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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맥진님의 서재
  • 할머니의 마지막 손님
  • 임정자
  • 12,150원 (10%670)
  • 2025-10-24
  • : 195
아직 50대가 좀 남았는데, 아니 요즘엔 60도 노인으로 치진 않는데 마음과 껍데기의 괴리에 다소 우울해진 나는 요즘 이런 책들을 보고 있다.
- 노년을 읽습니다 (서민선)
- 미리 슬슬 노후대책 (마녀체력)

닥친 후에는 늦는다는 점에서, 지금 읽어야 하는 책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어렵진 않지만 빨리 읽어치울 책은 아니라서 조금씩 읽고 있다. 그러던 중 무슨 우연인지 이 동화를 읽게 되었다. 넘기며, 어 이 책 읽은 거 같은데? 어 분명히 읽었는데? 하여 책정보를 확인해보니 개정판이었다. 구판은 10년 전에 나왔었다. 그때 내가 읽었나보다. 그때보다 지금이 더 사무치는 것은 위에 쓴 이유로 당연한 일이겠다.

임정자 작가님은 내게 좀 특별하다. 작가님은 수많은 기억 중의 하나라 특정할 수 없으시겠지만 15년도 더 전에 내가 처음 주관했던 작가와의 만남에 강사로 모신 분이었다. 그때 우리반 아이들은 <무지무지 힘이 세고, 대단히 똑똑하고, 아주아주 용감한 당글공주>라는 책을 읽었고. 그때는 작가님이 멀지 않은 곳에 사셨던 기억인데, 작가의 말에 보니 지금은 전남 강진에 거주하신다고 한다. 그곳에서 할머니들의 생애 이야기를 듣고 채록하는 일을 하셨다고. 그 할머니들 또한 이 책의 할머니 못지않게 한많은 세월을 살아오셨다. 현대사의 비극들은 할머니들의 삶에 그대로 아로새겨져 있다. 온몸으로 그것을 받아내며 살아오신 할머니들.

이제 격변의 세월, 나와 가족의 목숨을 장담하기 어려운 그 시절은 지나갔으나 할머니에게 남은 것은 병든 육신과 외로움이다. 할머니는 딸이라고 자식 취급도 받지 못하고 자라다가 (이름도 그냥 가이나) 맞은편 섬으로 시집을 갔다. 가난하지만 따뜻한 남편을 만나 잠시 행복하게 사는 듯했으나.... 이념의 혼란 속에서 남편도, 시부모도, 아주버님도 다 잃고 자식들의 목숨이라도 부지하려고 깨져가는 배를 필사적으로 노저어 지금의 섬으로 도망쳐 왔다. 윗동서와 조카들까지. 여자들과 아이들만의 탈출이었다. 윗동서는 충격에 정신줄을 놓아 바닷가를 떠돌다 결국 바다에 빠져 죽었고, 배우지도 못한 할머니의 손에 자식들과 조카들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평생 죽어라 일만 하며 살았다.

살아남는 일이 끝나자 이제 떠남의 시절이 되었다. 든든하게 성장한 아들마저 바다에서 잃고 할머니는 어떻게 살았을까? 딸은 딸대로 떠나고, 큰조카도 죽고, 작은조카는 온갖 원망을 할머니한테 다 퍼부어놓고 떠났다. 독자가 보기엔 그런 배은망덕이 없는데 "다 내 죄랑께"만 되뇌이는 할머니.ㅠ 그래도 남은 손자를 키워야하기에 살아야 했다. 손자는 할머니를 사랑하며 잘 자랐지만 장성했으니 보낼 수밖에 없는 것. 그래서 지금 바닷가의 집엔 할머니 혼자다.

할머니는 '손님'을 기다린다. 각 장마다 시작에 할머니의 이 노래가 반복된다.
"오실랑가 오실랑가
우리 손님 오실랑가
기별 없이도 오는 손님
오늘은 오실랑가"
이 '손님'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반가운 손자와 증손주들일 수도 있지만 결국 할머니가 기다리는 손님은 '그것'이다.

그것을 이렇게 자면서 평안하게 맞이할 수 있다면 그만한 복이 없다고들 한다. 결국 할머니는 일평생 복쪼라기라고는 없었지만 가는길은 복을 받았다고 해야 하려나. 비록 손자가 도착하여 하루만 더 일찍 올걸, 지난주에 올 걸 하며 대성통곡을 하더라도 (거기까진 책에 나오지 않음) 할머니로선 잘된 일이다.

요즘 존엄사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의 논의가 횔발하다. 어느나라는 된다는데 우리나라는 꿈쩍도 안하고 앞으로도 되기 힘들 거라고들 한다. 왜 그렇게들 다른지 모르겠다. 죽을 일밖에 남지 않은 극심한 통증 환자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조금 편안하게 돕는 것이 그렇게 안될 일일까. 법을 세심하게 만들 수는 없는 걸까. 존엄사의 가능성만 열어둔다면 노후가 훨씬 덜 두렵고 노년의 삶을 조금더 안심하고 영위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의료의 발전이 질병의 치료, 수명 연장에 이어 죽음의 고통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가는 건 좋은 일 같은데... 내가 뭔가 모르는 점도 있겠지만.

할머니의 모습을, 옆에 무심히 선 다정한 관찰자가 써나가듯 묘사한 이 작품에서 찡했던 표현이 몇군데 있다. 그중의 하나는 갯가에서 할머니가 갯돌을 만지며 예뻐하시는 장면이다.
- "사람은 늙으면 쭈그렁 망태기가 되는디, 갯돌은 갈수록 동글거린당께. 그래서 이쁘당께."
할머니는 오랜 세월 그토록 차가운 파도에 쓸리면서도 견뎌내어 마침내 동글동글해진 갯돌이 기특하고 예쁩니다.-

갯돌은 하나같이 이쁘지만 인간의 말로는 모두 그렇진 않다. 그 많던 고난 속에서도 갯돌처럼 살다가신 할머니. 나도 그저 누구의 가슴에도 못박지 않고 "애썼다." 로 마감을 할 수 있는 인생이면 좋겠다. 최고의 행복이라는 그것. 땅에서의 그 깨끗한 끝이 나의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큰 욕심인 건 알지만 그래도 워낙 간절하기에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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