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캐릭터들이 전하는 중요한 이야기
기진맥진 2025/10/1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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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절한 땅콩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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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인지 아닌지 생각하는 고기오>라는 책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임고을 작가님이 문학동네초승달 문학상을 받으셨구나. <고기오....>가 신선하며 좀 난해(?)했다면 이 책은 훨씬 가볍고 경쾌하다. 하지만 공통적으로는 심오하다? 생각하기에 따라 많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책들이다. 그런 책일수록 함께읽기에 좋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생각한 것을 나눌 때 훨씬 풍성한 감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하는 걸(약속이 있는걸) 부담스러워 하는 나는 안하겠지만.^^;;; 그래서 리뷰라도 써본다.
요즘 우리 2학년은 <인물>이라는 교과서를 배우는데,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인물을 소개하는 차시가 있었다. <참 고마운 인생수업>이라는 그림책을 읽어주고 같은 방식의 작은책 만들기 활동을 해보았다. 그중 아주 눈에 띄는 내용이 있었다.
"초롱이(이 아이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에게서 처음에는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고양이를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 아니 이런 문장은 우리반 어린이들이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닌데?ㅎㅎㅎ 하지만 아주 가끔씩은 의외의 결과물이 나오는 법. 이걸 전체에 읽어주며 '순이는 고양이한테 처음엔 경계하는 것을 배웠군요. 그러다 믿음이 생기면 서로 사랑하는 것도요. 순이랑 초롱이처럼요."
그러자 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을 읽으며 순이랑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책의 주인공은 땅콩호텔의 직원인 '너츠'이다. 귀여운 생김새를 보고 어떤 동물인가 했더니 햄스터였다.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할 듯. 아이들은 귀여운 거라면 꺼뻑 넘어가니까.^^
땅콩섬의 유명한 관광지 땅콩산 국립공원이 안식년을 갖기로 했다. 그에 맞추어 땅콩호텔도 쉬기로 했다. 직원은 모두 너츠의 가족들이어서 들뜬 마음으로 세계여행을 떠나 휴가를 즐기기로 했다. 너츠만 남았다. 손님들이 모두 빠졌지만 '왕땅콩방'에 있는 장기투숙객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츠는 만족한다.
"가족들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혼자 조용히 지낼 생각에 가슴이 뛰었어요."
나랑 똑같은 캐릭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천지 돌아다니는 것보다 혼자 있는 조용한 시간을 좋아하는 것이. 하지만 완벽히 혼자인 걸 바라는 건 아니다. 나같은 경우는 그렇다. 완벽한 단절은 두려워하면서 연결도 귀찮아한다. 얍삽한 건가, 이기적인 거겠지...ㅠㅠ
드디어 혼자 호텔을 맡은 날이 밝았다. 그동안 너츠는 불친절하다며 가족의 구박을 많이 받았다. 가족들은 못미더워 수첩을 남기고 떠났다. 일종의 매뉴얼. 나름 친절한 직원의 역할을 잘하려 애쓰던 중, 드디어 한번도 대면한 적 없던 왕땅콩방의 투숙객과 만나게 되었다. 두려움과 신비감이 공존하던 그 의문의 투숙객은 의외로 작은 개구리였다. 이름은 폴짝 씨라고 했다.
두 주인공의 만남이 참 새롭고 신선하다. 기시감이 전혀 없는 이야기다. 고객과 직원으로 만난 주인공들. 폴짝 씨는 오늘이 땅콩산에 갈 수 있는 마지막날인 걸 알고 등반을 서두르고, 넛츠에게 안내를 요청한다. 넛츠는 마지막이고 뭐고 간에 거기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으나 계약조건에 있는 내용이라 할 수 없이 동행한다. ‘천절함’을 절대 잃지 않으면서.
넛츠의 고객 응대 모습을 보면서 요즘 ‘영혼을 빼려고’ 노력하는 직장인들의 풍속도가 떠올랐다. 나의 직장도 예외는 아니다. 괜히 영혼을 넣어 응대했다가 공격으로 돌아오면 그 상처는 회복하기 힘들다. 아예 영혼을 빼면 그나마 상처는 받지 않으니까, 알맹이 빠진 껍데기에 친절함만 덕지덕지 묻히고 일을 한다. 그 일이 즐거울 리 만무하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면, 내 안에 눌러놨던 영혼이 고개 들어 꿈틀거리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아니 내가 느낄 사이도 없이 저절로 그러고 있을 때가 있다. 그때는 매뉴얼이고 주의사항이고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일 뿐이다. 기름바른 장어처럼 미끈하게 빠지지 않은 모습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상처받으면 더 두꺼운 껍질을 쓰게 된다. 그 껍질에는 친절이라는 채색이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반 아이가 고양이에게 배웠다는 것처럼 어쩌면 ‘경계’는 필요할 것이다. 너무 열어놓은 사람도 나는 썩 편하진 않더라고.... 하지만 끝까지 닫힌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무엇을 해도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이 책은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가 아니다. 그 과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도록 하자. 귀엽고 상큼하고 흐뭇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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