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희 선생님 연수도 들은 적이 있어 선생님의 국어수업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선생님은 경력도 많으시지만 경력이 많다고 모두 이렇게 자신의 수업이 확립되고 체계적으로 정리되진 않는다. 이학년 저학년 널뛰듯 옮겨다니고 해마다 바뀌는 업무에 적응하느라 혼을 빼고 하다보면 자신의 수업을 성찰하고 체계를 세울 새도 없이 다음 일에 휩쓸리게 된다. 핑계긴 하지만... 이렇게 훌륭하게 해내신 분도 계시니까. 이런 분이 선배님으로 계셔서, 그리고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전수해 주셔서 늘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이건 책과는 관련 없는 말이지만, 이렇게 실수업에 역량이 뛰어나신 분이 공모 교장 제안을 수락하고 그 일 또한 존경스럽게 해내신 후에 다시 평교사로 돌아오신 모든 과정에도 경의를 표한다. 작금의 나라꼴을 보더라도 훌륭한 리더는 정말 드물다. 천연기념물, 아니 멸종위기동물 정도 되는 것 같다. 실무 능력과 판단력은 커녕 제정신 똑바로 박힌 인간도 드물어.... (물론 학교는 나라꼴보다는 나음)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역할을 다하시고 미련없이 제자리로 돌아오신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 멋있다. 이 책을 읽으며 교실에서 1학년 아이들에 둘러싸여 지내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자주 연상되었다. 그게 선생님의 가장 본연의 모습이라고 이 책이 말해주는 것 같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문해력'을 표방하고 있다. 요즘 부쩍 문해력, 문해력 하는데 문해력이 무엇인가? 국어실력인가? 그것도 아주 틀리진 않지만 모든 교과 전반에 필요한 역량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말하자면 배움과 학습의 도구라는 것이다.
"문해력은 읽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를 통한 자기만의 사고의 틀을 만드는 전 과정이 문해력입니다." (18쪽)
이렇게 중요한 문해력, 어떻게 기를까? 선생님의 지론은 '가르쳐야 배운다'는 것이다. 철렁하는 말이다. 물론 교육과정 자체가 문해력을 가르치도록 짜여져 있으니 개별 교사가 각각 '문해력을 가르치고 말테다' 하고 불끈 해야만 지도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체계와 현 단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좀더 효과적인 활동을 구성하려 노력할 필요는 있다.
저자는 그 단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1)뿌리 문해력 : 태아부터 학령기 전까지. 양육자의 이야기나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정서가 안정되고 문해력의 뿌리가 내림
2)초기 문해력 : 초등 저학년. 문자학습 시기. 문해력의 골든타임.
3)기본 문해력 : 초등 중학년. 사실적 이해와 독해력이 자라는 시기
4)기능 문해력 : 초등 고학년. 추론적 읽기, 비판적 읽기 단계
각 단계를 잘 다져야 다음 단계 능력을 키울 수 있으며 이 발달은 아이가 경험하는 기회의 양과 질의 차이에 좌우된다. 이것을 제공하는 것이 어른의 몫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내 생각에 기회, 환경 이것의 차이는 학교에서도 어느정도 날 수 있겠지만 치명적 차이는 가정에서 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교사 학부모 모두를 위한' 으로 부제를 붙이고 쓰신 것 같다. 양육자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많이 제시해 주셨다. 사실 나는 '보호자들에게 어떤 기대도, 요구도 하지 말자, 내 할일만 최선을 다해 하자' 라는 태도로 살고 있어서 이 내용들이 몹시 새삼스러웠다. 아이들에게 가정활동을 제시해주고 보호자와 함께 하라고 하거나 확인을 받게 하려면 귀에 환청이 들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 성가셔 죽겠네. 학교에서 끝내지 쫌."
"누군 좋은지 몰라서 안해? 퇴근하면 피곤하고 시간없는 걸 어쩌라고. 누구 약올려?"
왜 내 귀엔 이런 소리가 들릴까....ㅠ 저자가 교장으로 계실 때와 지금 담임하는 반에서 '가정에서 책읽어주기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는데 놀랄만한 변화를 보셨다고 한다. 객관적으로. 아 고민된다. 올해는 학부모총회때 학부모 추천도서를 넣으려고 한다. 이 책을 첫번째로 넣겠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십시오.
경험과 환경 제공이라는 가정에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긴 하나 그렇다고 학교에서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학습정서(저학년) - 인지능력 - (중학년) - 사고력(고학년)의 발달과정을 염두에 두고 각 단계에 맞는 활동을 촘촘히 계획해서 해야 한다.
