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까지 청소년 문학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소설은 많이 읽어보지 못했었다. 내가 나이가 들어버려서였을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막연히 조금은 유치하고 비현실적인 조언이나 꿈들로만 가득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확실히 책을 읽으면서도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고는 말 못할 것 같다. 나에게는 이미 지나버린 시간들을 많이 잊고, 잃어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재밌었고 독특했으며 신기했다.
잉여인간이 꿈인 태봉과 전교 1등 슬아. 그들은 겉보기에는 서로 정반대편에 서 있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닮았기에 모험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둘을 보면서 버림과 소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태봉은 무엇도 가질 수 없기에 그나마 있는 것도 내버리려고 한다. 또한 슬아는 버려지지 않기 위하여 무엇이든 가짐으로써 자신만의 동앗줄을 만든다. 처음에는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넌 왜 다 버리려고 하니? 그러는 넌 왜 못가져서 안달이니. 그러나 이야기의 끝으로 갈수록 둘은 버림과 소유 그 중간지점인 '선택'에 대해서 깨달아간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태봉이 아버지의 일기장과 슬아의 어머니가 전화통화를 하는 부분이었다. 고등학생인 주인공 아이들 둘의 감정보다 그네 부모님들의 마음에 더 공감을 하게 되다니. 이상하다....난 아직 이십대인데.....철이 든 건지. 동심을 잃은 건지 알 수 없다. 어쨌든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솔직함 때문이다. 평소 일상에서만 보아도 아버지들은 홀로 외로움을 감춘다. 아버지가 슈퍼맨보다 강할 거라고 믿는 어린 자식들은 점점 자라면서 아버지의 좁아지는 등을 느낀다. 그리고 당신께서 그저 슈퍼히어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기장은 아버지가 듬직한 가장이기 이전에 한 명의 사람이기에 그만큼 미숙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슬아 어머니의 대사도 그렇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설령 입양아라고 해도 슬아의 어머니가 딸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슬아와 상하를 대하는 행동에는 분명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습조차 오히려 인간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욕망이라는 것이 혼자 자라는 것 같냐고 반문했던 그녀의 말이 떠오른다. 욕망은 부정적인 말이 아니다. 선택 또한 욕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치면 우리는 모두 욕망하며 살아가는 셈이다.
소설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은 몇몇의 등장인물을 비롯해 이야기의 연계가 다소 인위적이라는 것이었다. 현실성 있기보다는, '자신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는 글의 교훈을 실현시키기 위해 억지로 끼워맞춘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주인공들이 내뱉는 대사나, 근수의 랩 등에서 그다지 공감이나 진실성을 느낄 수가 없었다. 또한 곳곳에서 차용한 소재며 이미지들, 가령 웜홀과 순도 100센트 금 같은 것들이 한 데 어우러지기보다는 좀 따로 논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상깊었던 구절>
상상은 상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상상으로 위로받아 힘을 낼 수 있다면 상상은 현실이 되는 것이다.- 39p
"길바닥을 보면 말이야. 똑 고르고 편편한 것 같은데 비 온 뒤 보면 물이 고인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어. 사람도 똑같다고 생각해. 겉보기엔 평온해 보이지만 나름의 그늘과 굴곡이 있어.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107p
"정해진 건 없는 것 같은데, 사람들은 마치 정해진 길이 있는 거처럼 똑같은 길로 똑같은 행동을 하며 가는 것 같아. 프로그램이 입력된 자동인형들처럼. 더 많은 가능성이 있는 것도 모른 채 말이야. 대개 그런 부류들은 묻지도 않아. 왜 내가 여기에 있는지...."-13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