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주의 탄생은 그렇다고 쳐도 평범한 인간의 생일은 왜 축하하는 것일까? 그것은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환대의 의례일 것이다.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좋은 곳에 온 사람들끼리 환대하는 것은 쉽다. 원치 않았지만 오게 된 곳, 막막하고 두려운 곳에 도착한 이들에게 보내는 환대야말로 값진 것이다. 생일 축하는 고난의 삶을 살아온 인류가 고안해낸, 생의 실존적 부조리를 잠시 잊고, 네 주변에 너와 같은 문제를 겪는 이들이 있음을 잊지 말 것을 부드럽게 환기하는 의식이 아닌가 싶다. 괴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동료들이 주는 이런 의례마저 없다면 삶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로 시작된 사건이라는 우울한 진실을 외면하기 어렵다. - P31
제사는 산 자들이 정색하며 공연하는 한 편의 연극이며 주제는 기억이다. 창과 문을 열어 귀신을 환영한다는 뜻을 표하고 지방에 조상의 이름을 써서 태운다. 귀신이 어련히 알아서 자기 집을 찾으올 텐데, 뭐하러 지방에 이름까지 써서 태울까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저 영계에는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귀신들이 너무 많아서 지방에 이름을 정확히 써서 태우지 않으면 모든 귀신, 이른바 ‘온갖 잡귀‘가 다 몰려온다는 것이다. 잡초가 이름을 모르는 식물을 의미하듯 잡귀는 이름이 잊힌 귀신이다. 잡귀가 아닌 귀신은 그 이름을 불러줄 누군가가 있다. 이름을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불러 초대하면서 제사가 시작된다. - P63
떠난 사람은 루저가 아니라 그냥 떠난 사람일 뿐이다. 남아 있는 사람도 위너가 아니라 그냥 남아 있는 사람일 뿐이다. - P122
대체로 젊을 때는 확실한 게 거의 없어서 힘들고, 늙어서는 확실한 것밖에 없어서 괴롭다. 확실한 게 거의 없는데도 젊은이는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잘 모르는 채로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만 한다. 무한대에 가까운 가능성이 오히려 판단을 어렵게 하는데, 이렇게 내려진 결정들이 모여 확실성만 남아 있는, 더는 아무것도 바꿀 게 없는 미래가 된다. 청춘의 불안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 P137
사공 없는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보면 도달하게 되는 어딘가. 그게 미래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 - P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