나의 수업에 빈 구멍을 찾아가면서 읽을 때,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어휘력'이었다. 어휘력이 중요한 줄은 알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인 훈련이 부족했다. 저자는 어휘불리기 공책 등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하셨는데 나도 이부분 고민 좀 해봐야겠다. 저자가 개발하신 교재도 있던데 그것도 좀 살펴봐야겠다.
이상과 같이 문해력 전반에 대한 내용이 1부(문해력, 가르쳐야 배웁니다) (1~4장)이고 2부는 갈래별 지도방법이다.(문해력, 갈래별 초등국어 공부로 키웁니다) (5~10장) 여기서부터는 장별로 메모하며 읽었다.
[5장 문해력 기초를 다지는 한글공부]
1학년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은 한글공부다. 이때 문자 세상에 대한 좋은 첫인상, 즉 기대와 설렘을 갖게 하며 지도해야 한다. 앞당겨 강요는 역효과를 내니 부모님들은 이걸 주의해야 한다. 방송에서 아직 학령기도 먼 아이를 쥐잡듯 잡는 장면을 보았는데, 그렇게 미리 조바심 내다가 첫인상을 망쳐버리면 시작부터 망할 수가 있다. 이때는 애를 잡지 말고 부모 본인이 애써야 한다. 읽어주고, 들려주고, 보여주고.
"문자들의 결합으로 의미가 생기고 서사가 생기는 이야기의 세계를 맛보게 했을 때 아이들은 문자 세상에 기꺼이 발을 들여놓을 것입니다." (113쪽)
"한글교육의 핵심은 다양한 읽기자료나 읽기방식을 도입하고, 배움의 단계를 촘촘하게 나눠 숱한 반복과 학습을 할 수 있게 교육과정을 짜는 데 있습니다." (114쪽)
이건 교사들이 숙고해야 할 내용들이다.
또한 저자는 "유창하게 읽을 수 있도록 소리 내어 읽게 해야 합니다" (119쪽)라며 음독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는데, 이건 학교와 가정 양쪽에서 많이 활동시켜야 할 것 같다. 최근 몇년간 중학년을 지도하면서 갈수록 '함께 소리맞춰 읽기'가 잘 되지 않아 당황하고 고민하던 중 깨달은 점이 있다. 학생들 개별 읽기 유창성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각자가 유창하지 않으니 같이 시작해도 같이 끝나지지 않아 함께읽기의 의미가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분량을 한문장 정도로만 줄이고 교사와 번갈아 읽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는데, 유창성도 제때 길러주지 않으면 학년이 올라가도 저절로 늘지 않는구나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집에서 일정 분량을 날마다 소리내어 읽은 경험을 가진 아이가 극소수였다. 난 올해 이건 확실히 강조해야겠다. 안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할 사람은 할 수 있도록.
[6장 마음을 가꿔 주는 그림책 수업]
그림책은 진입장벽이 낮고 접근성이 좋은데다 훌륭한 예술 장르이자 교육 자료이기도 해서 매니아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예전부터 해 오시던 분들 또한 꾸준히 실천하고 계시다. 저자가 우선 강조하는 건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읽어주기'이다. 특히 저학년에선 하루의 루틴에 넣어 날마다 읽어주기를 권하고 있다. 그리고 읽어준 책을 가정에서 부모님에게 소개하고 부모님 글씨로 알림장에 제목을 적어오는 방법을 소개하셨는데, 여러가지 면에서 좋아보인다. 그렇게 하면서 집에서의 읽어주기로 유도하면 자연스러울 것 같다.
읽어주기에서 더 나아가 그림책을 수업에 들여올 수 있다. 그림책 한 권으로,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수업주제에 다양한 활동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 교사의 아이디어가 관건이라고 할 만하다. 여러가지 활용 사례를 알려주셨다. 이 부분만 떼어 책을 따로 쓰셔도 좋을 정도다. 그림책 수업 관련은 무수히 많은 책들이 나와 있지만 말이다.
[7장 마음의 결을 다듬는 동화 수업]
더욱 짧은 숏폼에 익숙해져 집중력을 잃어가는 집중력 상실의 시대에 동화읽기는 집중력을 키우면서도 삶을 풍부하게 합니다. (163쪽)
위의 말씀처럼 집중력의 문제가 갈수록 심해지는 시대에 동화수업은 고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바로 그 집중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동화수업은 필요하며, 타인의 삶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 공감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동화수업은 결국 혼자 문학작품을 읽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것인데, 읽어주기를 빨리 중단해 버리면 혼자 읽어내기 어려운 아이들은 자기효능감이 떨어지고 책을 기피하게 된다. 그래서 읽어주기, 조금 더 나아가서 함께읽기(온작품읽기)는 중,고학년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필요하다. 교사의 안내(필요시 해석)이 곁들여진 온작품읽기는 개인 독해력 부족을 커버해주어 함께 읽기에 성공하게 하고, 스스로 독자가 될 수 있도록 이끄는 다리 역할을 해준다.
