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오겠지만
기진맥진 2025/10/12 10:45
기진맥진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앤서
- 문경민
- 13,320원 (10%↓
740) - 2024-08-29
: 948
문경민 작가님의 책 중에서 비교적 덜 팔린 책인거 같은데, 서사의 힘은 어느 작품 못지않은 책이었다. 와 진짜 이분은 타고난 이야기꾼이구나 생각했다. 작가의 말에 보니 작가님 또한 이런 욕심을 솔직히 고백한다.
“《앤서》는 서사 자체가 중요한 소설이다. 나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삶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도 아니다. 이야기 자체를 훌륭하게 만들고 싶었던 소설이었다.”
“《앤서》를 포기하지 않고 고치고 버리는 일을 반복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갈고 닦아왔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펼쳐보고 싶었던 욕망 때문이었다.”
수많은 원고를 버리고 다시 써서 다듬은 책이라는 말씀이었다. 자전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주변인이 겪은 일을 모티프로 한 작품도 아니고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 미래를 다룬 상상의 이야기였다. 스케일도 짜임새도 몰입감도 대단했다. 영화 느낌이 나는 책이기도 했다. 장면이 잘 상상되어서. 이상하지? 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장면인데 상상이 가. 당연히 본 적이 없다. 미래를 다룬 이야기니까.
아주 먼 미래는 아니고 수십년 후의 근미래를 다루고 있다. 근데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이라고 할까. 너무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세상이다. 개연성이 있는 상상이다. 왜냐면 지구는 급속도로 망가져가고 있고, 인간은 아름답지 못하니까. 그중에 애쓰는 사람도 없진 않다. 하지만 거악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다.
지구는 거의 멸망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겨우 거주하고 있는 곳들을 셸터라고 부른다. 이들의 삶이란 생존이 전부다. 식량도 부족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것들은 도처에 있다. 선사시대 원시인의 삶이 이렇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은 원시인들을 무시하는 거겠지. 그들에게는 발전의 가능성과 미래가 있었으니까. 멸망의 공포 속에서 사는 것과는 다르지.
“이것은 유이와 킨의 이야기다.”
이렇게 책이 시작된다.
그들이 열여덟 살일 때, 우연히 만나 서로를 구해주었다. 아르굴이라는 생체병기가 번성하며 인간을 공격하는 세상에서 그것들 중에 고립되었을 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발안셀터의 사령관인 아버지 밑에서 군인으로 자라온 유이는 그순간 총을 들어 죽으려 했으나 킨이 나타나 살려주었다. 그에게는 아르굴이 덤비지 않는 유전자가 있는 듯했다. 알고보니 그는 마낙셀터의 유전자조작 인간이었다. 마낙셀터를 탈출한 그를 사령관이 위험을 무릅쓰고 거둬 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생명을 빚졌다. 그리고 사랑했다.
생존이 왔다갔다 하는 판국에 사랑을 한다는 것. 말이 안되는 것 같으면서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 며칠전 일제강점기 고난의 역사를 담은 책을 읽었는데 거기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하더라. 어쩌면 더 열정적으로. 그러나 유이와 킨의 사랑은 1년 뿐이었다. 마낙셸터가 발안셸터를 공격해 사령관마저 죽이고 멸망시켰다. 의문의 이유로 마낙셸터도 멸망했다. 유이는 가까스로 살아남아 지금은 앤서(동아시아 국가 연합 셸터)라는 곳에 와 있다. 이전 셸터들 보다는 그나마 살만한 곳이었다. 유이는 이곳에서 말하자면 난민 같은 신분이었다. 하지만 군인으로서 갈고닦은 여러 가지 능력들이 앤서에 도움이 되었고 정식 주민의 자격을 얻게 됐다. 그러면서 또 18년이 흘러 30대 후반의 나이가 됐다. 킨은 그때의 난리통에 생사도 알 수 없이 헤어졌다.
그러던 킨이 나타났다! 온라인으로. 앤서의 포털에 그가 쓴 ‘킨의 일기’가 올라왔다. 발안셸터가 멸망하던 당시의 이야기가 현장감있게 상세하게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서술되어 있었다. 다만 유이는 도려낸 듯 등장하지 않았다. 앤서는 연일 그 연재물로 들끓고, 유이의 마음은 복잡하게 요동친다.
연재를 마친 킨은 드디어 동영상으로 실물을 드러냈다. 18년 만에 보는 킨이 유이는 낯설다. 외모 뿐이 아니었다. 그는 그때의 그 킨이 아닌 것 같다. 무엇이 그를 저렇게 다른 사람이 되게 했을까. 그는 동영상을 통해 드디어 목적과 본심을 드러냈다. 그의 칼끝은 앤서의 대통령 파비언을 향하고 있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확인할 길이 없었다. 사회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살겠다고 모인 곳은 또다른 지옥이 되었다.
그 가운데서 고군분투하는 유이가 이 책을 이끌어간다. 하나하나 진실이 열릴 때마다 충격이고 반전이다. 작가님의 스토리 능력에 놀라게 되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유이는 킨을 만날 수 있을까. 킨의 실체는 무엇일까. 둘은 다시 진심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까. 셀터들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인간이 망친 지구와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될까. 무엇이 남아있을까.
작가는 그래도 완전한 멸망을 그려내지 않았고, 유이는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난다. 말하자면 열린 결말이다. 짧은 문장 하나가 작가의 메시지인가 싶게 눈에 띄었다.
“끝이 와도 슬프지 않을 삶을 찾고 싶었다.” (303쪽)
마지막을 향해서 간다는 점에서는 원시인이나 우리나 이 책의 사람들이나 같지 않을까. 어떤 시대에서나 어떻게 살지는 본인만의 선택이다.
이 책을 읽은 날이 하필 긴 연휴의 끝이어서 나는 조금 우울하고 두려웠나 보다. 나는 그래도 참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고 있어.... 하지만 스멀스멀 불안은 다가온다. 정확한 실체가 없는 그것은 인간이 당연히 가는 마땅한 그 길마저도 불안으로 채색한다. 내가 지금 여기에 이러고 있는 것이 맞는지 두렵게 한다.
군인 출신인 유이가 다치고 내던져지면서도 결단하고 실행하고 하는 모습들이 멋있었다. (드라마로 만든다면 엄청 멋있는 캐릭터가 될 듯) 주변에서 폭탄이 터져도 시체가 즐비해도 목숨이 붙어있으면 사는 거다. 유이는 그 끈질긴 생명력의 표상 같았다. 이상적인 캐릭터인 건 맞다. 하지만 유이도 인간이다. 그 이상은 아니었다. 몇 페이지를 더 쓴다면 거기엔 유이의 끝이 나올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그렇다. 그런 오늘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작가님은 항상 작가의 말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시던데, 이번 책에서도 쉽지 않은 자신의 상황을 살짝 언급하셨다. 그리고 다짐한다.
“오늘을 잘 살고 내일을 맞이할 것이다.”
내일을 모르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정도이지 않을까. 내 손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빌려주면서. 누군가의 손이 필요하면 잡으면서. 이 책이 그리는 미래는 절대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유이의 모습은 마음 속에 남겨두겠다.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