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는 황혼녘의 들판을 떠도는 잠자리떼처럼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소리와, 빛깔과, 향기와, 형상들이 떼지어 날아다니고 있다. 우리들의 의식은 끊임없이 그 잠자리 떼를 쫒아다니면서 채집하고 있다.
귀는 소리를 먹이로 하여 채집하고 있으며, 입은 맛을 먹이로 하여 잡아들이고 있다. 코는 향기를 채집하고 있으며, 눈은 빛깔을 먹이로 하여 형상을 채집하고 있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마음은 나무위를 오르내리는 원숭이 (猿猴) 떼처럼 분주하여 쉴 새 없이 생각의티끌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은 시비를 낳고, 생각은 분별을 낳으며, 생각은 나와 너를 구분하며, 생각은 관념을 낳는다. 생각은 욕망을 낳고, 생각은 망상을초래하며, 생각은 편견을 낳고, 생각은 선입견을 초래한다. 생각은아집을 낳고, 생각은 분노와 공포를 낳는다. 그리하여 생각이 때로는 천국이 되며, 때로는 지옥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음의 거울 위에는 때가 끼고 먼지가묻지 않을 것이다. 무수히 날아다니는 생각의 잠자리 떼를 물리치기위해 손으로 뿌리쳐 끊으려 하고, 칼을 들어 일일이 베려 한다면 그는 보다 큰 생각의 잠자리 떼와 맞부딪쳐 마침내 비참하게 쓰러지게될 것이다.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 칼을 들어 어둠을 상대로 베고 찌르면서 싸움을 벌일 필요는 없다. 그저 가만히 불을 켜들면 그만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의 잠자리 떼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외계를 향한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의 문을 가만히 닫아버리는일일 것이다.
그리하면 소리는 울리나 이를 듣는 마음이 없으므로 빈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향기는 있으나 이를 맡으려 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잠자리의 빈 날갯짓에 불과할 것이다. 형상은 있으나 이를 보는눈이 끊어졌으므로 사물은 다만 색(色)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선정에도 들지 않고, 잠에도 들지 않으면서 바로눈앞을 지나가는 수레를 보지 못한 이구수 나무 아래의 부처처럼 초월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P23
아난다는 마침내 그 뜻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었다. 절문 앞의 찰간을 넘어뜨려라라는 대답은 다만 충격을 주기 위한 사구(死句)에지나지 않는다. 왜 그런 말을 하였을까. 찰간이란 무엇을 의미함일까. 왜 그것을 넘어뜨리라고 하였음일까라는 식의 분별은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비로소 깨달은 아난다는 부처가 금란가사 이외에 물려준 것이 바로 가섭이 난데없이 ‘아이여‘라고 불렀을 때 무심코 ‘네‘
하고 대답하였던 그 행위가 심법(法)임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아난이란 결국 자신의 가명(假名)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름은 다만 생활의 편의상 지은 이름이지 진짜의 이름은 아닌 것이다. 부처가 가섭을 본 것은 본성을 본 것이지 가섭이라는 대명사의 존재를본 것은 아니었다. 가섭도 부처의 본성을 본 것이지 부처라는 대명사의 존재를 본 것은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아난다는 부처를 부처로 보지 아니하고 금란가사를부처로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행한 8만의 설법을 부처로 보고있었으며, 부처가 죽은 후 그의 법신에서 나온 금강사리를 부처로보고 있었으며, 금란가사와 더불어 가섭에게 물려준 바리때를 부처로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P39
"진정으로 법을 구하는 사람은 구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마음 밖에 부처가 따로 있지 않으며 부처를 떠나 따로 있는 마음도 없다(外無別佛 佛外無別心). 선(善)을 취하려 하지 말라. 악(惡)을 버리려하지도 말라. 깨끗함과 더러움, 그 어느 것도 믿어 의지하지 말라.
