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지 않던 척화론이 다시금 거세게 타오른 결정적 계기는홍타이지의 청제였다. 천명을 받은 천자인 황제가 둘일 수는 없었다. 따라서 조선은 명과 청 사이에서 형편에 따라 절충할 여지가 완전히 사라졌다. 정묘년의 맹약은 이제 폐기 수순을 밟는 일만 남았다. 그래서 청과 조선의 관계도 더는 형제 관계일 수 없었다. 군부인 명 황제에 등을 돌리고 청 황제를 새 군주로 섬기지 않는다면,
다른 말로 조선왕조의 ‘존재 이유‘ 곧 국가정체성을 시세에 따라 바꿀 수 없다면 전쟁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조선의 패배는 명약관화하였다.- P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