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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맥진님의 서재
  •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 손원평
  • 15,300원 (10%850)
  • 2026-03-27
  • : 10,930
<아몬드>를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이후 손원평 작가의 책을 샅샅이... 찾아 읽은 건 아니고 <서른의 반격>이라는 소설과 <위풍당당 여우 꼬리>라는 동화를 이어서 읽었다. 이 책이 나온 걸 보고 오호, 저 책도! 했었는데 며칠 전 도서관 신간코너에 아무도 안모셔가고 딱 놓여있어서 받들어들고 나왔다.ㅎㅎ

제목도 잘 지었고 표지도 느낌을 완전 잘 살린 것 같다 어떤 느낌이냐면 불길하고 섬뜩한 느낌...ㅠ 이 책은 매우 흥미롭고도 불쾌했다. 재미는 있는데 마음은 불편했다. 그 불편의 정도는 여러 단계가 있었다. 순한 맛에서부터 핵매운맛까지. 아주 주관적인 기준으로 매운맛 점수를 매기며 리뷰를 해볼까 한다.

[당신의 손끝] 이건 '약간 순한 맛'이라 하겠다. 미술을 전공하고 딱히 자리를 못 잡은 효원은 좋은 동네의 문화센터에 채용이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보수는 매우 적지만 경력 면에서) 거기서 주영이라는 수강자와의 만남은 서로에게 행운이었다. 주영은 그림에서 행복을 찾아갔고 주4회나 수강을 끊어 효원에게 경제적 안정감도 선사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여야 했을까. 주영이 선사한 성취감은 효원에게 자꾸 그 이상을 보게 했다. 결국 좀더 크게 벌인 일 앞에서 주영과의 관계는 칼같이 끊어지고, 몰래 숨어 들은 주영의 평가는 비수와도 같았다. 얼마나 비참하고 상처였을지 알겠지만 그래도 내가 순한 맛 범주에 넣은 것은 이정도는 '약이 되는 경험' 축에 넣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불킥하고 가슴을 칠 경험인 것은 맞는데, 약이 된다면 그래도 다행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모욕과 후회의 기억으로 다듬어지는 것 아닐까. 그렇게 세상을 배운다는 게 서글프고 씁쓸하긴 하지만.

[태양 아래 반짝이는]은 ‘아주 매운 맛’이되 더럽고 고약한 맛이다. 화자는 고급 호텔의 수영장에서 구조요원으로 근무하는 젊은 남자다. 누군가의 느긋한 휴양지가 누군가에게는 고된 일터가 될 때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심리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럴 때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까? 그 대답으로 이 젊은 남자는 최악을 보여준다. 내 기준으로는 그렇다.

법륜스님의 문답 영상을 어느 분이 페이스북에 공유를 했는데 썸네일에 “놀러나 다니는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되어 있길래 궁금해서 한번 열어 보았다. 내 딸 또래의 젊은 직장여성이 훌쩍 훌쩍 울면서 회사 다니기 힘들다고 스님께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썸네일의 저 말이다. “소설을 쓰는 예술가나 되든지 놀러나 다니는 부자로 살고 싶어요.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서 우리 같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스님의 말씀은 길어서 다 듣진 못하고 넘겨가며 대충 들어봤는데 의외로 이런 말씀이었다. 인류의 지나온 역사를 봐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형편도 과거보다 지금이 훨씬 덜 고생스럽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이미 소득 상위권들이 세금 많이 내고 있다... 젊으니까 열심히 살아보자 그런 말씀이셨다. 솔직히 그녀가 훌쩍거릴 때 코웃음이 나긴 했지만 딸처럼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했다. 에이구 이 딸래미야, 소설가는 뭐 쉬운 줄 아니? 그리고 너 회사 다니면서 월급 받고 세금 내잖아? 그럼 이미 소득 순위 어느정도는 되는 거야. 진짜로 너말처럼 그래야 한다면 니 월급에서도 더 떼야 돼. 그러기는 싫지? 젊고 멀쩡한 너가 일하지 않고 놀고먹겠다는데 왜 누가 돈을 보태줘야 하니?

난 그 딸래미가 지금은 열심히 잘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회사 때려치고 싶은 생각이야 누군들 안해봤을라구. 그날따라 유난히 힘들어서 했던 투정이었을 거라고. 근데 투정에서 그치지 않고 되지않는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 작품의 화자 같은 놈들이다. 세상의 격차는 그것대로 줄여가고자 하는 의식이 있어야겠지만 너같은 놈이 하는 짓은 그냥 범죄행위지. 내가 힘들여 일하는 곳이 팔자좋은 인간들의 휴양지라 해도 나는 너처럼 비틀어지진 않을 것 같아. 시스템? 인간의 시스템인데 모순 많지. 하지만 너의 행동이 더 모순이야. 너 같은 인간이 있는 한 모순은 더 깊어질 거야. 그가 마지막 새벽에 수영장 물에 풀어놓은 그 불순물은 딱 그 내면의 모습과도 같았다. 나는 그에게 세상이 어쩌구 타령할 기회를 절대 주지 않겠다. 그냥 너는, 아웃이야. 잡혀서 제대로 처벌받길 바란다. 통렬히 깨달은 후에야 기회가 있을 것.

