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sputnik1122님의 서재

나는 채굴 현장 위로 철망을 밟은 채 인간 삶의 이 기록을 응시한다. 놀랍게도 내가 경험하는 것은 구석기 시대나 그 밖의 고대에 대한글을 읽을 때 으레 느껴지는 감정인 경외감이나 시간 감각 상실이 아니라 차분함이다. 인류의 오랜 선사를 이렇게 맛보면서 깊숙이 묻힌불안감의 매듭이 풀린다.
내 삶은 거의 전적으로 현대성의 템포에 속박되어 있다. 분 단위로살고, 몇 시간과 (때로는) 몇 년에 집중하고, 21세기 안에 무너질 주택에서 살고, 10년을 채 넘기지 못할 전자 제품을 이용한다. 우리 문화는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스스로와 지구의 대부분을 개조할 기세다. 우리의 감각, 상상력, 열망을 몇 년 이상 끌어당기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수천 년의 척도에 대해 생각하더라도, 지금과 그 먼 미래 사이에인류 이야기의 연속성을 상상하기 힘들다. 과거도 낯설긴 마찬가지여서, 감각이 미치지 못하며 몸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 인류 역사가 수만년간 존재했다는 물리적 흔적은 내 몸에 말한다. 또 다른, 더 긴 서사가 있다고.- P323
이렇게 오래 끄는 잔향은 성당, 텅 빈 공장, 거대한 물탱크처럼 넓고 벽이 단단한 공간의 음향 특성이다. 벽은 소리를 반사하며 밀폐된공간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소리가 되튀는 동안 잔향을 지속한다.
물론 돌처럼 효율적인 음향반사판도 음파의 일부 에너지를 고갈시킬수밖에 없다. 하지만 넓은 공간에서는 소리가 공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서, 벽과의 충돌로 잃어버리는 에너지가 거의 없이 흐를 수 있다. 이렇듯 넓은 용적은 소리를 오래 지속시킨다. 음파가 멀리 떨어진벽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공기 중에 오래, 때로는 몇 초간 머물기때문이다. 두꺼운 커튼처럼 소리를 흡수하는 재료가 없으면 잔향은더욱 오래간다. 홀레 펠스 동굴의 용적은 6000세제곱미터로, 큰 교회와 맞먹는다.
이 동굴의 잔향은 가이센클뢰스테를레보다 훨씬 오래 지속된다.이 때문에 매우 빠르고 섬세한 소리는 쉽게 뭉개진다. 다른 관람객과몇 미터만 떨어져도 그들의 말소리가 우단(羽緞)처럼 먹먹해진다. 이곳에서 강연하면 끔찍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복잡한 바이올린 곡도 형편없이 들릴 것이다. 빠르게 변하는 음이 서로 뒤섞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단순한 가락은 근사하게 들린다. 내 휘파람 소리가 이렇게 훌륭하게 들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동굴 밖 초원에서 나의 손뼉과 휘파람소리가 얇고 바싹 마른 빵 같다면 안에서는 달콤한 케이크 조각처럼 기름지고 두툼하다. 피리 음악 또한 이곳에서 근사하게 들릴 것이다.- P326
알려진 최초의 악기는 악기 소리와 어울리는 장소에서 제작되었다.적어도 현대인의 귀에는 그렇게 들린다. 오늘날 많은 플루트 실황 연주와 녹음은 전자 장비를 이용하여 잔향을 더함으로써 소리가 동굴이나 방에서 들리는 것처럼 한다. 그렇다면 동굴의 잔향 특성이 최초의 피리가 발명되는 데 촉매 역할을 했을까? - P327
이 밀접한 관계는 공간이 음악사에서의 혁신과 벌이는 상호작용의일부를 보여준다. 구석기 후기 동굴에서 발견된 악기-피리, 긁개, 불로러(bull-roarer)"는 수십 명이 모인 자리에 잘 어울렸다. 소리가 더큰 악기는 인간 사회가 성장하여 소리가 더 멀리 전파되어야 했을 때등장했다. 북과 뿔은 사람들을 전쟁, 사냥, 종교 회합에 불러 모았다.
최초로 기록된 북은 기원전 4000년경 중국 동부 다원커우의 기장, 쌀재배 문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려진 최초의 나팔은 기원전 1500년경 이집트의 강성한 제18왕조에서 발견되었다.- P339
우리는 스마트폰이나 집의 CD 플레이어에서 ‘재생‘을 누를 때마다 음향공간을 창조하는 셈이다. 우리는 음악을 얼마든지 고를 수 있다. 앨범과 트랙들이 우리의 눈길을 끌려고 다툰다. 가장 시끄러운 음악이 대체로 승리한다. 심지어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리 자신이 시끄러운 소리를 선호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말이다. 우리의 뇌는 요란한 음악을 더 ‘좋은‘ 것으로 한결같이 판단한다. 게다가 조용한 악구의 음량이 커져 곡 전체의 음량 균형이 흐트러지더라도 그쪽을 선호한다.
이 심리적 기현상은 ‘음량 전쟁‘을 촉발했다. 이 경쟁은 1990년대에CD 분야에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제작자들은 음악의 모든 주파수에서 진폭을 증가시켜 곡의 가변적 음량을 이른바 ‘벽돌벽(brick wall)‘으로 바꾼다.‘ 이 최종 결과물에서는 트랙의 모든 부분이 최대 음량으로 높아져 있다.
이렇게 만든 음성 파일을 컴퓨터 화면에 띄우면, 대다수 생음악의음량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에 반해 높고 일정한 벽이 표시된다.
이렇게 하면 더 시끄럽고 생동감 있는 음악이라는 전반적 인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스네어 드럼 같은 타악 효과의탁 소리가 사라져 마치 악기를 어딘가에 욱여넣은 듯한 느낌이 들며 극단적인ㅍ경우에는 음악이 백색잡음으로 뿌예진다.- P343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