런 개념과 세계관은 작가 개인적 삶과 시와 에세이 작품에서 오랜 세월 추구한 구도자적 본성에 기인하고 있다.
김재진 작가는 시인, 소설가, 에세이 작가, 방송국 PD로 익히 알려져 있지만, 오래전부터 에니어그램 전문가, 20여 년 전 당시 국내에서는 생소했던 아봐타 코스의 고급 과정까지 수료한 바 있고 위파사나를 비롯한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 진행과 국내외 유수의 영성가들을 소개한 기획자로 활동했다. 그리고 <달세뇨> 집필을 위해 최신 최면기법과 타로카드를 배우고 영성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엄격한 예술적 소신을 지닌 작가는 <달세뇨>의 내용 상당량을 자신이 직접 체험하거나 검증(또는 깨달은 것)한 사실만을 까다롭게 선별해 담아내고 있다. 심지어 작가는 과거에 체험한 적이 있는 유체이탈과 자각몽을 생생히 다시 체험하기 위해 기초가 되는 공부와 실제 체험을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거듭해왔다. 또한 <달세뇨>에는 작가의 굴곡이 컸던 개인사가 반영되어 있다. 책 마지막 ‘작가의 말’에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돌본 작가의 회한과 사랑이 절제된 문장에 드러나 있다.


하유와 미리
하유는 주로 미얀마와 티베트, 중국의 성지와 오지에서 활동하는 여행 가이드다. 직업이 가이드이긴 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서는 자주 길을 잃고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미얀마의 쉐다곤 파고다에서 맨발로 걷다가 다친 미리를 운명적으로 만나 함께 살게 되지만 공전 방향이 다른 행성처럼 늘 멀어지기만 한다. 하유(하위자아, Lower Self)는 어떤 방향이나 목적 없이 불안하게 이국의 풍경 속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인물인데 반해, 그의 아내 미리는 자신이 시리우스에서 지구에 온 존재라고 믿고 있는, 다시 자신의 고향 별에 돌아가기 위해 엄연한 현실(땅)을 무시하고 늘 하늘만 쳐다보는 여자이다. 이것은 스피리추얼과 그라운딩이 분리된 전형적인 모양새이다. 당연히 단절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어느 날 미리는 하유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실제로 의식적 단절을 실행한다. 물질세계와의 분리를 위해 자발적(?) 의식불명 상태가 되어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카모쉬와 뮤
하유는 ‘모든 의식은 무의식 깊은 곳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카모쉬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고 무작정 그를 찾아가 의식불명 상태인 미리와 깊은 최면상태에서 의식으로써 조우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카모쉬는 수준 높은 최면기법으로, 주로 전생 리딩을 통해 피시술자가 현재 겪고 있는 삶의 고통을 치유해주고 있는 힐러이다. 카모쉬는 우연히(우연을 가장한 필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로 노래하는 뮤를 만나고 그녀의 전생 리딩을 도와준다. 카모쉬는 그녀가 2천 년 전 한나라 때 정략결혼으로 유목민족에게 신부로 팔려가 불행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번 생에서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아 아기 때 스웨덴에 입양되어 이방인처럼 세상을 떠도는 삶을 살고 있는 뮤의 카르마에 강한 동질감을 느끼고 사랑에 빠진다. 카모쉬 역시 어릴 때 어머니가 자신을 버린 채 성당 사제와 외국으로 떠났다는 깊은 트라우마가 가슴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카모쉬와 뮤는 공통적으로 버림받음과 관련된 카르마를 공유하고 있다. 카모쉬가 먼 여정 끝에 마침내 생모를 만나 자신을 버리고 떠나게 된 진실을 듣게 될 기회가 찾아오지만, 끝내 생모는 카모쉬에게 진실을 말하는 대신 침묵을 선택한다.