[피아노]는 드물게 ‘순한 맛’이었다. 약간은 따뜻한 맛이기도 했다. 상황은 서글프고 딱히 밝은 앞날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지만 막장으로는 치닫지 않아서 마음이 한결 나았다. 아파트에서 공부방을 하던 혜심은 가르치는 역량은 우수했지만 요즘 엄마들의 마음에 들기에는 너무 뻣뻣한 사람이었다. 수강생은 줄고 거기다가 아파트를 옮겨타려다 시기 조절에 실패해 사지도 못하고 있는 집만 팔고 손해보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공부방도 접고 외곽으로 이사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자꾸만 찾아오는 아이가 있다. 준용이라는 이 아이는 더구나 수강료를 넉 달이나 안낸 아이다. 공부방에는 모두의 추억이 어린 피아노가 있었는데 중고로 팔기도 여의치 않아 딱지를 사다붙여 내놓은 다음날, 그걸 누군가 중고로 내놓은 걸 보았고, 찾아간 집에서 바로 준용을 마주쳤다. 사실 버린 걸 주웠는데 왜 화를 내냐고 뻗댈 수도 있는데, 준용은 순순히 카트를 밀고 제자리로 되돌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부탁한다. 공부 좀 봐주시면 안되냐고. 이사가 얼마 남지 않은 날 혜심과 준용은 마지막 수업을 한다.

크게 자극적인 소재는 없었지만 이 작품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건 나도 아이들과 긴 세월을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나도 혜심처럼 원칙주의자였고, 아이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주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유난히 기대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 경우는 가정집의 공부방이었으니 가정이 무너진 준용이 더욱 애착을 느끼는 공간이었던 것 같다. 주변 세계가 무너진 아이들을 내가 입양해서 키울 게 아니라면 애정을 주는 데 한계가 있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관계라면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칼같이 끊는 것만 방법인 것은 아니다. 혜심의 마지막 수업이 준용에게 실제로 큰 도움이 될 수도 없고 지속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거부당하지 않았다는 기억, 마지막 따뜻함을 주고 떠났다는 신뢰감은 오래 남을 것 같다. 어른들이 아이를 대할 때 여러 원칙과 현실적인 상황과 더불어 생각해야 할 점이 이런 점이다. 쉽지는 않은 일이지.

[그 아이]는 '약간 매운 맛'이라고 할까. 몰랐던 세상 풍경 한 켠을 보았다 정도. 그 세상은 명품 소비 세상이다. 나로서는 명품 가방이 백만원이든 천만원이든 아무 상관없다. 왜 저래~? 이런 느낌이니까. 이 작품 속 정민은 구매대행 알바를 한다. 추운 겨울날 오픈런을 위해 몇시간씩 줄을 서서 구매해 주는 역할이다. 이 작품을 읽고 명품 가방은 중고가격이 신상 가격보다 더 비쌀 수도 있고, 그런 전문업자(리셀러)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정민아, 너무 맘 상하지 말고 니 갈 길 가라! 소수의 세상을 굳이 들여다보며 부러워하진 말자꾸나.

[유령의 집]은 여기서 가장 '핵 매운맛', 정말 고통스러운, 몸부림치도록 견디기 힘든 맛이라고 해야겠다. 아니 이게 이렇게 됐다는 거야? 눈을 비비며 다시 봐야 할 만큼 충격적인 장면들이었다. 젊은이들의 경제적 죽음, 거기에 이르게 된 절망이 너무 처절한 장면들과 함께 불시에 다가왔다. 그 작품 안에서 개는 비참함과 끔찍함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작품 앞에 실린 윤동주 님의 시는.... 돌아와서 다시 읽으면 눈물을 부른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또다른 고향 중에서)

[모자이크]는 '매운 맛'이지만 떫고 비위 상하는 매운 맛이다. 화자는 아무 목표 없이 고시원의 방 한 칸에서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다 유튜버가 된 여자인데... 끝까지 가면을 쓰고 익명성을 유지했어야 하는 것을 딱 한 번 경계심을 풀고 누굴 만났다가 치명상을 입고 계정을 접었다. 이후 같은 수법으로 복수를.... 포장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랄까. B컷은 뒤로 다 감추고 A컷으로만 자신을 과시하는 SNS의 허상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심지어 A컷도 아닌 꾸며낸 거짓컷으로 사람들을 속이기도 하지. 결국에는 자기 자신까지도. 이 여자는 부르짖는다.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잖아요. 네, 그럼요, 아무도 감히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 못할 거예요. 절대로요.”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그런 속성을 안 가진 사람은 없지만 조절 능력에는 엄청난 차이가 차이가 있다는 점. 성찰 능력도.

