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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utnik1122님의 서재

바 끝에 앉은 남자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더블 스카치 잔 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몇 분에 한 번씩 고개를 들어 뒤쪽의 문을 자주 바라보았다. 기다란 형광등 불빛에 그의 몸에 맺힌 땀이 번들거렸다. 그는 한숨을 쉬는 척, 떨리는 숨을 길게 내뱉고 다시 술잔을 바라보았다.
"저기요, 실례합니다."
나는 잔을 닦다가 고개를 들었다.
"한 잔 더 주시겠어요?"
정말 좋지 않은 생각이라고, 도움이 안 될 거라고, 한 잔 더 마시면 한계치를 넘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다 큰 어른이고, 지금은 문을 닫기 15분 전이며, 회사 지침에 따르자면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나는 그의 곁으로 가서 잔을 받아 옵틱[술집에서 위스키 등 독한 술의 양을 재는 기구]에 갖다 댔다. 그는 병에 고갯짓하며 말했다.
"더블로요." 그러더니 두툼한 손을 들어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쓱 닦았다.- P6
우리가 날마다 따르던 일과가 사라지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몇 주가 지나서야 겨우 그의 몸을 날마다 만질 수 없어도 손이 쏠모없이 느껴지지 않게 됐다. 단추를 채워주던 부드러운 셔츠, 가만히 씻어주던 따뜻한 손, 아직도 손끝에 감촉이 느껴질 것 같은 매끄러운 머리카락, 그의 목소리, 갑자기 터뜨리던 그의 드문 웃음, 내 손가락에 닿는 그의 입술, 잠들기 직전 그의 눈꺼풀이 내려앉던 모습이 그리웠다. 내가 한 일에 아직도 경악하고 있는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만, 그런 일을 저지른 루이자를 자기가 키운 딸이라고 여길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사랑한 남자와 가족을 동시에 잃어버리고 내 존재와 연결된 모든 것을 상실했다. 연결된 것 하나 없이 미지의 우주를 부유하는 기분이었다.- P37
엄마는 마지막 순간 윌과 함께 있던 것이 내 남은 평생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일이 내 심리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의미로 그 말을 받아들였다. 다시 말해, 내가 극복해야 할 죄책감, 슬픔, 불면증, 이상하고 부적절하게 터져 나오는 분노, 있지도 않은 상대와 끊임없이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보니 그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디지털시대에 나는 영원히 ‘그때 그 사람‘이 될 것이다. 내가 그 일을 모조리 기억에서 지운다고 해도, 나 자신과 월의 죽음을 분리할 수없을 것이다. 컴퓨터가 존재하는 한 내 이름은 그의 이름과 엮일것이다. 사람들은 대략적인 지식만 가지고, 또는 전혀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나를 판단할 것이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머리를 짧게 잘랐다. 옷 입는 스타일도 바꾸었고, 눈에 띄게 할만한 옷가지는 전부 옷장 구석에 넣어두었다. 트리나처럼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었다. 이제는 신문에서 큰돈을 훔친 은행직원이나자기 아이를 죽인 여자, 사라진 형제 기사를 읽고 있으면 예전처럼 공포에 질려 떠는 것이 아니라 기사에 실리지 못한 뒷이야기가 궁금해졌다.-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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