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중화의 요건으로 공간(중원). 종족(한인漢人)·문화(유교) 세 가지를 거론하는데, 고려 선배들은 종족 요인을 별로 개의치않았다. 중원의 패자가 수시로 바뀌는 상황에서는 굳이 종족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중원의 새로운 패자로 떠오르면, 종족과 무관하게 (한인이 아니더라도) 그것을 천명에 따른 결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조선은 달랐다. 조선인이 보기에 명은 단순히 강대국 차원을 넘어, 하-은-주-한-당-송-명으로 이어지는 유교적 중화문명의 주인공, 곧 중화문명국이자 천자국이었다. 특히 조선에서는 종족 변수를 중시한 주자학적 화이관華夷觀이 매우 강고하였다. 그 결과 16세기에 접어들 무렵에는 명·조선 관계의 본질을 이전의 군신 관계에 부자 관계를 추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충忠과 효孝에 동시에 기초한 이른바 군부君父 신자臣子관계로 이념화한 것이다.- P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