무진과 리옌
무진은 하유가 여행 가이드로서 밥벌이를 하도록 도와준 선배이자 정신적 지주이다. 무진은 원래 미술을 공부했지만 염증을 느끼고 무명가수 가수 C의 매니저로 활동했다. 무명가수에서 스타로 발돋움한 C가 어느 날 자살하고 세상을 떠나자 출가해서 10년 동안 절밥을 먹고살다가 ‘비승비속’을 깨닫고 환속하여 동남아시아와 중국을 바람처럼 떠돌며 자신만의 방랑을 계속한다. 그리고 둔황에서 중국여자 리옌과 만나 전생의 인연을 현생에서 한시적으로 이어나가게 된다.

무진은 이 소설 전체에서 얼핏 ‘중력’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 있을 것 같은 인물이다. 그가 하는 말들은 가히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모쉬는 최면기법을 ‘중력에서 벗어나 있는’ 세계라고 거듭 강조한다. 중력이란 물질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시간, 공간, 물질적 편견, 욕망의 힘이기 때문이다. 중력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은, 3차원의 단선화된 개념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공간 개념이 모두 ‘지금 이 순간’에 함께 맞물려 일어나고 있는 ‘영원’에 속한다는 것이다. 무진은 전생과 카르마, 수행을 통해 하유를 자극하고 깨우치게 하고 의문을 품게 만들고 불안정한 의식의 기저를 흔들어주고 성장하게 도와주는 스승 역할을 한다. 그러나 소설 말미에서 무진의 존재 깊숙한 곳에 카르마의 깊고 어두운 중력이 그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 카르마의 영향으로 무진은 허무하게 리옌과 하유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다. 사실 무진이 세상을 떠돌며 수행과 형이상학적이고 근원적인 철학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고통이었다. 고통은 '가슴을 슬프게 하지만 영혼을 되찾은 환희'를 만드는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별에서 온 존재들
<달세뇨>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다. 우리는 가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독과 그리움, 향수를 느끼지만 이 세상에서는 결코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곤 한다. 지구인의 진화를 돕기 위해 고차원의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혹은 요청을 받고 기꺼이 지구에 날아와 살아가는 존재들, 흔히 서비스 소울(Service Soul)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구의 카르마권에 진입하게 되면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이나 애초 지구에 온 목적, 이유, 사랑, 절실한 희생정신 등을 모두 망각하게 된다. 완전한 제로 상태에서 지구인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들은 지구의 물질세계에서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처절한 고통과 슬픔을 경험하고 괴로워한다. 무엇보다 생과 사라는 물질적 해체와 재조합의 사이클(윤회)에 갇혀 지구인과 똑같은 제한을 겪으며 존재하게 된다. 작품 속에서 미리가 외계인이었다고 말하는 부처 역시 그런 제한된 윤회를 살아내다가 깨달음을 얻고 중생 구제에 힘썼다. 작품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지구에 온 이상 의식을 진화시켜서 자신이 왜 이 지구에 왔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깨달아야 지구에서의 삶을 마치고 고향 별로 돌아갈 수 있다. 단순히 열심히 살다가 죽었다고 해서 지구의 윤회 밖으로 탈출할 수는 없다.


달세뇨
완성하기 위해선 다시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돌아갔다고 해서 처음과 똑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죽는다고 해서 허망한 것도 아니고 새로 태어났다고 해서 기뻐할 일도 아니다. 작가의 말대로 의미 없는 음표들의 나열을 아름다운 멜로디와 화성의 음악으로 만들어나가는 건 음악가, 즉 우리 자신의 예술성이다. 과연 앞으로 어느 생쯤에서 D.S. 기호를 더 이상 만나지 않고 Fine 너머로 날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할 얘기가 더 많지만 이쯤에서 그만해야겠다.
2019년 12월 31일이다. 오늘 밤 자정에 D.S.를 만나면 1월 1일로, 아니면 13월 1일로 넘어갈 일이다.

* 주옥같은 격언들이 페이지 도처에서 빛나고 있다. 격언들만 따로 모아 또다른 책 한 권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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