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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맥진님의 서재
  • 진우의 거울
  • 김인규
  • 15,300원 (10%850)
  • 2025-11-10
  • : 1,000
미술교사 김인규 선생님에 대해선 꽤 오래전 누드작품 논란 때 알게 되었다. 작품인데 뭐가 문제야, 이게 시끄러울 일이야? 정도로만 생각하고 금방 잊어버렸던 것 같다. 그분을 이렇게 책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책으로 만난 사람은 사건으로 접한 사람과는 완전 다르다. 책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이 책의 제목이자 선생님의 셋째아들인 진우의 잉태 시점부터 시작된다. 그때 선생님은 화가로서의 삶에 중요한 과정으로 유학을 고려중이었기에,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이 기쁨으로 다가오기엔 너무 당황스럽고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마음고생 끝에 유학은 포기했고 뒤늦게 다시 시작된 육아에 겨우 마음을 돌렸다.

그러나 그 육아가 보통 육아가 아니란 사실이 시시각각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발달장애를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은 독자에게도 쉽지 않다. 다른 분들의 책도 읽어보았지만 모든 사례들이 다 각각 별개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다행인 건 내가 아는 모든 분들은 진단 즉시 인정하고 부모의 삶을 발빠르게 전환했다는 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어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자식 일이라고 모두 그런 결단을 하는 것은 아니다. 부부는 진우가 성장할 수 있는 최선의 상황을 만들어갔다. 서울같은 대도시에 살지 않으셔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진우의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여기에서 작가님과 같이 깨달아갔다. 정상의 개념은 무엇인가? 다른 인식의 세상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소위 '정상'의 범주로 들어오라고 끌어당기는 것은 합당한가?

그러나 모든 것을 머리와 마음이 이해했다고 해도 여전히 남는 어려움은 있다. 몸의 어려움이다. 다른 말로 하면 '수고'라고 할까. 지원하고 돕는 수고 없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긴 힘들다. 이 수고를 누가 어떤 마음으로 하는가가 그 사회의 수준을 말해준다 하겠다. 우리나라도 옛날에 비한다면 많이 좋아졌다. 학교만 해도 충분하진 않아도 다양한 지원의 손길들이 있고 내가 본 바로만 얘기한다면 모두들 태도도 훌륭하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먼저 부모들이 자녀의 장애를 절망으로 여기지 말고 (남의 말이라고 쉽게 한다만ㅠ) 주변과 기관에서 좀더 허용적이고 환대하며 적절한 수고를 함께 해준다면 좋을 것이다. 함께 걸어가는데 짐을 나눠 지지 않는 건 참 이상한 모습이니까. 그래서 짐을 좀 덜어서 지고 걷지만 그것에 화내지 말고 슬퍼하지 말고 당연하고 동등한 모습으로 여기는 것. 그것이 선생님이 진우와 함께한 30년의 세월에서 소망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장부터는 작가님이 화가이자 미술교사인 장점을 살려 진우를 비롯한 발달장애 학생들과 미술 활동을 해온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하고 우리가 정해 놓은 어떤 기능에 도달시키려고 조바심을 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가 왔다. 하지만 그 일은 진우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그 가운에서 작가님의 시각과 생각이 바뀌어갔고, 그 생각은 장애인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에 대한 생각으로 발전되어 갔다. 그 생각의 흐름을 담담하게 서술한 것이 이 책이다. 담담하나 그 안에는 그동안 겪었던 깊은 슬픔,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뇌, 자식에 대한 절절한 사랑, 하는 일에 대한 열정까지 참 많은 것이 담겼다.

작가님이 깨달은 것 중에는 ‘안 되는구나’가 꽤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인간이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하듯이 누군가의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영역. 그걸 인정하는 데는 많은 아픔이 따랐지만 어찌보면 정작 본인이 그러지 않는데 주변인들이 그리 슬퍼하고 있을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미술활동만 가지고 보아도 발달장애인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자신 안의 즐거움에 몰두할 때, 비장애인들은 바깥에 놓인 타인의 시선 앞에서 즐거움을 향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정한다. 나도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정상값’은 어디에서 어디까지인 걸까. 노력하면 해낼 수 있는 것과 닦달해봤자 상처만 남는 것은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나름의 한계가 있다. 그것이 장애라면 일종의 장애다. 나는 이런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참 불공평하게도 인간의 역량은 공평하진 않더라고. 신체의 기능도 마찬가지고. 거침이 없는 분들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한계를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감추며 살금살금 살아온 나는 나의 ‘장애’를 많이 인식하며 살아간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분의 글에 더 많이 공감하는 것 같다.
“결국 장애의 문제란 모든 사람의 문제라는 사실, 아니 모든 사람의 문제가 결국 장애의 문제였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은 내가 진우와 함께 애쓰며 살아온 종착점이었다.” (12쪽)
“생각해 보면 나의 영역이란 그런 것이다. 그것은 타인이 어떤지 세상이 어떤지와 상관없이 고유하고 독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거기에는 더 낫고 못한 것이 없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더라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런 자신의 영역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타인들의 모습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그 빛을 잃어가는지도 모른다.” (180쪽)

부디 이 사회가 지탱할만한 사회이길 바란다. 나 또한 남과 함께 하는 걸 꺼리고 귀찮아하는 성격이라 이런 말 할 자격이 심히 부족하지만, 손잡지 않고는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이 많은 이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길, 그 파문이 번져가길 바란다.

(표지가 단순하면서도 특별하다. 손에 들기 좋은 판형과 적절한 글씨 크기 등도 가독성을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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