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LAYLA 의 서재
  • 상황과 이야기
  • 비비언 고닉
  • 14,400원 (10%800)
  • 2023-09-05
  • : 11,325

애컬리는 자신이 가족사의 퍼즐을 맞추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사건들을 차례로 배열하고 세부 내용을 정확히 기술하기만 하면 전부 착착 들어맞을 거야, 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무엇 하나 착착 들어맞지 않았다. 얼마 후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존재가 아닌 부재를 묘사하고 있구나. 이것은 실제로 이루어지지 못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누구였는가? 나는 누구였는가? 왜 우리는 서로 엇갈리기만 했을까? - P25
상상력으로 쓰는 글에서는 대상에 대한 공감이 꼭 필요한데, 정치적 올바름이나 윤리적 온당함 때문이 아니라, 공감이 없으면 마음이 닫혀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감이란 상대에게 감정으 ㄹ이입함으로써 입체감을 부여하는 수준의 공감이다. 우리 독자들로 하여금 타자를타자 자신의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감정이입이야말로 글을 진전시킨다. 서술자는 아무 잘못 없는 사람, 서술 대상은 괴물로 묘사되는 회고록은 상황이 정지 상태로 머물러 있기에 실패작이 된다. 드라마가 깊어지려면, 괴물의 외로움과 무고한 자의 교활함이 보여야 한다.- P43
늙어가는 것이 아우슈비츠보다 더 나쁘다고 그는 결론 내렸다. 무시무시한 강제수용소보다 "늙어가는 경험의 내적 공포와 고통이 더 크다." 이 공포와 고통이 그의 화두가 되었다. -늙어감에 대하여- P72
젊을 때 우리는 공간과 시간의 한가운데 서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공간 감각은 사라지고 오로지 시간만이 밀려들어 와 일상을 채운다. 우리는 늘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우리는 자신에게 이방인이 된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반대편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얼굴에 경악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흠칫 놀란다. 영영 헤어나지 못할 이 충격이 매일같이 우리를 따라다닌다. 자연계 역시 낯설어진다.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산을 바라보고 싶은 이가 있을까? ..문화적 노화는 더 심각하다. 우리는 주변 세계와 하나 된 기분을 더는 느끼지 못한다. 예술, 정치, 패션의 새로운 발전이 당황스럽거나 노엽거나 불편하다. 거기에 우리의 경험이라곤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 P73
모든 인간의 생에에는 현재의 자신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시점이 있다. 세상이 더 이상 우리의 미래를 믿지 않고, 더 이상 우리의 가능성을 보지 않으려 한다는 깨달음이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온다. 어느덧 우리는 잠재력 없는 생물체가 되어 있다. 이제는 누구도 우리에게 "뭘 하고 싶으세요?"라고 묻지 않는다. 이룬 바를 이미 계산당하고 저울질당한 노인들은 폐품 판정을 받는다. - P77
인간은 가장 깊숙한 내면의 자아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그리고 가장 깊숙한 내면의 자아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때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아! 그러려면 그 깊숙한 곳으로 뛰어내려야 한다. - P78
프리쳇은 회고록에 대해 "중요한 건 필력이다. 인생을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칭찬받을 수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 P108
삶이란 한 사람의 인격을 완전히 형성하는 사소한 선택들의 합에 지나지 않는다. 신사는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지 않는다. 남자는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지 않으며, 이런 말을 하고, 저런 말은 하지 않는다. - P127
외로움에 대한 혐오는 삶의 욕구만큼 자연스럽다. 그게 아니라면 인간은 굳이 문자를 만들지도, 한갓 짐승의 소리에서 단어를 빚어내지도, 그저 남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려고 대륙을 횡단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P165
이 책은 15년간 예술대학 석사 과정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으로부터 나왔다. 그동안 내가 깨달은 점이 있다면,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극적 표현력, 구조를 이해하는 본능적 감각, 서술의 표면 아래 언어를 가라앉히는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P183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