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도서관 방문에서 가장 큰 수확은 이 책이었다. 완전 심봤다 수준이었다. 케이트 디카밀로를 너무나 좋아하는데 책 출간은 바로바로 알지 못했다가 이렇게 도서관에서 발견하곤 한다. 나온지 석달 쯤 되었구나. 더구나 한꺼번에 두 권이 꽂혀있어서 이게 웬 떡인가 했더니 [노렌디 이야기]라는 3부작 시리즈라고 한다. 세 권 중 두 권이 먼저 나온 거다. 1권도 무척 좋았는데 2권인 이 책을 읽고 무척 흥분되어서 이 책 먼저 쓴다.^^
케이트 디카밀로의 책 중 국내에 출간된 책은 다 읽었다. 그의 책을 읽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두 권을 연달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작을 하는 작가는 아니어서 기다리다 잊을 때 쯤 (몇 년에 한 권씩 정도) 책이 나오기 때문이다. 읽어보면 변하지 않는 특유의 느낌이 큰 기둥처럼 자리하고 있고, 그러나 식상하거나 비슷하다고 느끼지 않을 인물과 서사가 새롭게 등장한다. 이야기는 아주 정교한 무늬로 단단하게 짜 나간 카펫의 조직 같기도 하고 잠자리 날개처럼 잡아당기면 찢어질까 두려운 연약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실크스카프 같은 유려한 부드러움도 느껴진다. 한 작품 안에 이 모든 조직을 함께 짜 넣을 수 있는 작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1권도 그렇고 이 책도 키워드를 뽑으라면 [이야기]라고 하겠다. 아마도 3부작 전체가 그럴 듯하다.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이야기. 세상에 이야기가 왜 존재하고 존재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 가치를 알고 지켜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훌륭한 창작을 하는 대작가가 아니라 연약하고 평범하고 때론 버려지고 잊혀진 존재들이 소중하게 지키고 기다려온 이야기. 결국 외면하지 않는 모든 존재에게 찾아올, 이어질 그 이야기.
이 시리즈는 그림도 훌륭하다. 흑백이지만 매우 다채롭고 이야기의 느낌과 잘 어울린다. 1권도 흑백인데 4B연필로 명암을 정밀하게 나타낸 느낌이라면 이 책은 가는 펜 드로잉이다. 멋진 젠탱글 작품처럼 정교한 느낌이 나는 삽화들이다. 3권도 흑백이면서 뭔가 질감이 다른 그림이라면 쭉 연결성이 있으면서 감탄스럽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목인 '호텔 발자르'는 이 책의 배경이다. 이 호텔의 좁은 다락방에 마르타와 엄마가 산다. 엄마는 이 호텔 청소부이고 마르타를 데리고 호텔에 취직하기 쉽지 않았을 거라 짐작한다. 그래서겠지. 엄마는 호텔의 그 어떤 것도 만져서는 안되고 누구와 말해서도 안되며 '조그만 쥐처럼 소리없이' 지내야 한다고 신신당부한다.
마르타는 엄마 말에 잘 따른다. 호텔 로비에서 무엇이라도 손에 닿을까 뒷짐을 지고 벽난로 위의 그림과 괘종시계를 바라보는 소녀의 뒷모습이 안쓰럽다. 한마디라도 나눠본 사람은 벨맨인 노먼 씨과 프런트의 알폰스 씨뿐이었다. 그렇게 호텔의 뒷계단을 혼자 오르내리며 하루를 보낸다. 그동안 아이의 마음 속에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고 있었을까. 어릴적 언니가 학교 가고 엄마는 빨래를 하고 유치원에도 다니지 않던 내가 골목에 혼자 나와 놀던 기억. 그건 아주 짧은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 강렬한 심심함의 기억은 외로움이었나. 그리 나쁘지 않았던 기억 같기도 하고.
마리타의 그 일상에 파문을 일으킬 손님이 호텔에 왔다. 많은 짐과 블리츠코프라는 앵무새를 데리고 온 이 늙은 여인은 스스로를 백작부인이라고 했고 숨어서 지켜보던 마르타를 바로 알아보고 자기 방에 찾아오라고 했다. 네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며.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부인은 날마다 하나씩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딱 하나씩만이었고 질문도 받지 않았다. 이야기는 비현실적이며 환상적이기도 했지만 어떤 부분은 신기하게 나와 연결되기도 했다.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인가 했지만 또 그럴 수는 없기도 했다. 알 것도 같다가 절대 알 수 없을 것도 같다가 풀리는 것 같다가 다시 엉켜버리는 이야기들이 계속되었다. 부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호텔에는 왜 왔으며 왜 마르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일까?
