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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뽐므의 하찮음은 무게가 엄청나게 나갔다."
 

이 소설의 명구절을 뽑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 한 문장을 선택하겠다.

마치 버지니아 울프의 올란도에서

"하루는 짧고, 하루가 모두였으니까"를 읽었을 때처럼.

 

 

나는 뽐므, 그녀의 하찮음에서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보았다.

밟히는 풀들이 말이 없는 것처럼,

백년 전부터 혹은 더 오래 전부터

고성의 계단은 침묵했겠지.

뽐므 그녀처럼.

 

이 소설의 배경은 프랑스 68혁명 때이고,

한 지식인 남자가 뽐므라는 노동자 계층의 순한 여자를

어떻게, 부드럽게, 유린하는지 그려진다.

(소설의 시점이 굉장히 독특하다. 전지적작가시점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변하는데, 굉장히 독특한 문체를 사용했다. 원본으로 읽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영화로도 나와있다는데, 찾아서 꼭 보고 싶다.

 

정말 오랜만에 근사한 캐릭터를 보았다.

 

뽐므는 동요하지 않는 오래된 슬픔이다.

그녀는 사과처럼 빨갛고, 걸레처럼 누추하고, 조용하고,

순수하고, 겁이 없고, 지나치게 오래 견디고, 온몸이

녹이 슬어 버려질 때조차 신중하고, 파랗고, 때론 갈색이고,

부드럽고, 우울하고, 귀가 활짝 열려 있고, 백합처럼 자고, 

뽐므는 식초 같고, 가장 무거운 배 같고, 한 번도 출항하지 않고 묶여있는 오래된 배 같고, 또 뽐므는-

 

뽐므는 자꾸 울고 싶어지게 만든다.

 

 

한 여자의 존재가 얼마나 가벼운지, 혹은 무거운지,

사랑이 얼마나 잔인한 잣대로 잴 수 있는 도형인지,

소통의 단절이 불러오는 허망함이 얼마나 크게 부푸는지,

소설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몇 군데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속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아름다웠다.

파스칼 레네,

파스칼 레네,

 

 

천천히 여러 번 읽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는 무겁게, 공들여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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