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보는 교육사유?
기진맥진 2025/07/24 21:38
기진맥진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지훈이의 캔버스
- 함영기
- 15,300원 (10%↓
850) - 2025-07-10
: 120
함영기 선생님의 『교육사유』 책이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적어놓지 않았더니 내용은 거의 잊어버렸지만.... 내용과 함께 문장도 참 좋다고 느끼다가, 아참 이분 수학선생님이라고 했는데? 이과이신 분이 감수성은 문과시네 라고 내 맘대로 생각했던 기억이....^^;;
그 감수성의 결정판이 이 소설인 것 같다. 작가의말에서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르포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지만 일단 나는 소설이라고 간주하고 쓰겠다. 여섯 편의 단편이 모인 책이다. 각 주인공은 다른 작품에서 주변인물로 다시 등장하기도 하므로 독립된 단편이라기 보다는 연작이라 하는 편이 맞겠다. 책 속의 인물은 교사였던 작가 자신이기도 하고 작가가 만난 제자들이기도 하다. 마음을 다해 제자들과 만나왔던 작가였기에 경험과 사유가 소설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한편으로는 파란만장한 교직인생은 누구나 소설로 남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소설로 치면 몇 권이다.” 이런 말 흔히 하지 않나. 물론 그걸 아무나 쓸 수 없다는 게 문제지만. 일단 나는 그럴 문학성도 없고 남한테 펼쳐줄 이야기도 없다. 내 기준으론(?) 다행스러운 지난날이었다고 할까. 별일은 없었다는 거니까......
첫 번째 작품 [그날 새벽] 이 작품이 단독으로 나왔다면 웬 철지난 운동권 감성이냐 했을 것 같다. 파장한 장터에서 부는 쓸쓸한 바람 같다고 할까. 하지만 그 젊은 주인공은 이후 작품에서 청소년 주인공들의 교사로 나온다. 딱 부러지게 말하고 있진 않지만 짐작할 수 있게.
[춤을 추다]에 나오는 지영이와 상헌이가 친해지는 모습이 난 보기 좋았다. 흔히 나오는 청소년 썸타는 얘기가 아니었다. 얘네들은 어린 나이에 벌써 인생의 무게를 짊어진 아이들이었다. 그들의 연대감이라고 할까. 상헌이가 태권도장에서 ‘사범 형’으로 일하면서 관장님이 쥐어주신 돈으로 지영, 지영 동생들을 불러 ‘초원식당’에서 삼겹살을 함께 먹을 때, 그건 시혜가 아니었다. 밥친구였다. “혼밥이 제일 맛있다”고 떠들고 다니는 나는 얘네들보다도 인생을 모르는 거다. 눈물젖은 혼밥을 먹어본 사람은 이렇게 밥친구의 존재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거다. 늦은 저녁 함께 귀가하는 길, 느닷없는 지영의 춤, 얼떨떨하게 보다가 태권도 품새로 응수하는 상헌. 아이들의 광란(?)은 그들 나름의 축제였다. 가장 절실한 축제. 짠하고도 아름다웠다. 그들은 지금도 잘 살고 있지 않을까.
