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칼춤을 제발 막아 주세요
기진맥진 2026/07/2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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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랑 끝의 교사, 다시 교실 문을 열다
- 실천교육교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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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 - 2026-07-10
: 390
나는 평범한 초등교사로 30년 조금 넘게 근무하고 올 초에 퇴직했다. 나의 교직생활은 그리 파란만장하진 않았다. 하루하루 온힘을 다해 떠받쳐야할 만큼 무겁고 버거운 일이긴 했지만 그렇게 버티다보니 퇴직 가능한 시기가 와서 뒤도 안돌아보고 퇴직했다. 마지막날 인사자리에서 소감을 묻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무사퇴직이 감사할 뿐 후회도 미련도 없습니다."
영광도 찬사도 없이 그저 물러나는 자리에서 나는 왜 그렇게 감사했을까. 이 책에 답이 있다. 운이 좋으면 나처럼 특별한 재주 없는 교사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훌륭한 교사도 덫에 걸려 큰 상처를 입고 피흘리며 신음하고 오점에 괴로워한다. 그런 일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책으로 나오고 심지어 드라마에서까지표현된 것은 '그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괴롭히는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한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아니 그것도 피해 교사가 받는 시간, 물질, 정신적 고통에 비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수준이다. 그러니 점점 많은 이들이 시도한다. 이 무고한 교사 죽이기를.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아홉 명의 교사가 겪었던 아동학대 피소의 경험을 담았고 2부에는 이 책을 엮어낸 실천교사모임에서 회장이나 교권법무팀장 등 중책을 맡아 이 문제에 대해 연구와 경험이 풍부한 4명 선생님들의 제언이 실려있다. 매우 효율적이고 짜임새있는 구성이다.
1부를 쓰신 아홉 분의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는 것은 떠올리기 싫은 악몽같은 기억을 또박또박 되살려 그 과정을 상세히 적어주셨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아차 싶거나 아쉬웠던 부분과 천만다행이었던 지점들이 보인다. 같은 일을 당하는 분들께도 도움이 되겠지만 언제 피해를 당할지 모를 모든 교사들이 읽고 염두에 두어야할 내용들이다.
사례들은 모두 기가 막혔지만 익히 상상이 가능한 상황들이었다.
1) 6학년 교실의 권력자 학생이 마땅히 교사에게 돌아가야 할 권한을 두고보지 않고 세력을 만들어 담임을 몰아내려 모의한 경우 (그 조직 이름이 '교실혁명당'이라니 기가 막혀서)
2) 담임교사도 아닌 학폭 담당교사로 주어진 업무를 했을 뿐인데 가해학생들 측에서 아동학대 신고와 행정심판 청구가 들어온 경우
3) 성 사안 학폭을 끊임없이 일으키는 아이의 학폭 처리 후 보복성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온 경우 (심지어 그 부모가 교사였다니, 교사들도 학부모로 위치가 바뀌었을때 자기 발밑을 늘 점검할 필요가 있다)
4) 유치원 교사의 사례. 한국인 아버지가 해외에 체류 중이고 언어에 서툰 어머니가 데리고 있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를 극진히 돌봐줬으나 아이의 거짓말+한국말 못하는 엄마의 콜라보로 오해한 아버지가 신고한 경우 (다문화 학생... 편견없이 잘 지도해야 되지만 이런 경우 정말 모든 의욕 상실됨ㅠ)
5) 생활기록부를 자기 입맛에 맞게 고치기 위해서 아동학대 신고를 무기로 휘두른 경우
6) 아이의 문제행동에 비해 교육의지가 현저히 부족한부모가 긴 지도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학폭과 선도위원회 처분에 분노하여 아동학대 신고를 한 경우
7) 과학전담교사로 6학년 교육과정의 고난이도 실험을 할 때 보안경 착용을 지시하고 실험 안전교육을 철저히 했다는 이유로 정서적 학대 신고를 당한 경우
8)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와 더불어 교권보호위원회의 2차 가해를 당한 경우
9) 전담시간의 무질서에 대해 전해듣고 반 전체 학생들을 훈휵하는 과정에서 한 아이의 거짓진술로 학대 신고를 당한 경우
요약하면서도 기막히다는 생각이 또 든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어찌됐든 '혐의없음' 처분이 나왔다는 것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겪었던 불안과 공포, 억울함과 슬픔 등의 심적 고통은 필설로 다할 수가 없다. 또한 무혐의를 받아낸 것 또한 매우 다행스러운 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 사건발생 직후 교원단체와의 연결, 즉각적인 지원과 대응 (꼭 이럴 때를 대비해서는 아니지만 교사라면 교원단체 한곳에는 꼭 들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퇴직하며 탈퇴했지만 나는 세 곳에 들었었다. 다들 강점과 성격이 다르니 두 군데 정도 드는 걸 추천한다)
2) 교실 수업 장면에선 교사가 전문가지만, 조사를 받으러 갔을 때는 실수할 수 있는 불안한 존재일 뿐이다. 전문가와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 위의 단체 가입과도 연결되는 이야기다.
3) 기록의 중요성이다. 현장에 적자생존이라는 우스개소리가 통용될 정도로, 사안을 겪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이다.
"차가운 조사실의 압박감 속에서 나를 지켜주는 유일한 방패는 억울하다는 눈물이 아니라 빈틈없이 준비된 차가운 기록과 논리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146쪽)
내가 운이 엄청 좋았다고 느끼는 건, 나는 평소 독서기록 등 글쓰기를 즐기면서도 이런 기록에는 철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교과보다 생활지도 기록에 철저하지 못했는데, 다시 돌아간다면 이 부분을 반드시 보완할 것이다. 나는 평소 교사가 '지도자' '기록자' '평가자'의 역할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이 '기록자'의 역할을 다시한번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사시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교사의 꾸준한 기록은 학생의 성장 과정을 파악하는데도 반드시 도움이 된다.
4) 평소 관계를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다.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그렇게 신뢰로 형성된 관계는 중요할 때 힘이 된다. 위 아홉번째 사례에서도 교사를 살린 건 선생님을 신뢰하는 학생들의 증언이었다.
거칠게 요약했는데, 책을 읽어보면 이 모든 과정이 가까운 사람의, 심지어 나의 일처럼 와닿으며 꼭 필요한 지침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힘든 과정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다시 교실문을 여는' 선생님들께 감사와 응원이 마음이 생긴다. 극복하며 단단해지고 더 성숙해지는 마음에 존경심도 생겼다. 나같으면 적개심과 복수심 말고는 남지 않을 것 같은데. 선생님들은 훨씬 성숙하시더라구. 그게 이후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는 맞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응원을 보낼 뿐이다.
이렇게 극복했으니 된 건가. 그게 끝이 아니다. 이렇게 어이없는 아동학대 신고의 칼날을 제멋대로 휘두르지 않도록 제도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누군가가 기분 나쁘다고 트집을 잡으면 그로부터 교실이 마비되는 이 잘못된 현실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학교가 불안한 쟁송의 장이 아니라 안정된 신뢰의 장이 되어야 한다. 불안과 미움 속에서는 배움이 싹틀 수 없다. 2부의 선생님들의 분석과 제언이 이후 사회 변화에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교사들의 필독서이자 학부모, 행정가, 정책자 등 교육에 옷깃이라도 스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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