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yeanmot님의 서재
  • 가랑잎에도 깔깔
  • 김송은
  • 12,600원 (10%700)
  • 2022-06-17
  • : 114

지금과는 달리 초내성적인 성격이었던 학창시절,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때는 정말이지 '콩나물시루'라는 단어가 딱 맞아 떨어지는 빽빽하게 사람들로 꽉 찬 버스에 올라 타 어리버리 한강 다리 너머까지 힘겹게 고등학교를 다녔더랬다. 

겨우겨우 사귄 몇몇 친구들이 아직 한번도 팥빙수라는 걸 먹어본 적 없다는 내 말에 깜놀해서 데리고 간 숙대입구 삼강하우스. 팥과 연유, 떡과 몇가지 젤리 토핑이 다였던 매우 심플한 팥빙수였지만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과 시원함에, 그리고 그렇게 맛있는 걸 맛보게 해준 친구들한테 너무 고마웠었다.



스냅사진처럼 드문드문 기억났던 그 시절이 이 책을 읽고 나니 어제 찍은 동영상처럼 홱홱 돌아가고, 결국 아침부터 졸업앨범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한 얼굴들이, 앨범 속 그 얼굴들이 너무 친근해 잠깐 울컥했다.


"보고 싶은 순아, 잘 지내니? 여기는 바람이 분다. 추운 줄 알고 두꺼운 옷을 입고 바닷가에 나갔는데, 어느새 봄바람이 불고 있구나. 보고 싶은 순아, 잘 지내렴."


"보고 싶은 순아, 봄인 줄 알고 바닷가에 나갔는데, 어느덧 여름 햇살이 따가워 깜짝 놀랐다. 보고 싶은 순아, 그럼 잘 지내렴."


"보고 싶은 순아, 여름인 줄 알고... 벌써 가을이...."


(...)


"순아 잘 지내니? 부산은 지금 가을이 오고 있다. 나는 관절염 때문에 요즘 고생이다. 아프지 말고 잘 지내라."


작가의 어머니처럼 짧은 엽서라도, 카톡이라도 주고받으면서 살걸... 뭐 하고 사느냐고 그 달콤함을 선물해주었던 친구들을 잊고 살았을까. 이제와 후회해봤자 소용없지만,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생각하니 가슴 속이 따뜻해진다.


얘들아, 지금 어디서 뭐하면서 사니? 

한참을 웃다 보니 거짓말처럼 행복했다. 배도 아프지 않았고, 서러움도 날아갔다. 시현은 할 말이 없을 때마다 딸꾹질하듯 괜히 "개놈!"이라 소리를 질렀고, 나는 그 소리만 들으면 자동으로 웃음 폭탄이 터졌다.
저녁이 되자 시현은 버스정류장까지 배웅하겠다며 옷을 챙겨 입었다. 나이키 잠바, 그리고 하얀색 나이키 운동화.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짐’이 묻어 있었다.
나의 스펙스는 멀리서 보면 나이키와 닮아서, 그날 나는 시현과 커플 신발이라도 맞춘 듯 마냥 뿌듯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