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sputnik1122님의 서재

아버지의 가족들도 엄마를 경계했다. 엄마는 남편 식구들에게 친숙한 음식을 요리하는 법을 배우고 초록색 젤리와 보드카믹스까지 갖춘 정통 미국식 추수감사절 잔치까지 열면서 이들의 두려움을 조금씩 떨쳐냈다. 미국인 손님들이 떠난 다음 날 엄마는 남은 칠면조 고기를 된장, 김치와 곁들여 내놓았다.
미국의 새 가족과 어울리며 주변화된 엄마의 경험은 국제결혼을 한 다른 한국 여성들에 비하면 극단적인 것은 아니었다. 역사학자 여지연 교수의 미군과 국제결혼한 한국 여성 구술사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미국 요리를 함으로써, 본인의 문화를 희생해가며 남편의 문화를 부엌에서 재현하도록 기대되었다. 남편과 시댁 가족은 보통 한국 음식을 냄새나는 낯선 음식이라고 여겼으며, 여성들에게도 집에서 이상한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하거나 못 먹게 하기까지 했다. 이 국제결혼 가정의 아이들조차 때로는 한국 음식에 동화되기를 거부했고, 어머니의 문화를 배척했다. 한국 음식을 못 먹게 된 여성들은 김치 대신 미국 피클을 먹었고 빵 꽁다리와 칠리 플레이크를 섞어 고추장을 만들었으며, 진짜 한국식 반찬은 밥 한 공기를 다 먹은 동안 아주 조금씩 덜어 먹었다.- P153
케이와 제이슨이 갑자기 뿌리 뽑힌 채 한국을 떠나, 자기네 언어도 안 통하고 문화도 이해할 수 없는 셔헤일리스에서 새가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은 어떻게도 바꿀 수 없었지만, 엄마는 이 아이들에게 김치만큼은 떨어지지 않게 하겠노라 작심했다. 엄마는 아이들을 보자마자 당신이 먹여야 할 입이라는 걸알아보았고, 잠시나마 그 애들이 잃어버린 한국 엄마가 되어주었다.
나는 엄마가 이 아이들에게 그처럼 살갑게 대하는 모습이 늘 인상 깊었는데, 엄마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되면서, 당신이 겪은 상실을 투영한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았다. 그 안에서 엄마는 아이를 잃은 엄마였을까, 아니면 엄마를 잃은 아이였을까? 두려움과 슬픔에 떠는 아이들의 존재가 고아나 다름없이 전쟁 한복판에서 혼자 버텨내야 했던 시절의 기억을 촉발시킨 걸까? 아니면 미국에서 엄마가 겪은 소외감을 생각나게 했을까?
이후 연구 작업에서 특히 호수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나는아이를 입양 보낸 한국 생모의 전형적인 모습이 1950~1960년대의 기지촌 여성들로, 엄마와 비슷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나는 엄마가 당신이 복용하던 피임약이 효과가 없었다고 불평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 말을 했을 때 엄마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후회 같기도 공포 같기도 했는데, 그것은 엄마가 나나 오빠를 두고는 결코 내보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엄마가 포기한 아이가 또 있었던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건 엄마가 숨긴 비밀 중 가장 입 밖으로 내기 어려웠던 일 아니었을까. 앤더슨네 아이들은 엄마에게 미국 가정 한복판에떨어진 세 번째 아이의 유령을 떠올리게 한 걸까? 엄마를 찾아, 김치 맛을 그리며 우는 아이의 모습을?- P162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