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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xy님의 서재
  • 말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 다니하라 마코토
  • 12,600원 (10%700)
  • 2020-01-20
  • : 113

나는 낯선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나면 머리가 아프고 명치가 꾹 조이며 단단히 체하곤 한다. 상대방은 전혀 대화의 의지가 없어 보이기에 나 혼자 대화를 이끌어 가려고 애를 쓰기 때문이다. 그렇게 숨 막히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배려 없는 그 사람이 참 미웠고, 생각 없이 쏟아낸 말들을 곱씹으며 나도 미워졌다. 그러다 하루는 문득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내 지위가 ‘을(乙)’에 위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가 참 불쌍해졌다. 그 누구도 내가 대화를 이끌어 주길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 대화에서의 침묵이 내 탓일 이유도 없었다. 나는 나를 을에 두고 혼자 고통 받고 있었다. 나를 갑(甲)까지는 아니어도 상대방과 동등한 위치로 격상시킬 대화법과 태도가 필요했다.

 

《말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의 저자 다니하라 마코토는 이런 순간에 필요한 무기가 바로 ‘침묵’이라 말한다.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면서 필요한 답을 이끌어내고 대화의 맥을 쥐는 법이 말 하지 않는 것이라니 아이러니 하면서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화법이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리듬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저자는 침묵을 어떻게 기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 친절하고 세세하게 알려준다. 더불어 불필요한 말로 대화의 공백을 촘촘히 메우려 무던히 애썼던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그럴 필요가 없다는 처방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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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익숙하지 않은 당신에게

주변을 환기시키기 위해 한 숨 고르기, 무게감을 주기 위한 묵묵부답, 상대방을 조바심 나게 하는 뜸들이기 등 침묵은 다양한 양태를 지닌다. 저자는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오바마와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을 더 빛나게 한 침묵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예시를 통해 독자에게 침묵의 중요성과 방법을 인식시킨다. 목적에 따라 다른 침묵의 형상을 이해한다면 더 이상 침묵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뿐만 아니라 침묵을 내 호흡에 맞춰 다룰 수 있게 된다면 대화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여 인간관계에 지치게 되는 일 역시 줄어들 것이다. 어쩌면 침묵은 아주 가성비 좋은 대화의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침묵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코어 근육이 부족한 사람은 척추를 꼿꼿이 세우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일이 매우 힘들다. 대화에도 이런 코어 근육이 필요하다. 상대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나의 중심을 유지하며 대화의 본질에 집중하기 위한 코어 근육 말이다. 침묵은 원활한 대화를 위한 코어 근육이다. 불필요한 수다, 감정에 치우친 언행, 목적을 거듭해서 말하는 것은 결국 나의 패를 모두 내보여주는 꼴이다. 불필요한 말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 보다 3초의 침묵을 유지해보자. 침묵에 익숙해진다면 나만의 중심을 잡은 채 상대의 리듬을 읽고 대화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 코어 근육이 더 강해질 것이다.

 

 

침묵의 전술: 액션과 질문

저자가 침묵을 활용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은 액션과 질문이다. 말의 빈자리를 메울 행동과 표정, 적절한 질문이 있어야 비로소 침묵의 시너지가 발휘되고 대화의 품질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침묵을 잘 활용하지 못해서 액션에도 큰 수고를 들인다. 나는 말과 행동과 표정을 각각 조각내어 따로 가동시키는데, 빈 퍼즐판을 꼼꼼히 메울 요량으로 말 다음에는 표정, 그 다음엔 끄덕거리기 등의 액션 조각을 끼워 넣는 식이다. 요령이 부족하다보니 당연 피로는 극대화되고 가끔은 고장 난 기계처럼 집중력이 흐려져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나마 잘 하는 것은 질문 던지기인데, 이는 오직 대화에서의 체력 소모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최대한 긴대답을 끌어낼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편인데, 예를 들어 “어디 사세요?”보다 “출근할 때 어떻게 오세요?”라고 묻는 편이다. 이편이 더 긴 대답을 얻어낼 가능성이 높고 내가 한 숨 돌릴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유용한 대화 기술 중 하나는 제대로 쓰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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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변이 타고나지 않았기에 좋은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다. 좋은 질문은 좋은 대답을 만들고, 침묵이 더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머리로 알고 있는 것들을 체화하는 일이 아직 너무도 익숙하지 않아 나는 매번 나를 훈련하듯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보면 나는 INFP(가끔 INFJ도 나온다)인데, 낯가림이 심하고 타인에게 관심은 없으면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신경 쓰는 아주 피곤한 타입이란다. 이런 내가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하는 이유는 주변에서 손꼽히는 달변가가 되고 싶은 것 보다 평균점에 올라 특색 없이 원활한 대화를 하고 잊히는 흐릿한 사람이고 싶은 이유가 크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너무도 불편해서 어깨에 긴장이 풀리지 않는다. 


이 책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내 대화 기술에 필요한 것은 무언가를 더 더하는 것이 아니라 소거하는 것이다. 엉덩이에 힘을 빼야 주사 바늘이 잘 들어가듯이 내 대화에는 힘 빼기가 필요하다. 원활한 대화는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기에 앞서 나 스스로 편함을 느끼는 것에서 비롯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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