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지막 여행이 내 머릿속에 묘하게 선명하고 상세하게 남아 있다.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느낀 것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좀 더 관찰자에 가까운 기분. 제대 서류도 손에넣었고, 거기에 29사단의 인장도 찍혔다. 의사의 확인서에는 내가 "쓸모없다"고 적혀 있었다. 이제 자유로이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결과로 이제야 스페인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거의 처음으로 들었다. 기차가 하루에한 대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바르바스트로에서 하루를보내야 했다. 전에는 바르바스트로를 잠깐씩 스치듯 보았을 뿐이고, 그나마도 그냥 전쟁의 일부로 인식했을 뿐이었다. 차갑고 진흙투성이인 회색 도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화물트럭과 추레한 군대가 가득한 곳. 그런데 지금은묘하게 달라 보였다. 이 도시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나는 유쾌하고 구불구불한 길, 오래된 석조 다리, 사람 키만큼 커다란 통에서 술이 새어 나오는 주류 판매점, 사람들이 수레바퀴, 단검, 나무 숟가락, 염소가죽 수통 등을 만들고 있는 흥미로운 반지하 공방 등을 눈에 담았다. 어떤 남자가 가죽으로 병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전에는 미처 모르던 사실을 발견하고 커다란 흥미를 느꼈다. 가죽에서 털을 제거하지 않고 털이 있는 부분이 안쪽으로 가게 병을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실은 염소 털의 정수를 마시게 된다는 사실. 나는 몇 달 동안 그런 수통으로 물을 마셨는데도 이걸 몰랐다. 도시 뒤편에는 얕은 옥색 강이 있고, 그 강에서 수직으로 솟은 바위 절벽에 주택들이 지어져 있었다. 침실 창문으로 침을 뱉으면, 100피트 아래의 강물 속으로 침이 곧장 떨어질 정도였다. 절벽에 난 많은 구멍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둘기가 살고 있었다. 한편 레리다에는 낡아서 부서질 것 같은 건물들이 있었는데, 그런 곳 처마에 수천 마리의 제비들이 지은 둥지가 있었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건물이 로코코 시대의 불그스름한 몰딩으로 장식된 것 같았다. 거의 6개월 동안 내가 이런것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주머니에 제대 서류가 있으니 이제 다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관광객이 된것 같은 기분도 조금 들었다. 내가 정말로 스페인에 있다는 생각을 그때 거의 처음으로 했다. 여기는 내가 평생 와보고 싶어 하던 나라였다. 레리다와 바르바스트로의 조용한 뒷골목에서 모든 사람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스페인에대한 아득한 소문 같은 것이 언뜻언뜻 보이는 것 같았다.- 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