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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Eun Lee님의 서재
  • 롱빈의 시간
  • 정의연
  • 13,500원 (10%750)
  • 2024-01-15
  • : 457
경기도 다낭시라는 말이 있다. 베트남의 중부 도시 다낭은 비행시간 5시간 남짓한 가까운 거리, 이국적인 야자수와 한해 내내 따뜻한 기온, 바다와 산이 만나는 곳이고, 2010년 이후에는 휴가 기간이 길지 않을 때라도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가성비 좋은 휴가지가 되었다. 그렇다보니 우리가 많이, 그리고 자주 가는 곳이 된 "경기도" 다낭시.

50년전, 그곳에 한국 군인들이 갔다. 다낭에 처음 가서 가족과 시간을 보냈을 때 내가 몰랐던 일이다. 우리는 쇼핑을 하고 호텔 수영장에 갔고 마사지를 받았다. 그런데 그곳에는 내가 몰랐던, 대한민국이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기억이 있다.

소설은 2024년에 월남전은 우리에게 무엇이 되었는지, 그건 옛날옛적에 끝난 얘기가 아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를 말한다. 작가는 얼핏 평이해보이면서도 세심하게 다듬어진 언어로 촘촘하게 엮인 한국 현대사의 씨실과 날실에 위치한 "우리들"을 성실하게 조명한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무명 작가 20대 여성 이나와 건설 사업을 하던 월남전 참전 군인 70대 남성 구자성은 서로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긴장은 현재 2024년 한국을 지배하는 세대간/젠더간의 갈등의 정서를 닮은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힘들고, 누구나 억울하다.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하지만... 그들은 서로 듣고 싶고, 들을 수 있는가? 그들 사이에 또 다른 이들이 있다. 타국에 두고 온 자식들을 잊지 못하는 40대 여성 김집사, 평생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 둔 30대 베트남 남성 응우옌 반 푹, 그리고 롱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구자성은 보도연맹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해자가 된 피해자이다. 그러나 거기에 영화 국제시장이 갖는 종류의 나르시시즘은 없다. 그러한 개인이 갖는 모든 모순을, 한편으로는 늘 이나의 시선으로만 표현되는 그 불가능해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구현한다. 그는 일종의 블랙홀이고, 연민을 자아내고, 두렵고, 그의 생에 서려있는 폭력을 예감케한다. 구자성은 이야기 속에서는 사라지지만 그의 몸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보도연맹부터 시작했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그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와중에도 많은 참전군인들의 개인적이자 국가적인 역사에 포함될 것이다. 작가가 몇십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는지, 독자로서는 알 수 없으나 그 용기와 노동과 성실함에 경의를 표현다.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 모든 무명군인들의 용기에도.

1960년대에 있었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 흐르지 못하고 있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담화가 오가는 현대 공간이 배경이었지만, 지금 이 곳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대화는 단절되고 오물 풍선이 도착하며 언어는 점점 수위를 더해간다. 오늘 전쟁은 도처에 존재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가자, 그리고 대화가 단절된 휴전국가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이다. 사회에 살고 있는, 갈등 속에 존재하는, 모든 우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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