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확 띄는 핫핑크의 띠지에 적혀있는 ‘오에 겐자부로 상 수장작 <쓰리>의 자매편’은 참 노려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멘트인 동시에 그만큼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작가의 말에서도 대놓고 <쓰리>의 자매편으로 생각하고 썼다는 말이 있으니까 그만큼 연결고리가 많이 있겠지 싶어서, 책을 읽기 전부터 본편이 궁금해졌다.
소설 자체는 일본소설 특유의 몽환적인 느낌이라든지 그,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 힘든 탐미적인 분위기가 도드라지는 글이었다. 소재나 캐릭터들도 음, 아주 일본 특유의 느낌이 많이 난다고 하나. 사실 난 개인적으로 그런 글을 딱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일말의 조소도 품을 수 없는 그런 류의 소설을 싫어하는 편이고 그렇기에 일본 소설은 특정 작가를 제외하고는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예전에 멋도 모르고 온다 리쿠의 소설을 사서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다섯 번 도전 후 결국 패배했던 기억이 난다- 그랬기에 다소 이해하기 힘든, 그리고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표현들이 나에겐 다소 생소하고도 거북스럽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들을 꽤 흥미로웠는데, 특히 유리카의 일생이 기자키라는 남자에 의해 처음부터 계획되고 앞으로도 계획될 것이라는 설정은 마치 영화 <트루먼 쇼>를 떠올리게 했다.주체적으로, 그저 마음 가고 몸 가는대로 살았다고 생각해온 스스로의 일생이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전부 만들어진 것이란 것을 깨달았을 때의 공포는 어찌 표현할 수도 없지 않을까. 또한 죽음 뒤에도 온전히 나 자신으로 남을 수 없다니 참으로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목인 ‘왕국’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나는 두가지정도로 해석했는데 첫 번째는 기자키가 세운 그만의 왕국,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왕국‘들’이다. 전자의 뜻은 말 그대로 기자키가 왕좌에 앉은 거대한 왕국이며 그는 아주 높은 자리에서 다른 이들을 내려다보며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 마냥 그들을 조종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왕국의 안에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살아가는, 유리카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한편 두 번째 해석에 대해 말하자면, 모든 개개인은 자기만의 왕국을 가지고 있고 마치 전쟁을 하듯 서로서로의 왕국들이 충돌을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조종하기 위해 인질을 잡고 협박을 하는 일련의 행위는 확실히 전쟁의 그것과도 닮아 있다. 다만 처음에 유리카에게 그것이 통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녀에게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아쉬운 것도 없었기 때문인데, 생에 어떠한 미련도 없어 보였던 그녀도 결국에는 ‘살아있는’ 존재로서 죽음보다는 생의 가치를 쫓는 모습을 보인다. 그랬기에 유리카는 끝까지 제 왕국을 지켜내기 위해 싸웠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