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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utnik1122님의 서재

약속한 10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남여고 쪽1에서 공수부대 차량 10여 대가 우리 쪽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그들곧바로 차에서 내리더니 일부는 총에 착검을 하고 일부는 곤봉을든 상태로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앞에 총! 제자리 뛰어! 돌격 앞으로!"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던 우리들은 그들의 기세에 놀라 뒤로 물러서려는데 워낙 사람이 많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앞에 몇 사람이 있었는데 뒤로 밀리다 보니 어느새 맨 앞줄에 서게 되었다. 공수들은 "앞에 총!"을 외치고 느릿느릿 달려오더니 눈앞까지 와서는 "찔러총!"을 외쳤다. 나는 본능적으로 바닥에 몸을 숙였다. 바로 내 뒤에서 "윽" 하는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비명과 공수부대원들의 욕설이 들렸다. 그들은 무조건 총검으로 찌르고 곤봉을 휘둘렀다. 충검을 찌르고 곤봉을 훅훅 휘두르는 그들의 입에서 술 냄새가 풍겼다. 나는 그자리를 빨리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겨우 사람들의 다리 사이를비집고 들어가 우왕좌왕하다가 동계천으로 뛰어들었다.
정신없이 청운학원 뒷골목에 도착해 잠시 숨을 돌리려고 돌아섰는1데, 도망쳐 온 일행 중 바로 내 뒷사람이 숨을 헐떡거리며 나와 눈이마주쳤다.
"나 찔렸어." 그러고는 순간 ‘푹‘하고 고꾸라졌다.
"그는 대검에 등을 찔려 숨을 내쉴 때마다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P161
조사를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나 나는 대공수사팀인 3과로 옮겨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마음의 여유가 없어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내가 3과로 옮길 무렵 신군부는 소위 광주사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고심하고 있었다. 김대중의 배후 조종에의한 내란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아예 북한의 지령에 의한 공산주의자들의 준동으로 할 것인지, 그 갈림길에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당시 서울 보안대 본부에서 특수공작 총괄 임무를 맡고 내려온 홍성률 대령이 ‘광주를 빨갛게 색칠하면 영원히 화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폈고, 이를 신군부가 받아들여 광주사태를 공산주의자들의 준동으로 날조하려는 시도가 철회되었다고 한다.- P233
그즈음 광주사태에 대한 윤곽이 대체로 드러났다. 결국 호남 지역이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을 수사관들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지역 출신 수사관들은 ‘이제 그만 고문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어쩔때는 우리에게 연민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업무는 업무여서황의섭은 내 고향인 장성을 여러 번 방문하여 우리 집안에 관한 조사를 철저히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집안은 6.25 전쟁 때 여덟 식구가 학살당해, 오히려 반공 집안이라는 증언만 들었던 모양이다. 황의섭은 많은 조서를 작성했으나 그 내용은 중복될 수밖에 없었고, 포고령 위반 이외에 다른 내용을 추가할 수 없었다.
사실 광주사태를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폭동으로 만들 계획이었다면, 나는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청을 마지막까지 지켰던 사람 중에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많아서, 나를 빨갱이로 만든다면 도청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빨갛게 칠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런 광풍은 몰아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가 될 때까지도 적색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당시에 적색공포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강해 ‘자신이 죽은 뒤에 가족까지 죽이는‘ 천형에 가까운 무서운 형벌이었기 때문이다.- P234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오랫동안 운동으로 다져진 내가 교수님들에게 받은 돈을 감추지 못하고 사실대로 실토하는 것이 속상했다. 확인 조사를 받으면서 교수님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런 생각을 하면 한없이 속이 상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작금의 사태가 포고령 위반 정도의 문제가 아님을 직감했다. 거대한 역사의 파고에 휩쏠리고 있다는, 그리고 그 파고를 견뎌내야 한다는 압박이 나를 엄습하고 있었다. 아무리 심한 고문을 당해도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려야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이런 죄송할 일이 얼마나 더 생길지 알수 없었다. 나는 김지하 선배의 시처럼 "저 밑 모를 어지러움"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P241
별을 몇 개씩 달고 있는 장군들이 여러 명 재판석에 앉아 있었다. 헌병들이 좌우에 도열해 있는 법정에서 준엄한 선고가 이어졌다.
"정동년 사형!"
"김상윤 징역 20년!"
그리고 연이어 후배들에게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징역 20년‘이라는 선고를 듣자 하늘을 나는 듯 기쁨에 휩싸였다. 나는 당연히 사형이 선고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청석을 돌아보니 여동생 현주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동년 선배가 사형을 선고받았는데 오빠가 사형을 면했다고 하여 대놓고 기쁨을 드러낼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말 뛸 듯이 기뻤다.
선고가 끝나고 정동년 선배와 나 그리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은 같은 차를 타고 교도소로 돌아갔다. 차가 출발했는데 뒤에서 정동년 선배의 부인이 하염없이 울면서 우리를 쳐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우리 죽지 않습니다. 형수님! 걱정하지 마세요."
정동년 선배는 교도소로 돌아올 때까지 까닭을 알 수 없는 콧노래를 흥얼댔다. 망연하지만 자제하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교도소에 돌아와 독방에 홀로 있으니 사형을 면했다며 뛸 듯이 기뻐했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목 놓아 울고 또 울었다. 내가 조사를 잘못 받아 정동년 선배가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자신은 죽음을 면했다고 날아갈 듯 기뻐하다니! 참으로 파렴치한 행동이었다. 지금도 그때 일이 떠오르면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리고 땅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다.-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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