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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님의 서재
  • 림 : 잃기일지
  • 김서해 외
  • 15,300원 (10%850)
  • 2024-09-30
  • : 100

스타일도 주제도 제각기 천차만별인 소설들을 한 권으로 읽어 볼 수 있어 즐거웠다.


처음 읽었을 때 내게 가장 와닿은 작품은 김서해 작가의 <손가락이 미끄러지듯이>였으나 곱씹을수록 각 작품에서 저마다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중 박소민 작가의 <지옥에 갈 수 없지만 지금은> 얘기를 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겪은 솔은 자신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그의 마지막 자취를 쫓는다. 유클리드 기하학과 프랙탈 기하학이라는 낯선 수학 개념으로 복잡한 세상을 이해해 보려는 시도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 반대란다, 선생은 말했다. 복잡한 구조가 자연에 있는 게 아니라, 자연이 너무 복잡해서, 이걸 설명하기 위해 만든 법칙이 프랙털이야. 수학은 세계 그 자체는 아니지만 세계를 근사한단다.’(60)


2032년, 동성혼이 법제화되었다는 소식으로 시작되는 <손가락이 미끄러지듯이>는 4대로 이루어진 대가족에서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젊은, 젊다고 하기에는 나이든 예순일곱의 낀세대 ‘나’의 혼란을 담고 있다. 결말에서 ‘나’는 자신의 윗세대이자 자신의 삶을 희생으로 이끈 오래된 신념과 ‘손가락이 미끄러지듯이’ 그러나 의도적으로 손을 놓는다.


손을 잡으면 연대의 이미지, 손을 놓으면 단절의 이미지라고 단순히 생각했던 나는 결국 누구의 손도 잡지 않고 끝나는 이 소설이 신선하게 느껴지면서도 이렇게 결말을 낸 이유가 궁금했다. 다른 손을 잡기 위한 놓음, 상대가 나를 포기할 때 한 번만 더 손을 잡고 대화를 시도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작가의 답변이 기억에 남는다.


다섯 편의 단편소설이 묶인 이 책에는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어딘가로부터 미끄러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오랜 희생도 부정당하고 소중한 사람의 손도 놓치는 사람(<손가락이 미끄러지듯이>), 유일한 친구이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지옥에 갈 수 없지만 지금은), 생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것과 잃어버리고 있는 것과 앞으로 잃어버릴 것들을 생각하는 사람(<잃기일지>), ‘제대로 된 사랑’에 계속해서 실패하는 사람(<돼지 목에 사랑>), 자신을 ‘인간인 척하는 다른 종’처럼 느끼는 인간과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은 로봇(<심곡>). 그리고 이들은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테두리를 재구축하기 위해 시도한다.



*출판사에서 책을 지원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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