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다 덮고 오소소 소름이 끼쳤다.
새벽 4시가 넘은 시각, 귀신들만 살아서 이불 속으로, 창문틈으로, 방바닥 이곳저곳으로
자신들의 우울한 손가락을 디밀어보는 시각.
장석주 시인의 시집을 다 읽고 나서,
도저히 반짝! 각성된 이 정신을 수습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시들이 도통 말이 없다.
말이 없음으로 말을 하고,
시 속 내밀한 움직임조차, 열정적인 움직임조차
묵언의 댄스 같다.
놀랍다. 목소리의 옥타브는 한없이 낮고,
의미는 시원하게 깊다.
그는 분명, "또"
한 꺼플 벗어, 변태한 것 같다.
전과는 또 다르다. 다른 무언가를 느꼈다.
마지막 시를 읽고는 눈물이 핑 돌았다.
시인은 자신의 인생의 뒤안길에 벌써 도착해 (너무 빠르다!)
자신이 언젠가 맞게 될 죽음을 친구처럼 들여다 본다.
무서움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람도 아니고,
그냥 모가지를 옆으로 꺾어, 슬며시 바라본다.
그 자태가 그냥 '시' 같다고 생각했다.
특히 맨 뒤에 48가지 시에 대한 그의 단상들을 다 읽으면,
이 사람 천재아닌가? 라는 생각까지 든다.
사람은 무엇이든 하나를 오래 파면 득도를 하기 마련이라던데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처럼,
이 중년의 시인, 우직한 바보 이반 같은 시인이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
시를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지금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시집이다.
그러면 자신이 쓰고 있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금세 알 수 있을 터.
나는 적어도 열 번 이상은
맨 뒤의 단상 48가지를 다시 천천히 읽고, 써볼 생각이다.
좋은 시인은 "어떤 상태"이냐가 결정하는 것이니까.
그것은 언어의 문제도, 기술에 문제도 아니니까.
시인이 쓰면 시도 산문도, 그냥 어떤 글이나 다 시가 되는가 보다.
그의 단상들 중 몇 가지,
"시인은 온갖 사물들과 연애를 하지만, 사물에 몰입하지 못하고 그것들을 뒤집어
이면을 본다."
"시는 무엇에 대한 의식이 아니라 의식의 수면에 무심히 비친 풍경이며,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 밑으로 흘러가 스미며 섞이는 마음 한 자락, 풍경에 묻어 풍경과 함께 오는
그 무엇이다."
"시는 세계가 걸치고 있는 낡은 겉옷의 구멍으로 언뜻언뜻 내비치는 존재의
속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