죄의 본질은 텅 비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으면 쉬지 않고 오가는번뇌의 고리도 끊어져버린다. 번뇌라는 것도 고정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일체의 세계는 오로지 마음뿐이며 모든 현상은 결국 일법(法)이라는 도장으로 모양지어 찍어낸 도장 자국(所印)인 셈이다."- P99
내 상념은 그곳에서 멎어 섰다. 밤하늘에는 나옹 선사가 읊었던그 ‘둥근 밝은 달‘이 떠올라 있었고, 그의 제자 무학이 보고 깨우쳤던 바로 그 달이 떠올라 있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무학이육백여 년 전 보고 깨우쳤던 그 달은 여전히 밤하늘에 머물러 있음이다. ‘달의 얼굴(面)‘은 예전 그대로이다. 다른 것은 보는 사람의마음뿐이다. 달이 뜨고 지고 기울고 차는 것은 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달은 그저 달일 뿐이다. 그것이 초승달이 되고, 그것이 보름달이 되며, 그것이 바다 위에 뜨고, 그것이 바닷속으로 지는 것은 그것을 보는 사람의 마음일 뿐이다. 달이 뜨고 지는 것은 그러므로 마음속에서 뜨고 지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달(月)을 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저 달을 달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진면(眞面)의 달을 보고 달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진실로 저 달을 달로 보려 한다면 무학이 보고 사무치게 깨우쳤던 그 달을 봐야 한다.
무학이 깨우쳐 본(見性) 달이 특수한 달은 아니다. 그는 우리가보는, 마음속에서 저 스스로가 만들어낸 가짜의 달을 본 것이 아니라 달을 달로서 비로소 본 것뿐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마음속에서지어낸 달을 평생 달인 줄만 알고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은떴으나 실은 장님인 것이다.
- P207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이 멀듯이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생사의 밤길은 길고 멀어라- P213
"그대의 병이 중하다고 들었소. 그것이 무슨 병인가. 그것이 몸의병인가, 마음의 병인가. 만일 몸의 병이라면 몸은 흙(地), 물(水),불(火), 바람(風)의 네 가지 요소가 거짓으로 잠시 모여 이루어진것. 그 네 가지는 저마다 주인이 있는데 그러하면 어느 것이 그 병자인가. 만약 마음의 병이라면 마음은 꼭두각시(幻化)와 같으니, 비록거짓 이름은 있으나 그 실체는 공(空)한 것이니 병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만일 그 일어난 곳을 추궁하여 본다면 난 곳이 없을 것이다. 그러하면 지금의 그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 P219
"또 그 고통을 아는 그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살피되 살펴보고 또살펴보면 갑자기 크게 깨칠 것이니 이것이 내가 그대에게 바라는 바요, 부디 부탁하고 또 부탁드리오. 이것이 내 병문안이오."
뒤숲의 대나무가 바람에 스치어 창과 칼이 서로 맞부딪치는 금속성 소리를 내고 있었고, 대나무의 날카로운 칼에 바람의 살을 에어내는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참으로 좋은 편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대가 병이 났다면 그 병든곳이 어디인가. 마음인가, 몸인가. 몸이라면 흙인가, 물인가, 바람인가, 불인가. 마음이라면 실제로는 없는 것이니 병이 일어난 곳은없는 것이다. 그 병이 난 곳이 어디인가, 그 고통이 있는 자리가 어디인가를 따지기보다 그 ‘고통을 아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라. ‘고통을 느끼는 주인공‘이 바로 누구인가를 살펴보라. 나옹 스님은 이렇게 간곡하게 당부하였지요. 이렇게 살피되 살펴보고 또 살펴보면 갑자기 크게 깨닫게 될 것이니 이것이 내 부탁이요. 부탁입니다. 이것이 내 병문안의 글(便紙)입니다. - P220
"이 세상천지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에 태어난 만물 중에 병들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어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생활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물질과, 탐욕과, 쾌락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물질과 욕망의대리인생을 사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남의 일생을 대신 살아주고 있는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열반에 들기 석달 전에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깁니다.