[시발 롤 모델] 이 아이 이야기는 몇 년 전에 함 선생님이 페북에서 하셨던 것 같다. 말하자면 거의 실화? 자기 기분 상하게 했다며 사과하라고 교사를 다그치던 그 패악한 놈이 결국엔 당신이 롤 모델이라고 고백했다니. 시발 소리 섞어가면서. 이런 애들 잘 보면 은근 귀엽고 짠한 데가 있지. 하지만 난 만나기 싫다. 너무 솔직해서 탈이지?;;;;;
[소라의 겨울] 이야기가 제목처럼 가장 시리고 아프다. 소라는 앞편에서 지영이의 친한 친구로 나오는데, 그때의 소라는 늘 밝고 명랑했을 뿐 아니라 어색한 자리를 자연스럽고 훈훈하게 채워주는 윤활유 같은 아이였다. 그런 소라에게도 아픈 가정의 문제가 있었고 결국 최악으로 치달아 소라 또한 참혹한 일들을 당하고 극단적 위기에 몰렸다. 청소년 쉼터에서 지영이에게 보낼 기약도 없는 편지를 쓰는 소라.... 그나마 쉼터라는 곳도 있고, 그들을 돕는 직업인들도 있지만 (없는 편보다는 훨씬 낫지만) 그래도 가정이라는 최소단위의 울타리가 박살나버린 아이들을 대신해줄 존재는 찾기 어렵다. 소라가 다리에 힘을 넣고 일어서기를 기대할 수밖에... 그 편지가 지영이에게 전달되고 중학교 시절 그랬듯이 서로의 사정 빤히 알고 무심한 듯 연대하던 그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힘들고 아픈 것은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가능하기를....ㅠ
표제작인 [지훈이의 캔버스] 속의 지훈이는 지영이의 동생이다. 청각장애가 있어서 학업에 흥미를 잃고 많이 뒤쳐져 있다. 담임은 지훈이를 배려해 가운데 앞자리에 앉혔지만 가장 잘 보이는 그 자리에 앉아 지훈이는 낙서만 할 뿐이다. (그 일로 젊은 여선생님을 화나게 하기도) 하지만 지훈이의 낙서는 그림으로 진화해갔다. 그 진화는 날로 수준을 더해갔다. 교실의 곳곳이 ‘지훈이의 캔버스’가 되었다. 지훈이의 타고난 재능 때문이지만 그것만으로 가능했을 리가. 구박하지 않고 무심히 판을 깔아준 선생님의 배려 때문이었다. 이런 희망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면 좋겠다. 책임감이 무겁다 해도. 최근 일련의 사건들은 교사들을 사지로 몰아넣으면서 동시에 책임감 따위 벗으라고 강요하는 듯했다. 이 편의 마무리가 신파같아 보여도 절대로 코웃음을 치지 않겠다. 내가 못했다고 남도 하지 못하란 법은 없으니까. 나는 이제 퇴직을 고려하고 있는 늙은 교사지만 후배들의 교직생활에 이런 보람도 있기를 빌겠다.
마지막 [정수야 정수야] 속의 정수는 선생님이 아주 젊을 때 만났던 제자다. 삼십 년이 흘러 페이스북에서 연결되었다고 한다. 제자의 나이도 벌써 오십이 되었다. 그 또한 청각장애를 가진 학생이었고 부모 잃고 친척에게도 버려져 서울역 앞에서 미아가 되어 결국 농아원에서 살며 학교를 다니던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보청기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성실한 생활인이다. 이 작품은 교사가 그 제자에게 쓰는 편지처럼 서술되어 있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오늘은 네가 내 선생이다.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존경스러운 제자도 있는 것이다. 참 감사하게도.
먼저 퇴직하신, 말하자면 교직의 선배님이신 작가님의 (아마도 거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을 읽으며 재미있기도 했고 가슴 아프기도 했고 나를 성찰하기도 했다. 소설이니까 이야기로 가볍게 읽어도 되지만 때로 무겁게 다가오기도 하고 교직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게 되는 부분도 많있다. 겪은 이야기라 해도 이런 서사력을 가지신 선생님(수학 선생님!)이 부럽기도 하다. 표현력도 상당하시다. 사실 처음에는 쭉 구입해오던 출판사의 책이라 자동적으로 구입한 이유가 컸는데, 읽고 나니 마음껏 추천할 마음이 솟아나서 왠지 보람있다. 아담한 판형에 표지도 예쁘고 페이지당 편집도 적절해 가독성도 높다. 읽어보면 다양한 상념들이 다가올 책으로 추천한다. 소설로 보는 교육사유라 하면 어떨까.^^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