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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utnik1122님의 서재

다음으로 살펴볼 감정 성인 집단은 부정적인 감정을 지렁이 로리처럼 대한다. 나는 이들을 감정 수양형 성인이라고 부른다. 감정 수양은 오늘날 ‘감정 관리‘ ‘감정 지능‘ 또는 ‘감정 조절‘과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감정 수양형 성인은 감정 통제형 성인보다는 감정을 덜 의심하는데, 이 성인들이 보기에 나쁜 감정은 뿌리뽑거나 억누를 것이 아니다. 그 대신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나쁜 감정을 수양하거나 변화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감정을 어떻게 단련해야 할까? 감정 수양형 성인은감정이란 우리를 무너뜨리는 비이성적인 힘이라는 사고를 거부한다. 그들은 적절히 개입하면 감정을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그중한 가지 개입 방식은 낸시 셔먼이 말하는 ‘외면을 내면으로‘ 전략이다. ‘성공을 위한 옷차림‘이라는 말을 들어 봤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외면을 내면으로 전략인데, 일반인도 그 분야의 전문가처럼 옷을 갖춰 입으면 타인에게도, 스스로도 전문가처럼 느낀다는것이다. 긍정 심리학을 통해 널리 알려진 감사 연습도 외면을 내면으로 전략이다. 감사하다고 느끼는 모든 일의 목록을 작성하거나 매일 몇 분씩 시간을 내서 감사한 일을 세어 보라. 긍정 심리학연구에 따르면 이런 습관은 감사하는 마음가짐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며 이를 통해 더 행복하고 건강해질 수 있다. 또 아이가 형제자매를 괴롭혔을 때 죄책감을 느끼도록 교육하려면 아이가 억지로라도 사과하게 만들고 자기가 한 일로 인해 동생이 얼마나 슬퍼했는지 지적하라. (대개는 마지못해) 말이 먼저 나오고 감정은 나중에 나타난다.
또 다른 유형은 내가 ‘공간 만들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공간만들기는 당신과 당신의 감정 사이에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이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다룰 때 일반적으로 권장되는 수단으로,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 전에 잠시 멈춰서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게 한다. 부정적 감정이 느껴지면 열까지 세거나 심호흡하거나 실제로 보내지 않을 비방 이메일을 작성하는 것과 같은 전략이다. 이처럼 공간을 만들면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막아 준다. 또한 내 감정이 상황에 적절한지, 예컨대 내가 꼴 보기 싫은 동료의 말에 과민 반응하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볼기회를 제공한다. 감정 수양형 성인은 나쁜 감정과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열쇠는 감정을 단련해서 더 나은 감정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런 전략은 그 훈련의 일부다.
감정 통제형 성인과 마찬가지로 감정 수양형 성인도 철학계에서 역사가 깊다. 예컨대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감정지능을 이야기하기 훨씬 전부터 감정 단련법에 대해 많은 조언을했다.- P72
 공자에 따르면 예를 제대로 준수하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으로 변모한다. 이는 인자가 되는 방법 중 하나이며, 인은 ‘선한‘ 또는 ‘인간적‘을 뜻한다. 인자가 되는 것이 바로 유교에서 수양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바다. 인자가 된 사람은 무위無為, 즉 일종의 자연스러운 행위의세계로 나아갈 것이며, 예가 요구하는 바를 성심껏 자발적으로 행한다.
인자가 되려면 올바른 감정을 느껴야 하며 여기엔 부정적인 감정도 포함된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말한다. "오직 선한 사람(인자)만이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도, 경멸할 수도 있다. 선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경멸한다는 주장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공자는 경멸받아 마땅한 게 있다고 생각한다. 말재간을 뜻하는 영이 그런 것 중 하나다. 말재간을 부리는 사람은 의례를 잘 따르는 인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저 겉치레를 하는 자다. 공자는 말재간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떤사람이 언변이 진실하고 진지해 보인다면, 그는 군자일까? 아니면 그저 군자의 겉모습을 흉내 내는 것일까?" 말재간을 부리는사람은 가식에는 능하지만, 예에 수반돼야 하는 적절한 감정이 없다. 공자에 따르면 인을 사랑하고 존중하면 인에 반하는 걸 미워하게 된다. 인자는 증오를 완전히 삼가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것을 증오하도록 자신을 단련할 뿐이다.- P76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성품의 탁월성은 감정을 조절하고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는 성품의 탁월성 중하나를 온화함으로 규정하는데 이는 지나치게 강한 분노와 지나치게 약한 분노의 극단 사이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분노를 ‘자신 또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가해진 명백한 모욕‘에 대한 반응으로 정의한다. 우리는 남이나를 모욕하거나 무례하게 대할 때 가장 쉽게 분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를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어리석다.‘ ‘무감각하다.‘ 그리고 ‘비굴하다.‘라고 표현한다. 98 즉 분노를 너무 적게느끼는 사람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맞설 의지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술집 구석에서 어떤 남자가 당신의 어머니를 욕하는데 당신이 가만히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신이 어리석거나 나약하다고 말할 것이다. 분노는 학대에 대한 올바른 반응이며, 온화함이라는 탁월성을 지닌 사람은 분노를 적절하게 느낄 것이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방식으로 올바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일반적으로 ‘실천적 지혜‘로 번역되는 프로네시스phronesis가 있다.
실천적 지혜가 있으면 다양한 상황에 따라 필요한 게 뭔지 알고적절한 때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적절한 때에 올바른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적절한 때에 올바른 방식으로 감정을 느낀다.- P79
아! 살았다! 이제 다시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세상으로••• 악당이나 고통이 없는 이 인생극, 아이스크림과 탄산수가 인간이라는 짐승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제물일 만큼 세련된 이 공동체••• 모든 것의 잔혹한 무해함, 나는 이것들을 견딜 수 없다. 온갖 죄와 고통이 있는세속적인 바깥세상의 광야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잡으리. 그곳에는높이와 깊이가 있고 끔찍함과 무한함의 광채가 있으며, 이 밋밋함과 모든 평범함의 전형보다 천 배는 많은 희망과 도움이 있다. 

감정 수양형 성인에 대한 내 반응은 셔토쿼 호수에 대한 제임스의 반응과 좀 비슷하다.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추구하는 질서 정연한 감정생활에는 뭔가 빠진 게 있다. 그건 너무 건전하고 너무 깔끔하다. 그들은 감정을 단련해서 감정이 항상 적절한기준을 따르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분노가 과도하거나 잘못된 시기에 그릇된 방식으로 표출되지 않는다면 분노를 느끼는 건 괜찮다고 말한다. 이처럼 감정 수양형 성인은 감정을 길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나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길들일 수 있다고 해도 꼭 그래야만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야생의 감정을 선호해야 한다.-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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