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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들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점이 여럿 있었다. 먼저, 프랑코는 엄밀히 말해서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비견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귀족계급과 가톨릭교회를 등에 업은 군사 반란을 통해 일어섰고, 특히 처음에는 파시즘을 실현하기보다 봉건주의를 되살리려고 시도했다.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부르주아의 다양한 집단.
즉 현대화된 파시즘의 지지자들 역시 프랑코에게 반대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페인 노동계급이 우리 영국 사람들과는 달리 ‘민주주의‘와 현체제의 이름으로 프랑코에게 저항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저항에는 확실한 혁명적 분출이 동반되었다. 어쩌면 그런 분출로 구성된 저항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지 모른다. 농민들이 토지를 차지했고, 공장과 대부분의 교통수단은 노조의 차지가 되었다. 교회는 엉망이 되고 사제들은 쫓겨나거나 목숨을 잃었다. <데일리 메일>은 가톨릭 성직자들의 환호 속에서 프랑코를 악마 같은 ‘빨갱이‘ 무리에게서 나라를 해방시키는 애국자로 묘사한 기사를 쓸 수 있었다.- P288
여러 당파가 서로를 향해 쏟아내는 중상모략과는 별도로, 전쟁 때흔히 들을 수 있는 말들, 열변, 영웅을 찬미하고 적을 비방하는 말, 이 모든 것이 여느 때처럼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여러 면에서 적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100마일쯤 도망칠 사람들이었다. 이번 전쟁의 서글픈 결과 중하나는 좌익 언론이 우익 언론과 똑같이 거짓을 일삼는다는 사실을 내가 배웠다는 점이다. 우리 편, 즉 정부 편에게 이번 전쟁이 평범한 제국주의 전쟁과 달랐다고 나는 진심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전쟁 선전만 보면 그 점을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싸움이 아직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을때 좌우 신문 모두가 동시에 똑같은 욕설 구렁텅이로 뛰어들었다. <데일리 메일>의 포스터를 우리 모두 기억한다.
"빨갱이들이 수녀를 십자가에 못박다." <데일리 워커>는 프랑코의 외인 군단이 "살인자, 백인 노예를 거래하는 자,마약중독자, 유럽 모든 나라의 찌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고 말했다. 1937년 10월에도 《뉴 스테이츠먼》은 파시스트군대가 살아 있는 아이들의 몸으로 바리케이드를 만든다는 이야기(바리케이드를 만들기에는 가장 불편한 재료다)를 우리 앞에 내놓았고, 아서 브라이언트 씨는 "보수주의 상인의 다리를 톱으로 썰어내는 것"이 스페인의 프랑코 반대 세력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단언했다. 이런 글을쓰는 사람들은 싸움에 나서는 법이 없다. 어쩌면 이런 글을 쓰는 것으로 싸움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 건지도 모른다. 어느 전쟁이나 똑같다. 군인은 싸우고, 기자는 소리치고, 진짜 애국자는 짧은 선전용 견학을 제외하면 전선의 참호 근처에 가지 않는다. 비행기가 전쟁의 조건을 바꿔놓고 있다는 점이 때로 내게 위안이 된다. 다음 세계전쟁 때어쩌면 역사상 유례가 없는 광경, 즉 강경파 애국자의 몸에 총알구멍이 난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P313
스페인 상황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어야 마땅한 사람들이, 스페인에 대해 진실을 말한다면 그 말이 파시스트 선전 활동에 이용될 것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기만에 몸을 맡겼다.
이런 비겁함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스페인 내전에 대한 진실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면, 영국 국민은 파시즘이 무엇이고 거기에 맞서 어떻게싸워야 하는지 배울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파시즘을 경제적인 진공 속에서 윙윙거리는 블림프 대령‘ 특유의 살인적 광증으로 묘사한 <뉴스 크로니클>류의설명이 그 어느 때보다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해서우리는 ‘파시즘에 맞선‘(1914년 전쟁의 ‘군국주의에 맞선 참조) 위대한 전쟁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그 전쟁에서 영국판 파시즘은 일주일도 채 지나기 전 우리 목에 씌워진 굴레가 될 것이다.-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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