"너희는 네 마음의 주인이 돼라.‘
단 하루만이라도 성성히 깨어 있어 온전히 자기 마음의 주인공으로 삶을 사는 사람은 노예가 되어 백 세를 사는 사람보다 참 자유를얻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지요."
- P221
마음으로 이 몸을 관찰하되숨을 길게 들이쉬고 내쉴 때는 그 길다는 것을 알고, 짧게 들이쉬고 내쉴 때는 그 짧다는 것을 알아라
이 몸이 어디 갈 때에는 가는 줄 알고 머물 때는 머무는 줄 알며, 앉을 때는 앉았음을 알고 누웠을 때는 누웠다는 상태를 바로 보아 생각이 그 몸의 행동 밖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라.‘
아주 간단한 설법이지만 그 말은 무한한 진리를 담고 있지요. 부처님은 우리가 머물 때는 머무르는 줄 알며, 앉아 있을 때는 앉았음을 알고, 누웠을 때는 누웠다는 사실 이외의 것은 생각지 말라고 이르셨습니다. 즉 순간 순간의 그 현재에 머물러 있어 생각이 마음 밖으로 흩어지지 말라고 하셨지요. 그리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즐거움을 누릴 때는 즐거운 줄 알고 괴로움을 느낄 때는 괴로운줄 알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을 때는 또한 그런 줄을 알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스님은 두 손으로 다시 빈 잔에 차를 따르며 말하였다.
"내가 지금 빈 잔에 차를 따르고 있는 이 순간에는 내 온몸과 마음이 차를 따르는 행위에 집중되어 있어야 합니다. 온 우주가 이 빈 찻잔에 담겨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하는 행위는 차를 따르고 있음이 아니라 온 우주를 기울여 그것을 찻잔 속에 따르고 있는절대의 행위이지요."
- P222
"옛날 야보라는 선사는 <금강경송(金剛經頌)>이라는 노래속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습니다.
‘대(竹)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지 않고
달(月)이 물 밑을 뚫어도
물위에 흔적조차 없다."
참으로 좋은 시가 아닙니까. 달빛에 비친 대나무 그림자가 바람에흔들리면 뜨락을 쓸어도 먼지가 일어나지 않고, 달이 물위에 떠 있어 물 속을 꿰뚫어도 물위에 생채기 하나 남기지 않는다는 아름다운선시입니다. - P229
"보아라. 모든 세상 모든 것은 지금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그대의 눈이 타오르고 있다. 눈에 비치는 형상이 타오르고 있다. 그형상을 인식하는 생각도 타오르고 있다. 눈으로 보아서 생기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모두 타고 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으로 인하여 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 노여움의 불, 어리석음의 불로 인하여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대여, 이것을 바로 보는 사람은 모든 것에 대한 애착이 없어지리라. 애착이 없어지면 그대의 마음속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이 꺼질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는 평화를 누릴 것이다."
그렇다.
타오르고 있는 것은 부처의 말대로 저 하늘과 저 바다가 아니다.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이 타오르고 있음이다. 내 눈이 타오르고 있으므로 온 세상이 타오르는 것이다. 타오르고 있는 것은 저 생사의 바다가 아니다. 그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타오르고 있으므로 온세상이 그대로 화택(宅)이다.
온 세상이 그대로 불타는 집(室)이며, 온 세상이 그대로 불타는묘지였다.- P236
임제는 선가 사상 가장 유명한 법문을 하나 남기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함께 도를 닦는 여러 벗이여.
그대들이 참다운 견해를 얻고자 하려면 오직 한 가지 세상의 속임수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안으로나 밖으로나 만나는 것은 바로 죽여버려라向外 逢使).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 권속을 만나면 친척 권속을 죽여야만 비로소 해탈하여 어떠한 경계(境界)에서도 얽매이지 않고 인혹(人)과 물혹(物)을 꿰뚫어 자유인이 될 것이다
- P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