첫날 부인은 마르타를 '나의 작은 빛줄기'라고 불렀다. (디카밀로의 이런 아름다운 표현들을 나는 좋아한다) 그런데 그 표현은 바로 아빠의 편지에 나왔던 표현이 아닌가! 1년 전부터 연락이 끊긴, 전쟁터에 나간 아빠. 다락방의 서랍장 위에 엄마가 소중히 올려놓은 아빠의 편지. 그 편지의 문체는 너무 아름답지만 전쟁에 대한 준엄한 질책이 들어있기도 했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 대목을 모두가 읽는다면 이 책은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물론 이 책의 극히 일부 내용이지만.
"마르타, 전쟁은 항상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걸 알아두렴. 그것만이 전쟁의 목적이야. 단 하나의 목적이지. 누군가 다르게, 다른 방식으로, 그럴 듯하고 가치있게 전쟁을 설명하려고 하면, 절대 믿지 마." (36쪽)
시신과 쥐가 들끓는 전쟁터에서 아빠는 이 편지를 마지막으로 소식이 없다. 아빠의 편지는 그곳에서 썼다기엔 너무 아름답지만 또 그곳이니까 쓸 수 있었기도 하다.
"이 끔찍한 세상에서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빛나. 나는 별을 올려다보며 너와 엄마를 떠올려. 오직 그제서야 별들이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별자리를 이룬단다. '마르타, 엘레나.' 하고 속삭이면, 아주 작은 빛이 더 밝게 빛나고 세상이 그나마 이해가 돼." (36쪽)
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마르타가 모르는 아빠의 이야기가 들어 있을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엔 장군도 나오고 마녀도, 서커스단, 앵무새, 수녀, 농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소년, 왕, 여우, 줄 타는 곡예사가 나왔다. 이렇게 여섯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마지막 일곱번째 이야기를 남겨놓은 날 아침, 부인은 떠나고 없었다. 작은 마리타가 얼마나 절망했을까?
"그렇게 텅 빈 곳은 처음 보았어요." (138쪽)
그러나 여기서 끝일 리가 없다. 작가는 백작부인을 잠시 뒤로 빼고 마지막 이야기를 완성했다. 그건 지금까지의 고통과 외로움을 덮어줄 만큼 기쁘고 행복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도 끝이 아님을 알려준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일곱 번째 이야기는 지금 네가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말을 믿어줄래? 그건 최고의 이야기야. 온갖 역경 속에서도 다시 서로를 찾아가는 이야기. 그것은 사랑이 지속되는 이야기란다." (155쪽)
초등학생을 30년 가르쳐온 나는 언제부터인가 '자기 서사' 라는 말에 주목하게 되었다. 최대한 학생들이 배운 내용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는 교육. 그게 어떤 첨단 기능보다도 윗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이 책에서 찾아서 매우 기뻤다.
내 삶은 내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그걸 추악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시시한 건 괜찮아. 그 어떤 것도 시시하진 않으니까.
하지만 추악한 건 안돼. 아름답게 쓰자. 너의 이야기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이다.
난 올해 저학년으로 내려왔는데, 작년처럼 4학년에 있었다면 이 책으로 온작품읽기를 하고 싶다. 어쩌면 이 책은 요즘 아이들처럼 말초적인 (미안한 표현인데 그런 경향이 강해짐) 독자들에겐 먹히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정서는 요즘 아이들과는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어른들이 가슴을 감싸안을 동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기한 점은 함께 읽으면 감상 수준이 올라간다는 것. 이 책으로 아이들과 이야기의 가치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리고 자기서사의 귀함도. 그리고 그 서사에 대한 도전도. 하지만 이건 꿈으로 남겨두겠다. 나는 이제 열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게 또한 인생이다. 누구나 아쉬움을 남기며 열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새로운 풍경 앞에서 잠시 눈이 부셔 손을 올린다. 또다른 이야기는 늘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