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기진맥진 2026/05/1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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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각의 계절
- 권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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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 - 2023-05-07
: 9,641
권여선 작가님을 접한 순서는 음식 에세이가 맨 먼저다. 두번째는 영화 '봄밤'이다. 세번째 비로소 소설을 접했다. <엄마의 이름>을 읽고나서 이 책을 잡았는데 그게 이 소설집에 포함된 단편인 걸 몰랐네.^^;;; (여기선 '실버들 천만사'라는 제목으로 실림) 그 작품 외에도 6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은 따로 없는데 모든 작품을 어우르게 책 제목을 잘 뽑았다고 생각했다. '각각의 계절'이라....
첫번째 실린 [사슴벌레식 문답]에서 나는 작가님에게 바로 감탄하고 말았다. 사소한 소재 하나를 가져와 작품 전체를 뒤덮는 그 확장력이라고 할까 의미부여력이라고 할까. 그 소재가 바로 사슴벌레였다. 80년대로 추정되는 시기에 대학을 다니며 룸메이트였던 여성 4인방의 이야기다. 그들이 강촌으로 함께 1박 여행을 갔을 때, 민박집 방에서 사슴벌레를 보고 "방충망도 있는데 커다란 사슴벌레가 어디로 들어올까요" 하는 질문에 숙소 주인은 "어디로든 들어와" 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사슴벌레식 문답의 시작이다. 그들은 재미있는 것이라도 발견한듯 '든'이 들어간 그 대답을 수시로 써먹었다.
-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
- 인간은 무엇으로든 살아.
- 너는 왜 연극이 하고 싶어?
- 나는 왜든 연극이 하고 싶어.
이런 식. 처음에는 그게 상당히 경쾌하고 쿨하고 센스있으며 긍정적이고 희망차 보였다. 하지만 작품 후반으로 갈수록 그게 아니구나를 보여준다. '든'은 엄청난 무게를 지닌 화법이었다.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 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 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 (29쪽)
이 작품은 어쩌면 그 문답의 서늘한 진짜 의미를 깨달아가는 수십년의 과정을 보여주는 서사라 할 수 있다. 와 그 사소한 것으로 이렇게 엄청난 걸 보여주다니,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작가라고 부르는구나 생각했다. 빛나는 청춘을 같이했던 그들. 그들 중 하나는 그 엄혹했던 시절에 배신과 변절을 했고, 꿈을 찾아 안정을 버렸던 누구는 10년 후에 자살을 했고, 남은 둘도 결국 서로를 위로하며 손을 잡지 못한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선택은 결국 결별이다. 함께했던 시간들은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 잊히는 것보다도 더 뼈저린 '서로를 견딜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것.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러나 미련을 갖지 않는 게 좋겠다. 이제라도 그들이 과거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노년이 되어가는 나이긴 해도.
첫 작품에서 작가의 확장력을 느꼈다면 [무구]라는 작품에서는 클리셰를 훨씬 넘어서버린 작가의 과감하고 자유로운 서사력이 느껴졌다. 비극으로 흘러갈 만한 소재가 의외로 행운 쪽으로 흘러간다? 우와 좋겠다, 부럽네... 근데 그게 또 훨씬 현실적인 외로움과 서늘함을 선사하다니. 애매하고 미묘한 맛이었지만 아주 신선하기는 했다.
소미는 퇴직자 남편과 아주 럭셔리한 노년생활을 시작했다. 하루 일과를 거의 '관리' 받는데 쓴다. 건강 관리, 외모 관리... 한마디로 세상 가장 편한 팔자라 하겠다. 그들이 원래 금수저였던 건 아니고 그들의 윤택한 생활에는 웃지못할 아이러니가 들어있다. 소미는 sns에서 우연히 옛 친구 현수와 연락이 되어 그를 찾아갔다. 현수는 먼 도시에서 부동산 중개인이 되어있었다. 이후 소미는 뻔질나게 그 먼 곳을 드나들었고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근묵자흑이라고 땅장수 옆에 붙어서 뭘 했겠어? 결국 현수의 소개로 빚을 얻어 빈 땅을 샀는데.... 어느날 현수는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렸고 산 땅의 가치는 한없이 하락했다. 근데 웃기는 반전은, 소미가 그 빚을 근근히 갚으며 존버했더니 결국은 대박이 났다는...ㅎㅎ 그래서 소미 부부의 윤택한 노년생활이 시작된 거다. 어휴 이보다 부러운 일이 있을까.^^
하지만 나라면 절대 못했을 일이다. 돈보다 중요한 게 많다지만 돈은 일단 무서운 거다. 십수년의 존버 생활동안 바늘방석을 견뎌낸 결과가 지금인 거지. 말하자면 그들 노년의 윤택은 중년의 불안과 맞바꾸어 얻은 것이다. 물론 말아먹은 보다는 천만배 나은 결과지. 부럽다니까? 아 근데, 왜 결말의 지배적 감정은 외로움일까? 그걸 배부른 투정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돈과 운과 자본의 원리로 세워진 행복의 허망함은 크든 작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갈수록 그건 더 심화되겠지.
