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스푸가 들려주는 세 나라의 교류 이야기
#4 서로를 배우러 가다
다른 나라로 공부하러 가는 ‘유학’ 알지?
유학은 비행기가 없던 옛날에도 있었단다. 중국이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었던 당나라 때,
신라에는 조기 유학 열풍이 불었고, 일본에서도 유학생을 파견했지.
신라의 조기 유학 열풍
통일 신라의 유명한 학자인 최치원도 조기 유학이 유행하던 때에 열두 살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을 떠났어. 지금으로 치면 겨우 초등학교 5학년 때구나. 최치원의 아버지는 당나라로 떠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어.
“10년 안에 반드시 과거에 급제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넌 내 아들이 아니다!”
당나라에는 최치원처럼 외국에서 유학을 온 학생들이 많았어. 유학생들은 당나라의 국립 대학이었던 국자감에 입학해서 공부했어. 이 학교에는 특히 신라 유학생이 많았지. 국자감 유학생 중에 통일 신라에서 온 학생만 200명이 넘은 적도 있었다는구나.
그래서 최치원은 10년 안에 과거에 급제했냐고? 최치원은 열심히 공부해서 5년 만에 과거에 합격했단다. 당나라의 과거에 신라 사람이 합격했다니 놀랍지? 물론 당나라 학생들과 함께 경쟁해서 합격한 건 아니야.
당나라에는 외국 사람이 치를 수 있는 ‘빈공과’라는 시험이 따로 있었어. 빈공과에 합격한 최치원은 당나라의 관리로 일했어. 그리고 통일 신라로 돌아온 후에는 당나라에서 배운 학문을 바탕으로 통일 신라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지.
당나라에 뼈를 묻다
당나라에는 일본에서 온 유학생도 있었어. 일본 유학생들은 다른 교통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견당사의 배를 타고 당나라에 도착해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단다. 유학을 온 일본 학생들은 20년 동안 당나라에 머물러야 했어. 자신들이 타고 가야 할 견당사의 배는 20년에 한 번밖에 오지 않았으니까.
일본에서 온 유학생 중에 기비노 마키비와 아베노 나카마로라는 사람이 있었어. 두 사람 역시 견당사의 배를 타고 당나라에 왔고, 신라 유학생들처럼 국자감에 입학해서 열심히 공부했지.
20년이 지난 후 일본의 견당사가 당나라에 도착하자, 기비노 마키비는 그동안 당나라에서 배운 선진 학문과 제도를 하루 빨리 고국의 발전을 위해 활용하고 싶어 귀국하기로 했지. 하지만 아베노 나카마로는 귀국하지 않고 최치원처럼 빈공과에 합격해서 당나라 황제의 신임을 받는 관리가 되었단다. 기비노 마키비는 당나라에서 가져온 유학, 천문학, 음악, 군사학 등 여러 분야의 지식을 일본 정부와 지식인들에게 전파하여 큰 공을 세웠고, 일본의 높은 관리가 되었단다.
또다시 20년이 흐르고, 일본은 견당사를 파견했어. 이번에는 일본 정부의 사신으로서 당나라에 도착한 기비노 마키비는 아베노 나카마로와 20년 만에 만날 수 있었지. 아베노 나카마로는 이번에는 당나라의 관직을 그만두고, 귀국하는 견당사의 배에 올랐어. 그런데 기비노 마키비가 탄 배는 무사히 일본에 도착했지만, 나카마로가 탄 배는 그만 폭풍우를 만나고 말았단다.

다큐멘터리 <신 실크로드>의 한 장면이야.(출처 바로가기)
일본에서 당나라로 파견되는 견당사와 유학을 떠나는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먼 길을 떠났지.
다행히 아베노 나카마로가 탄 배는 표류해서 저 멀리 남쪽 인도차이나 반도까지 흘러갔어. 그곳에서 겨우 목숨을 건져 당나라의 수도 장안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 당나라 황제는 크게 기뻐하며 아베노 나카마로를 다시 관리로 임명했단다.
결국 아베노 나카마로는 그리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당나라에서 생애를 마치고 말았지만, 당나라에서 주로 문학을 담당하는 관직을 맡은 덕에 이백과 같은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들과 자주 만날 수 있었지. 당나라의 시인들은 자신들이 쓴 시집에 아베노 나카마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남겼고, 그 이야기들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단다.
신라로 돌아올 수 없었던 승려
원효의 해골바가지 물 이야기 들어본 적 있지? 원효는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가던 중, 어느 동굴에서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어. 그래서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나는 의상과 헤어져 통일 신라로 되돌아왔지.
원효가 이런 일을 정말로 겪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지?
당나라에는 학생들뿐 아니라 승려들도 유학을 갔다는 것 말이야. 이들을 유학승이라고 불러.
신라의 승려들 중에는 당나라에서 유학을 한 사람이 무척 많았어. 의상처럼 당나라로 유학을 갔다가 통일 신라로 돌아온 유학승도 있었지만, 당나라에 계속 남아서 죽을 때까지 불교를 공부한 사람도 있었어. 원측이라는 승려도 그런 사람이었어.
원측은 열다섯 살에 당나라로 건너가서 불교를 공부했어. 원측은 당나라의 유명한 승려 현장의 제자가 되었단다. 승려 현장이 누구냐고?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삼장법사와 인도를 여행한 이야기는 잘 알지? 그 이야기를 소설로 엮은 책이 《서유기》인데, 여기에 나오는 삼장법사가 바로 현장이야.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를 혹시 본 적 있니?
《서유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만화영화야.
원측은 현장의 가르침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했어. 원측은 중국어,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등 5개 언어를 할 줄 알아서 수많은 인도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했지. 어찌나 실력이 뛰어났던지 당나라 황제에게도 존경을 받을 정도였단다. 불교를 배우러 갔다가, 오히려 당나라의 승려들을 가르칠 정도로 빼어난 승려로 인정받게 된 거지.
통일 신라에서는 원측을 돌려보내 달라고 했지만, 원측을 아꼈던 당나라 황제는 그 요청을 거절했다고 해. 원측은 결국 통일 신라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당나라에 머물며 불교를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어. 원측은 단지 ‘통일 신라의 승려’에 머문 것이 아니라 ‘세계인을 위한 승려’가 되었던 거지.
배움에는 국경도 없다!
세 나라의 문화 교류가 깊어진 건 중국 당나라 때부터야. 잠시 다녀가는 외교관뿐 아니라 오래 머물며 배우는 유학생과 유학승이 늘어났기 때문이지. 각자 다른 나라 사람이었지만, 그들의 활동에는 국경이 따로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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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당사 : 당나라에 보내는 사절단.
이백 : 당나라 최고의 시인으로 이태백이라고도 불리며 천 여 편의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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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퀴즈★
다양하고 더 많은 지식을 배우러 다른 나라로 가서 머무르며 공부하는 일로, 당나라 시대에도 이것을 하러 먼 길을 떠난 신라나 일본의 학생과 승려가 많았다. 이것을 무엇이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