촘촘하게 짜여진 교육과정에 온작품읽기를 넣으려면 시수가 부족하므로 재구성이 필요하며, 이때 학년의 성취기준에 맞추어 활동 구성을 하면 교과서로만 수업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한 활동을 하면서도 성취기준은 그것대로 달성할 수 있다. 이 책에 그 예시가 잘 나와있다. 또한 성취기준에 따른 다양한 전략들도 소개되어 있어 활동 구상에 참고가 되겠다. 예시로 드신 책을 선정해도 좋고, 다른 책을 선정한다 하더라도 전략은 충분히 참고가 가능하다.
[8장 공감과 소통 능력을 기르는 시 수업]
제목에 저자의 목표가 나와있다. '공감과 소통'
"우리가 늘 만나는 상황이 시적 상황일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218쪽) 이 대목이 나와 같아서 반가웠다. 난 아주 잘하고 있진 못하지만.... 교실에 수십권의 시집을 비치해두고 자주 제공하는 것, 나도 하고 있어서 뿌듯^^;; 하지만 시집만 있다고 끝은 아니므로 저자의 구체적인 방법들은 많은 참고가 된다. 개인적으로 <시로 감정사전 만들기> <시와 동화책 그림책 연결하기> 챕터에서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생겼다. 동시캠프까지 여신 것을 보니 저자의 스케일은 역시... 때로는 행사도 필요하니 유용한 정보가 되겠다.
시를 쓰는 데 있어서 아이들에게 시적 상황의 포착이 중요함을 알고는 있는데... 나는 그걸 구체화하진 못한 것 같다. 바깥활동이나 운동회 등 생생한 경험이 있을 때 바로 시를 쓰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는데 그렇게 해도 맹탕인 '무맛' 시들이 갈수록 더 나오더란 말이지... 저자는 아이들의 '감정'과 연결지어 시적 상황들을 모으게 하고 그중에서 글감을 정해 쓰게 하셨는데 이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나아가서는 아이들이 수시로, 스스로 시적상황을 포착하고 시를 쓸 수 있다면 모두가 시인인 학급이 만들어질 것 같다. 그렇게 되기 위한 쓰기의 전략이 많이 들어있었다. 이부분만 봐도 이 책이 월척임을 알 수 있다. 안읽고 뭣들하세요. 강추.
[9장 정보를 재생산하는 설명글 수업]
여기서부터는 비문학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데, 선생님의 수업을 보니 장르에 대한 단절적인 구분보다도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수업하셨다는 느낌이 든다. 아뭏든 비문학(정보) 자료도 살아가며 많이 접할, 나아가서 생산해야 할 자료들이므로 수업에 공을 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비문학이라고 해서 재미없다고 하기엔 요즘 흥미로운 정보책들이 워낙 많으므로 적절히 활용하면 좋겠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독서취향도 정보책들을 선호하는 취향이 제법 있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어보이지만 절대 적지 않은 설명글. 이 책에 그 방법이 충실하게 나와있다.
[10장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이 만나는 주장글 수업]
마지막장은 주장글이다. 초보적 글은 저학년도 가능하겠지만 어느정도 내용을 갖추려면 중학년 이상은 되어야 할 난이도 있는 장르라 할 수 있다. 관점 파악 훈련부터 시작하신 저자의 지도가 매우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장도 뭘 알아야 할 수 있으니 배경지식을 넓히기 위한 독서를 한 점. 이건 앞장의 설명글과도 연계가 되면서 평소 나도 중요하게 여기고 하던 수업이라 반갑기도 했다. 또한 배경지식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생활 속 요청을 담은 주장글쓰기도 의미있었다. 설명글과 함께 주장글도 짜임이 중요한 장르라 짜임을 익히기 위한 활동들도 잘 안내되어 있다. 활용하신 책 제목들도 유용하다.
이렇게 총 10장의 내용을 다 읽었다. 이걸 하루에 받은 연수라고 생각하면 분량이 엄청나다. (음 뿌듯한 하루) 원격연수 눈으로만 보는 것보다 읽으면서 메모하는 이런 방식이 내게는 훨씬 맞는 것 같다. 다른 선생님들께도 추천한다. 단 정독을 해야 됨. 1장은 학부모님들, 2장은 교사의 마음을 두드릴 내용들이 가득 들어있다. (교사는 1,2장 모두 유용) 지식과 경험, 노하우의 보고를 이렇게 엮어서 내어주신 것에 감사하며 긴 메모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