(그래도 어쨌든 부럽긴 해ㅋ)
[실버들 천만사]는 단행본에서 따로 리뷰했으니 넘어간다. 그런데 일곱 편의 단편 중 세 편이나 '엄마'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실버들 천만사]외에 [깜빡이]와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두 편이었다. 이 두 편의 어머니들은 실버들 천만사의 반희 씨와 완전히 반대의 캐릭터였다. 이 두 편을 읽으며, 이혼하고 집을 나와 딸의 마음에 상처를 주긴 했어도 홀로 꼿꼿이 서려는 반희 씨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절감했다. 상처를 주고 떠나는 편이 물귀신처럼 들러붙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도. (반희 씨는 결국 완전히 떠나진 않는다)
[깜빡이]의 엄마도 그랬지만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의 어머니가 더 가슴이 답답하여 이 작품을 얘기해 보려고 한다. 오익은 박사과정생인 것 같다. 나이먹고 돈은 없고... 어머니의 전화를 잘 받아주는 걸 보면 모질지 못한 사람이다. 홀로 된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집착적으로 전화를 한다. 제목처럼 '잠을 못 잔다'며 자신의 불안을 중계방송하듯 자식에게 전가한다.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라 그렇겠지만 이 대목을 읽으며 <모자무싸>에서 변은아의 대사가 떠올랐다. 인생의 목적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힘있는 엄마요" 라고 대답했다. 불안해하지 않고 옆을 지켜줄 수 있는 엄마. 여기엔 대단한 통찰이 담겼다고 본다. 인생의 목적이라 할 만큼 이게 쉽지 않다는 거다. 중심을 잡고 본인이 흔들리지 않으며 가족까지 안심시켜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요즘 보기 쉽겠나. 하지만 나는 다짐해본다. 나의 불안까지는 내가 어쩌지 못하더라도 그 진동으로 자식까지 흔들지는 말자. 나는 아직 자식에게 의존할 나이는 아니긴 한데, 앞으로도 최대한 의존성을 키우지 말자.
오익의 어머니는 고통과 눈물을 무기로 삼아 아들을 심리적 인질로 옭아매는 사람이다. 요양원에선 국에다 미원 대신 비료를 넣는다며 그런 데는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선수를 치는 잔머리도 가지신 분.ㅠ 오익 씨의 여동생은 결혼도 했는데, 요즘 난데없이 엄마랑 오빠에게 미친 듯이 패악을 떨어대고 있고 그게 극에 달해 마침내 절연을 선언했다. "요런 영악한 년 좀 보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걔는 판단이 선 거야. 이 굴레에서 빠져나가야 한다고. 모질지 못한 오빠도 있겠다, 자기라도 살고 봐야겠다고 판단을 한 거지. 일종의 선제공격을 통한 방어라고 할 수 있겠다. 엄마가 던지는 죄책감의 올가미를 쳐내고 나는 차라리 못된 년이 되겠다! 어찌보면 현실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짐을 좀 나눠 지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줌마 마음... 오익 씨가 허물어져가며 이야기가 끝나니.ㅠ 이젠 세상에 오익 씨가 많이 남지도 않았겠지만, 세상의 오익 씨들이 잠시라도 독한 마음으로 거리두기를 시도해보길 권하고 싶다. 나도 부모라서, 부모란 어떤 존재인지 마음이 무겁다. 이래서 저출산이 더 심화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ㅠ
표제작은 없지만 표제가 살짝 나온 작품은 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라는 작품이다. 여기 마지막 문장이 이렇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이 말을 한 마리아라는 분은 성당 교우들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하기도 하고 성당 봉사도 성심껏 하는 분이다. 70대의 나이에 자신보다 10살이상 어린 교우한테도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마리아. 이분이 돌아가셨고, 성당 바자회 자리에서 나이든 여자 교우들이 그를 추억하며 수다를 떤다. 그들을 보며 베르타는 '참 고귀하지를 않구나 이 사람들은' 하고 눈살을 찌푸린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주어가 바뀌어있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 자신을 포함시킨 그 깨달음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에 나도 포함됨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읽는 내내 착잡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소설이든 드라마든 우리는 인물들을 욕하거나 응원하거나 간에 그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기에 몰입한다. 이 성당의 교우들도 특별히 나쁜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힘든 인생을 조용하고도 헌신적으로 살다 갔던 마리아가 했던 '각각의 계절'이라는 말이 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각각'이라는 말에서 인생들 각자가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 떠오른다. 그건 남에게 인계할 수도 인계 받을 수도 없는 각자의 몫이다. 이 책에 나온 모든 인물들이 그렇듯이. 그렇다고 파편화가 우리의 지향점일 리는 없다. 자신의 인생, 즉 '각각의 계절'이 자기 몫인 것을 명확히 인식한 후에 연대도 있는 것이 아닐까. 어느 누구도 혼자의 힘으로 살 수 없다. 하지만 남의 힘으로만 살 수도 없다.
나의 계절을 나기 위해 나는 어떤 힘을 내야 할까. 내 옆에 가족도, 친구도, 언니들도 있었으면 좋겠는 건 당연한 마음이겠지? 나와 그들의 '각각의 계절'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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