[조망]도 '핵 매운맛'이다. 뒤통수를 내리누르는 둔중한 매운맛이다. 고속도로 요금소 그 좁은 공간에 갇혀 일하는 수하에게는 얼마전부터 자신만 아는 도피처가 생겼다. 쇼핑몰로 짓다가 중단된 큰 건물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그 건물을 계단으로 올라 꼭대기 전망층에 올랐을 때 본 광경은 수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특히 비가 세차게 올 때의 광경이.

큰 비는 수하에게 부모를 잃은 사고의 기억이자 어린 나이에 거부할 수 없는 폭력으로부터 벗어난 기억이기도 했다. 어느날도 비가 심상치 않게 내렸다. 주변 지역에 큰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관계자가 데려온 딸 한 명을 급하게 수하의 좁은 공간에 맡겼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한 재난이 터졌다. 살면서 거의 해마다 홍수 피해의 소식을 뉴스로 접했지만 이 정도의 재난은 듣도보도 못했다. 작가는 왜 이렇게 사고의 규모를 키웠을까? 잘 모르겠다. 거의 종말적 재난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 직전, 둘은 그 버려진 건물 전망층에 있었고 살아남았다. 수하가 처음보는 ‘맡겨진 아이’를 품에 안고 거기까지 왔다는 사실에서 한줄기 인간애를 찾아야 하겠지. 하지만 거기서 ‘조망’하는 비극을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다.

[통행증은 마스크]는 '아주 매운 맛'이라 하겠다. 어찌보면 별 일은 불거지지 않았고 선미와 까페에서 마주친 일행과의 은근한 실랑이가 다인 것 같지만, 선미가 하고 있는 일의 파괴력이 만만치 않아서이다. 선미는 듣보잡 매체의 연예부 기자이고 우리가 보통 기레기라고 비난하는 그런 종류의 기사를 쓴다. 있는거 없는거 긁어모아 대상은 죽든말든 알게 뭐냐는 식의 기사...
"선미는 종종 이 일에 가책을 느끼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살기 위해선 그가 죽어야 했다. 생존의 법칙은 늘 그런 식이었다." (190쪽)
어쩌면 이 작품이 책의 제목을 가장 강렬하게 반영하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에 [딸과 깍 사이]를 배치한 것은 독자를 위한 배려인가. 전체 작품 중 가장 '순한 맛'이었다. 약간은 환하고 달콤한 맛이기도 했다. 그런 반면 현실성 면에서는 가장 약하다고 생각되니 이 일을 어쩌면 좋나.^^;;;;; 매운맛들만이 현실이라면 세상이 지옥에 접근했다는 뜻이 되니까.ㅠㅠ 하지만 이 작품은 현실에서 느껴지는 보통 사람들의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잘 담고 있다. 악하지는 않은 소시민이 조직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진 못하고 그 안에서 고뇌하고 누군가를 생각하고 자신의 무가치함에 슬퍼하는 모습. 이 작품은 어떤 드라마의 몇 에피소드로 오마주되어도 좋을 것 같다. 그정도로 주인공 소미 씨의 마음에 공감이 갔다. 뜨개질이 소재로 쓰인 것도 인상적이었다.

뒷표지에 "비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전하는 손원평의 강렬한 메시지" 라는 말이 나온다. '비정함' 이야말로 이 책의 지배적인 정서이다. 내가 순한 맛으로 분류한 작품에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덜 비정하게 살아갈까. 이 책에 의하면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상처와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냥 숨쉬는 것 자체가 남한테 가해가 되는 '가해의 사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대 사회인가.

어제 '모자무싸' 드라마를 보다가 사소한 한 장면에서 울컥했는데, 황동만이 사채업자를 피해 도망가려고 뛰어나오면서도 매트리스를 옮기는 이웃을 도와 뒷부분을 받쳐 들어준 일이다. 나는 어쩜, 하고 감탄했다. 어쩜 저런 짧은 순간에도 저런 장면을 넣었지.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장면들은 힘이 없을까. 그런 장면들이 모이고 모여도 세상은 여전히 비정할까. 나는 마지막 작품에서 작가님이 이미 말씀하셨다고 생각한다.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포기밖에 더 하겠는가. 그순간부터 지옥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씩 다 언급하다보니 리뷰가 넘 길어졌네.... 짧게 잘쓰는게 좋은 거지만 기록용으로 쓰는거라 아무말 대잔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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