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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ong님의 서재
  • 아마도 사랑 이야기
  • 마르탱 파주
  • 11,700원 (10%650)
  • 2011-12-09
  • : 50

제목과 표지 일러스트를 보고 가벼운 느낌의 연애 소설이겠지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주인공 '비르질'은 한마디로 이상한 녀석이었고, 비르질이 겪는 사건 또한 이상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일들이었다.

 

어느 날 일상적인 외출 후 집에 돌아온 비르질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클라라로부터의 헤어지자는 메시지가 담긴 자동응답기. 문제는, 비르질은 클라라라는 여자와 사귄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르질의 짧은 모험이 시작된다. 친구들을 만나(대부분이 예전에 비르질이 짝사랑하다 싱겁게 포기했던 여자친구들) 다친적도 없는 마음에 위로를 받으며 실연당한 남자 연기를 하던 것에도 질린 비르질은 마침내 클라라를 찾아 나설 결심을 하게 되고, 여러 다리를 건너 마침내 그녀의 오빠 집에까지 방문하게 되지만, 잠시 후면 클라라가 오빠를 방문할거란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떠난다.

 

이렇게 스토리만 요약해놓고 보니 책을 읽은 내가 봐도 헛웃음이 나오는 어이없는 줄거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비르질의 감정의 변화들을 따라가며 읽다보면 어느새 그와 동화되어, 도대체 클라라라는 여자는 어떤 사람이고, 도대체 왜! 그런 깜찍한 장난을 쳤는지가 궁금해진다. 이 책은 불친절한 결말을 취하고 있다. 클라라가 어떤 여자인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도 밝혀주지 않는다. 심지어 비르질과 클라라가 만나지도 않는다. 비르질이 클라라의 실체에 코앞까지 접근한 순간, 그녀에 대해 알기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비르질은 미지의 여인 클라라와 만났던 순간의 다른 모든것을 기억한다. 그 파티에 참석했던 이름모를 사람들의 얼굴들까지도. 그런데 정작 중요한 클라라와 만났던 순간부터의 기억이 없는 것이다. 클라라의 머리색도, 눈동자색도, 그저 환한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비르질은 클라라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사랑할 수는 있었다. 그동안 그가 만났던 여자친구들이나, 짝사랑했다가 금새 포기했던 친구들과는 다른, 정말로 사랑할 수 있는 여자였던것이다. 그렇지만 비르질은 클라라를 잃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가진적이 없다면 잃을 수도 없는 것이므로. 비르질은 비겁한것일까, 현명한것일까? 잃기 싫어 가지지 않겠다는, 말도 안 된다 싶으면서도 이해는 되는 묘한 선택이다.

 

클라라가 어떤 여자이든간에, 성매매 알선 혐의로 경찰서도 가고, 회사에서 억지로 승진을 시키려는 바람에 노동자 조합을 찾아가 항의도 하고, 전기가 끊긴(엄밀히 말하자면 '전기를 끊은') 아파트에서 전등이 달린 탐험용 헬멧을 쓰고 생활하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녀를 쫓은 2주간의 시간동안 비르질은 살아있음을 느꼈다. 비르질을 따라 클라라의 정체를 궁금해하던 내가 이런 불친절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웃으며 책을 덮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온전히 비르질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폐소공포증도 없고 강박증도 없는, 비르질이 생각하는 '정상인'의 범주에 속하지만, '비정상적인' 비르질을 통해 보통의 인간들이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인생을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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