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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통일운동을 했거나 진보운동에 연루되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나서면 오히려 많은 사람이 빨갱이로 몰릴 수 있다며 현장에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운동권의 일선에 있던 사람들도 ‘모든 죄를 운동권에 뒤집어씌울 것이란 이유로 참여하는 것을 꺼렸다. 결국 현장을지킨 운동권은 야학이나 극단 광대, 신협이나 양서조합 같은 운동권 이선에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조직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전남 일대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던 이양현은 자신이 참여함으로써 막 싹트는 노동운동을 말아먹을 수도 있다며 노심초사했다. 어떤 사람은 당시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한 것처럼 과장하기도 하지만 실체 없는 이야기이다. 함평고구마사건 2주년을 준비하던 가톨릭농민회 조직도 전혀 가동되지 않았다. 동화작가이자 농민운동가였던 윤기현도 개인 신분으로 참여한 것이지 전혀 농민 조직을 동원하지 않았다.
대학생들은 항쟁의 도화선 노릇을 했지만 막상 사태가 커지자 극히 일부만 남았다. 책임져야 할 학생 지도부와 운동권 일선이 사라진 공백을 다행히 운동권 이선에 있던 사람들과 밑바닥 사람들이 메워 주었다. 수백 명이 죽었는데 학생 지도부나 운동권 일선은 아무도 죽지않았다. 옥중에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단식투쟁을 전개한 박관현만 죽었을 뿐이다.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사를 받았는데, 자수한 학생 지도부를포함해 운동권 사람들은 100명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 농민들이 주력 부대였던 것도 아니다. 중산층 시민들이 중심이었다고 할수도 없다. 피바다를 이룬 참혹한 공간을 목숨 걸고 지킨 사람들은 실로 기층민중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기층민중들이 지도부도 없이 이렇게 장렬하게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5월 27일 새벽, 그 애절한 방송을 듣고서도 그들을 지키기 위해 뛰쳐나가지 못했던 많은 광주시민은 그 일 때문에 모두 마음에 큰 병이 들고 말았다. 광주는 아직도 그 병이 완치되지 않아 신음하고 있는 도시다.-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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