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만의 '문체'를 열망하고, 반생을 문학을 위해 보낸 사람이다. 나는 모리스 블랑쇼에게서 문체가 '피의 신비로움에, 본능에 연결되어 있는 난해한 부분'이라는 걸 배웠다. 문학하기의 어려움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것의 어려움이다."
"나는 니체에게서 은유와 비유를 써서 말하는 법을, 그리고 문체가 곧 몸이며 정신이라는 걸 배웠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한 독자로서 장석주 시인을 신뢰한다.
그의 높은 안목과 해박한 지식, 시적 통찰, 명확하고 부드러운 문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언제나 그의 신간이 나오면 주저하지 않고 사서 읽는다. 장석주 시인의 저서는 깊이와 통찰이 남다르기 때문에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고, 여러 번 읽어도 지루하지 않고 늘 새롭다. 전혀 돈이 아깝지 않다.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이 반생을 오직 문학만을 위해,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기를 열망하며,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달려왔다고 고백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에 가장 영향을 미친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여러 작가들을 선별해 그 중 특히 귀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을 발췌해 책에 담아냈다. 릴케, 최승자, 롤랑 바르트, 고은, 카뮈, 정약용, 노자, 다자이 오사무, 기형도, 미시마 유키오, 발레리, 프리모 레비, 헤밍웨이, 김현, 박지원 등 많은 작가들의 명문장을 이 책 한 권에서 만날 수 있었다.
사실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작가도 있었고, 내 사유의 빈약함을 여실히 느낄 정도로 작가의 해박함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스무 살 때, 책을 읽으면 인상 깊은 구절들을 수첩에 따로 적어놓으며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 보곤 했었는데...... 이 책을 보니 그때 생각도 나고, 아무때나 책의 어느 곳을 펼쳐도 부담스럽지 않게 술술 읽을 수 있어 참 좋았다. 교양도서로 한 권쯤 가지고 있으면 유용하게 잘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책 곳곳에 그려진 삽화들(작가들의 얼굴)이 읽는 재미를 더해준 것 같다. 문장이 잘 읽히고, 내용이 재밌어서 하루만에 금세 다 읽었다.
작가가 1년에 여러 권의 책을 내고, 바쁘게 활동한다고 들었는데 언제 이렇게 많은 양의 책을 읽고, 글을 쓰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오늘 교보문고에 다녀왔는데, 교보빌딩 간판이 장석주 시인의 <대추>에서 문정희 시인의 시 구절로 바뀐 것을 보았다. 삭막한 광화문 사거리에서 계절마다 바뀌는 시 한 구절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이런 어려운 시대에 결국 우리를 버티게 해주고 세워주는 것은 지혜로운 누군가의 말, '문장'- (니체가 말하길 문체가 곧 몸이며 정신이라고 한)이 아닐까 생각했다.
추운 겨울, 책 한 권으로 저리 많은 작가들의 귀한 '정신'을 엿보니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우리는 이 책에 소개된 글 몇 줄을 읽는 것이지만 작가들이 이 글을 쓰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세월을 겪고, 고통을 참아냈을까? 니체 식으로 말하자면 '피로 쓴' 글들. 여러번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