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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새님의 서재
  • 좀비 제너레이션
  • 정명섭
  • 10,800원 (10%600)
  • 2013-05-15
  • : 75


좀비zombie. 좀비가 아무래도 요즘 대세인 듯싶다. 한 때 늑대인간과 뱀파이어가 유행처럼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통해 우리들을 찾아왔던 것처럼 말이다. 집단을 이뤄 의식도 감정도 없이 몰려다니며 사람들을 감염시키는 시체 무리는 여태까지 수많은 매체와 장르에서 다뤄졌는데 최근 들어서는 다소 그 스토리를 바꾸기 시작했다. <웜 바디스>라는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처음에 시놉시스만을 보고선 ‘웬 이런 병맛 영화가...’하고 생각했더랬다. 최근에 즐겨 들었던 샤이니의 노래 <Why so serious?>도 그렇고 포미닛의 <이름이 뭐예요?>도 그렇고 역시 좀비와 관련된 가사나 뮤직비디오가 한국에서도 나왔다. 그만큼 좀비는 이제 단순히 징그럽고 무서운,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걸어 다니는 시체의 모습을 넘어, 나름대로는 친숙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각인된 것 같기도 하다.


뭐, 그렇다고 해도 이 책에 등장하는 좀비는 정말 그 자체의 좀비다. 인간을 위협하고, 전염시켜 똑같은 좀비로 만드는. 색다른 것은 한국 소설이니만큼 스토리의 배경도 서울이라는 것이다. 사실 나처럼 좀비물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좀비라고 하면 대개 미국이란 배경 속의 그것이 떠오른다. 그런데 서울, 그것도 이름도 익숙한 합정동이라니 신선하기도 하고 내가 아는 장소라 그만큼 더 실감나기도 했다.


내용은 크게 두 파트가 번갈아가면서 등장한다. ‘좀비생존매뉴얼’과 화자인 ‘나’의 이야기이다. 합정동에서 카페를 하는 ‘나’는 정체모를 손님들이 두고 간 <좀비생존매뉴얼>을 우연히 얻게 된다. 애초에 좀비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믿지 않는 ‘나’에겐 얼핏 허무맹랑 말들만 늘어놓은 매뉴얼이 쓸모없어 보이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그 다음날 정말 좀비가 등장하고 ‘나’는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좀비와 싸우고 도망친다.


쉴 새 없이 등장하는 사건들 덕에 나 또한 긴장하고 흥미진진하게 책을 읽어나갔던 것 같다. 다만 조금 아쉬웠던 점은, 이 책 자체가 ‘나’의 이야기보다는 좀비 매뉴얼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것이다. 뭐, 그건 또 그 나름대로 매력 있지만 –확실히 이 소설은 그 자체로서 <좀비생존매뉴얼>을 대체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스토리가 죽은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나’라는 주인공은 가만 보면 어찌나 냉철하고 침착한 사람인지, 결코 매뉴얼을 슥 한 번 읽어보고 생애 처음으로 믿지도 않던 좀비를 맞닥뜨린 사람으로는 보이지가 않았다. 스토리 전개상 어쩔 수 없는 설정이었다고 해도, 그러한 주인공의 행동은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할까.


인상적이었던 것은 뒷부분이었다.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원시사회가 살기는 어렵지만 서로 돕고 도와준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법률과 그것을 강제할 공권력이 사라졌을 때 인간들은 스스로 심판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168p) 좀비가 등장함에 따라 사회가 존재하기 위한 어떠한 체계도 없는 세계 속에 인간은 던져지게 된다. 하지만 그 세계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원시세계랑은 조금 다르다고 본다. 원래 법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있던 법이 없어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우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 맞춰서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자유인이라 스스로를 진단해도, 우리가 언어라는 것을 습득한 이상은, 인간의 세계에 편입되고 점점 그것에 익숙해진다. 그러나 좀비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그 익숙함을 파괴하고 무법지대로 우리를 몰아넣는다. 그 잔인하고 열악한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그저 생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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