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존하기 위해 환경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기감"일라고 한다. 이 문장을 "환경" 대신 사회적 환경, 즉 "타인"으로 바꿔 읽으면 그게 바로 "자존감"의 개념이다. 내가 자존감을높이기 위해 환경을 바꾸려 하거나 세상에 거는 기대를 조정하듯이,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타인을 바꾸려 하거나 타인에 거는 기대를 조정한다. 조정이 적정하여 적절한 결과를 얻는다면 자존감은 안정, 즉 균형 상태를 이룰 것이다. 하지만 조정이 미흡하거나 과도하면 자존감은 불균형 상태에 빠질 것이다. 자존감에 불균형이 오면 내가 타인을 무리하게 바꾸려는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내가 타인의 기대를 너무 부정적으로 추정하여 스스로 우울증이나 불안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자존감이 형성되고 발달하는 과정, 또 불균형에 빠지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자 뇌의 알로스테시스allostasis 기능을소개한다. 알로스테시스는 항상성 homeostasis 의 불균형을 더 효율적으로 예측하고 예방하기 위해 끊임없이 외부 환경을 활용하는 생체 기능이다. 신체 기관의 불균형이 감지되면 비로소 그 원인을 확인해 복구하는 수동적 메커니즘의 항상성과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개념이 아주 다르다. 지극히 미래 지향적인 알로스테시스는 유기체 전체의 궁극적 목표인 생존을 존속하기 위해 항상성 유지에 필요한 생물학적자원을 분배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끊임없이 효율성을 추구한다.
- P8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자기는 신체와 환경 혹은 나와 타인 간의관계를 통해서만 규정될 수 있다. 또한 자기라는 개념은 고정된 것이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체 상태와 외부 환경 간의 최적의 조합을 찾아가는 유동적인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일생 동안 내 모든 행동은 신체를 세상이라는 외부 환경에 끼워 맞추는 과정의 반복이며, 자기는 이 과정을 통해 생성되고 변화한다. 이 자기를 규정하는 과정에서 외부 환경의 제약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내부 신체의 요구 신호가 과도할 때 불균형은 발생한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강한 욕구와 인정받기 어려운 조건이 만났을 때, 안정된 균형점으로부터 멀어진 이러한 순간이 자존감 불균형 상태인 셈이다.- P114
스트레스를 경험할 때 이에 대처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있다. 첫 번째 방식은 앞서 든 트램펄린 예시에서 주변의 작은 공들까지 끌어모아 웅덩이를 점점 더 키워가는 것이다. 이런 식의 대처를 자기 의식 self-consciousness 이라 한다. 두 번째 방식은 트램펄린 예시에서 무거운 쇠공을 어떻게든 빼내듯이 처음엔 힘겹더라도 다시 균형점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대처를 자기 인식 self-awareness 이라한다. 자기 인식은 많은 노력을 요구하지만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이를 해소해주는 근본적 해결책을 제공해줄 수 있다. 반면에 자기 의식은 불균형의 근본적인 해결 없이 다른 대상으로 원인을 돌려 스트레스와 불균형을 오히려 점점 더 키워가는 대처 방식이다. 이 과정이 장기적으로 반복되면 더 이상 불균형 해소가 어려운 상태로 빠질 수 있다.- P156
자기 의식이란 언젠가는 파도가 몰려와 힘없이 허물어버릴 모래성을 간신히 버티면서 아슬아슬하게 쌓아가는, 마치 묘기를 시연하는 것처럼 불안해하면서 하루하루 근근이 자존감 불균형을 해소해가는 방식이다. 반면 자기 인식이란 자신이 처한 상황의 불안정성을 명확히 알아차리고 좀 더 단단한 기반에서 더 내구성 좋은 재료들을 하나씩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 튼튼한 성을 만들어가는 자존감 불균형해소 방식이다. 지금까지 만든 모래성이 아까운 마음은 누구에게나동일하겠지만, 이 성을 차마 허물지 못하고 새롭게 출발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파도가 몰려올 때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충격을 경험할 것이다. 자기 인식이 주는 순간의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과거의 나를 정리하고 새로운 나를 찾아간다면, 느리지만 훨씬 오래먼 여정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P157
여러 유사한 개념을 하나로 묶어 범주화하는 능력은 용량이 제한된 뇌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었다. 실제로 인간은 범주화를 통해 이론적으로 거의 무한에 가까운 정보들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범주화 능력은 필연적으로 정보의 차별화를 초래한다. 범주에 가까운 정보와 먼 정보를 동등하게 보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다. 범주를가장 잘 대표하는 사례에 가까울수록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멀어질수록 낮은 가치를 부여하는 셈이다. 뇌의 범주화 기능은 다양한 사회적 정보들을 개념화하고 이렇게 분류한 정보들에 가치를 차등적으로부여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수많은 고정관념과 편견은 바로범주화 능력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 P171
일생 동안 끊임없이 익숙함과 새로움 간의 균형을 추구하며 가치를 학습해온 우리 뇌는 자연스럽게 신체와 환경의 변화에 크게 영향받지 않는, 생존을 위한 핵심적 가치들을 점차 터득하게 된다. 바로직관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P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