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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스푸가 들려주는 세 나라의 교류 이야기

#12 은이면 다 통해




달러는 미국 돈이긴 하지만,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가장 널리 사용하는 국제 통화야. 세계 어느 나라에 가든 달러만 있으면 그 나라 돈으로 쉽게 바꿀 수가 있지.

그럼 옛날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 사이에도 지금의 달러처럼 국제 통화가 있었을까? 한국이 조선 시대였을 무렵, 세 나라는 교역을 할 때 은화를 주로 사용했단다. 세 나라는 어떻게 해서 은으로 만든 돈을 사용하게 된 걸까?


 

모든 것은 은으로 통한다


중국은 세 나라 중에서 상업과 교역이 가장 발달한 나라였어.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먼 옛날부터 상업과 교역을 위한 돈을 만들어 사용했지. 돈은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들었어. 금이나 은으로 만들기도 하고, 구리로 동전을 만들기도 했지. 종이를 이용해서 지폐를 만들기도 했고, 쌀을 돈처럼 사용해서 다른 물건을 사기도 했단다.


이 중에서 가장 즐겨 사용한 돈은 무엇이었을까? 옛날 중국 사람들도 지금처럼 금으로 만든 돈을 가장 좋아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아. 금은 너무 귀하고 생산량이 적어서 값싼 물건을 사기에 불편했지. 반대로 동전은 가장 흔했지만 값어치가 크지 않아서 비싼 물건을 사기에는 불편했어. 많이 들고 다니기에는 무거웠을 테니까 말이야. 지폐는 가벼워서 좋았지만, 종이로 만든 돈이라 오래되거나 물에 젖으면 쉽게 찢어졌어. 쌀은 들고 다니며 물건을 사기엔 너무 무거웠어.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차츰 은화를 가장 즐겨 사용하게 되었단다.


은화가 중국 사람들의 대표적인 화폐가 된 건 명나라 때야. 은 광산이 개발되어 은의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서, 은화를 많이 만들 수 있게 되었거든. 은화는 점차 일반 백성들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화폐가 되었어.


중국의 상인들이 사용했던 은화야. 모양이 독특하지?


은화의 사용량이 늘자 은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어. 지방 관아 중에서는 백성들에게 세금을 은으로 내게 하는 곳이 늘어났지. 그런 지방이 점점 더 늘어나자, 명나라는 아예 모든 세금을 은으로 내도록 법을 바꾸어 버렸어.


그러자 은이 점점 모자라게 되었어. 명나라는 더 많은 은을 생산하기 위해 새로운 광산을 계속 개발했지만, 얼마 못 가서 개발할 광산마저 남지 않게 되었지. 그래서 명나라는 조선에게 조공 물품으로 은을 바치라고 요구했단다.




획기적인 은 채굴 기술을 개발하다


조선은 명나라의 요구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어. 당시 조선은 쌀이나 면포를 화폐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은화가 별로 필요하지 않았고, 그래서 은을 열심히 채굴하지 않았던 거야. 당시 조선의 임금이었던 세종은 명나라가 요구하는 은의 양을 도저히 채울 수 없었어. 그래서 명나라 황제에게 편지를 보냈지.


“우리나라는 땅이 좁고 척박하여 은이 많이 생산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희 정부가 가지고 있는 은도 바닥이 나고 없습니다. 은의 조공을 면제하고 다른 생산물을 바치게 해 주소서.”


결국 명나라 황제는 조선에게 은을 바치라는 요구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단다.


그런데 얼마 후, 조선은 은을 채취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어. 원래 은은 은광석에서 채취해. 은광석에는 은과 함께 납도 들어 있는데, 여기에서 납을 제거해야만 은을 생산할 수 있지. 그런데 1503년 함경도 단천에서 김감불과 김검동이라는 사람이 은광석에서 납을 제거하는 ‘연은분리법’을 개발한 거야. 연은분리법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첨단 기술이었다고 해.


하지만 조선은 연은분리법을 더 이상 발전시키지 않았어. 이 기술로 은 생산량을 늘리면, 명나라에서 다시 은을 조공 물품으로 바치라고 요구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조선이 은을 돈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건 임진왜란 때부터야. 구원병으로 온 명나라 군사들이 은을 가지고 와서 조선 백성들과 거래를 했는데, 이때 은이 무척 편리하다는 걸 깨달았거든.

임진왜란 후에 은의 사용은 더욱 늘어났어. 하지만 조선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은은 조선이 직접 채굴한 은이 아니었어. 면포나 인삼을 수출하고 받은 일본의 은이 대부분이었지.




세 나라에 펼쳐진 은의 길


그래, 명나라는 일본을 통해 부족한 은을 채웠어. 일본은 물자가 풍부한 명나라와 교역하기를 원했어. 특히 명나라의 비단과 생사는 일본 사람들이 무척 좋아하는 물건이었지. 일본은 명나라의 물자를 수입하기 위해, 명나라가 가장 필요로 하는 은을 많이 생산해서 대가로 지불했단다. 비단과 생사를 원하는 일본과 은을 원하는 명나라의 입장이 서로 잘 맞아떨어진 거야.


일본이 명나라와 교역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은이 필요했어. 하지만 일본의 은 생산 기술은 별로 좋지 않았어. 그때, 조선을 왕래하는 일본 상인들로부터 기쁜 소식이 들려온 거야. 조선에서 연은분리법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이었지.


일본 상인들은 조선의 기술자에게 연은분리법을 배워 일본으로 돌아갔어. 그 무렵 일본 시마네 현의 이와미라는 곳에서 은광이 발견되었지. 일본은 조선에서 배운 기술로 이와미 은광을 개발해서 은 생산량을 엄청나게 많이 늘렸어. 이와미 은광에서 생산된 은은 은화로 만들어져 일본에서 사용되었고 명나라와의 교역에도 사용되었지. 그래서 일본은 명나라에 은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단다.




은이 세 나라에 가져다 준 것은?


일본에서 생산된 은은 곧바로 명나라로 흘러들기도 했지만, 조선을 거쳐 명나라로 가는 경우가 더 많았어. 일본 상인들은 조선에 와서 면포와 인삼을 구입하는 대가로 은을 지불했고, 조선 상인들은 일본 상인에게 받은 은을 지니고 명나라에 가서 그곳 물자와 교환했지. 일본에서 조선을 거쳐 명나라의 수도 북경까지 이어졌던 교역의 길을 ‘은의 길’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은을 매개로 조선과 일본, 명나라 사이의 무역은 더욱 활발해졌어.




*생사 :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뒤 삶거나 익히지 않은 상태의 실.



이 연재물은 책과함께어린이에서 출간될 어린이책의 내용 일부분을 미리 보여 드리고자 시작되었습니다. 연재 정보와 필자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연재를 시작하며'를 봐주세요. 무단전재와 무단복제를 원하시는 분은 곤란합니다. 



★깜짝 퀴즈★

조선 시대에 조선, 일본, 명나라 사이에서 두루 쓰였던 화폐로 금화와 구리 동전 사이의 적정한 값어치에 쌀보다 무겁지 않아 오늘날의 국제 통화처럼 통용되던 이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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