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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맥진님의 서재
  • 죽지 마, 소슬지
  • 원도
  • 15,300원 (10%850)
  • 2026-02-09
  • : 602
원도 작가의 소설을 한 권은 읽어봐야지 했었다. <눈물 대신 라면>이라는 책을 읽고 그의 이력을 알고부터다. <경찰관속으로>라는 책이 큰 반응을 얻은 후 그는 경찰 생활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경찰이었던 그의 이력은 모든 작품에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그게 흥미로운 요소이기도 하고 작품의 사실성을 높여주기도 하니 힘들었어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하겠다.

위의 책을 읽었던 건 몇달 전인데 잊어버리고 았다가 도서관 신간 큐레이션에서 작가의 이름을 발견하고 아맞다! 반가워서 집어들고 왔다. 그 책에서도 젊은이의 냄새가 진했는데 이 책도 그렇다. 나이들어가는 나의 정서와는 좀 결이 다르지만, 오래 살았다고 무게와 깊이가 꼭 있는 건 아니다. 이 책은 젊은이의 시각으로 쓰여졌지만 가볍거나 얕진 않다. 오히려 단조롭게 살아온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삶의 현장'이 들어있다.

그런데 이 책도 요즘 서사의 유행을 따르는지 '귀신'과 '빙의' '귀신이 보이는 주인공'이 주 설정이어서 읽다가 덮을까 잠시 고민했다. 드라마고 소설이고 요즘은 귀신이 단골손님인가. 그래도 덮기에는 재밌어서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죽은 소슬지 얘기를 하는데 귀신 설정 아니고는 어려웠겠다 싶어 이해가 가기도 했고.

경찰관 '하주'가 귀신을 보는 주인공이다. 작가님의 직업과 캐릭터가 그대로 반영된 듯하다. 하주는 경찰관으로서는 결정적인 핸디캡이 있었는데 바로 '급똥 문제' 였다. 화장실을 참아야하는 직업들이 꽤 많다. (초등교사 직업병으로 방광염이 있다. 유치원교사는 더하겠지) 경찰관은 이보다도 더할 것 같은데 급똥문제라니.... 그래서 하주는 이용가능한 화장실 지도를 파악하고 있을 정도다. 소슬지와의 만남도 똥과 무관하지 않았다.

과학수사팀인 하주는 변사자를 보는 게 일상이다. 그날도 변사 신고가 들어와 확인하러 간 원룸에서 화장실로 뛰어들고 말았다. 급볼일을 마치고 고개를 든 순간, 변사자가 거기에 있었다. (으악) 그리고 그날 밤, 본인의 원룸에서 아까 그 변사자, 소슬지의 귀신을 만난다.

소슬지 귀신은 원한을 해결하러 온 것도 아니고 딱히 요구사항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죽어서도 죽지못해(?) 떠돌며 힘들어하고 있을 뿐이었다. 죽어서 가는 곳에 어떻게 가는지를 모르는? 귀신과의 동거상황에 처음에는 분노했으나 은근 심한 오지랖인 하주는 소슬지를 연민하게 되고 그의 삶(?)에 끼어들게 된다. 그렇게 엮이고 풀려가는 이야기다.

나는 자식들에게 별로 해준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양친부모 다 건강히 존재하고 경제활동을 하며 그들이 취업할 때까지 집과 학비와 용돈을 해결해준 것만으로도 꽤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다는 걸 실감했다. 더 잘 사는 사람들 보면서 저런 것도 못해줬어... 하고 슬퍼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거다. 이 모든 배경이 전무한 젊은이가 세상에 내던져져서 7평 원룸 월세라도 살게 되기까지 얼마나 막막했는지, 고단했는지, 치열했는지, 외로웠는지, 사랑도 사치였는지, 그래서 좋아하는 감정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헤어지고 얼마나 아팠는지 절절히 느껴졌다. 죽고 나서 알게된 것들에 의하면 말이다. 그렇다 소슬지는 스물 아홉 젊은 나이에 무리해서 자기집 화장실에 쓰러져 죽은 이시대의 불쌍한 청년이다.

공무원 신분이라 그나마 나은 변하주 또한 부모님 노답에 동생들 줄줄이다. 잘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또한 소슬지의 다른 이름이다. 젊은이들 생각없고 철없다고 쉽게 욕하지만 나의 평생보다 힘든 삶의 현장을 지켜가고 있는 젊은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자주 까먹는다.

자식뻘인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젊은이들에 대한 응원의 필요성'으로 읽혔다. 젊은이들에겐 공감과 위로, 그외 다양한 깨달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가지 생각이 드는 것은 '어른의 존재'이다. 경찰관 하주의 '반장님' 근덕은 뚝배기(국물) 음식을 흡입하는 식성으로 하주의 소화기에 부하를 가하지만 젊은 동료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좋은 어른이다. 슬지의 어른은 너무 늦게 잠깐 만났다. 물류센터의 컨베이어벨트에서 쓰러지고 쫓겨나는 슬지를 쫓아나와 걱정해준 아주머니. "여사님이 우리 엄마면 좋겠어요." 라는 말에 크게 울어준 아주머니. 이런 어른들이 많아야지. 나는 어떤 어른인가.

전직 경찰 작가님이 작품에 풀어놓은 내용에 의하면 변사자는 매우 자주 꽤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모든 인생들의 주변에 방어벽이 적어도 세 겹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이라고 다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다. 이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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