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민의 첫 시집 『에로틱한 찰리』에서 오은 시인은 해설의 말미에 세계의 불화를 떠안고 있다가 놓아주기 위해 접는 일을 선택하는 시인으로 여성민을 읽고 있다.
『에로틱한 찰리』를 이미 읽은 독자라면 그의 첫 소설집 『부드러움과 해변의 신』 에서 ‘구조를 변형하는 일’,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일’에 그의 글쓰기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확장되어 가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민의 소설은 일반적인 소설의 패턴을 거부하면서 단단해진다. 어떻게든 패턴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말랑말랑해진다.
확신할 수 없는 장면들의 연속, 낯선 장면들 속에 끊임없이 무언가에 몰두하는 존재들…….
다정하지만 다정하지 않은.
불편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자연스럽지 않지만 자연스러운.
각기 다른.
수평선.
그냥 사랑에 빠진 거에요. 세 명의 아일랜드인처럼. 하지만 그것도 모르겠어요. 아일랜드인이지만 사랑에 빠지지 않은 아일랜드인일 경우도 있으니까요.
불가능해요. 아일랜드인이지만 사랑에 빠지지 않은 아일랜드인일 경우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어요.
물론 가능성은 낮지만. 애인이 빈 잔에 다시 흑맥주를 따랐다. 사랑에 빠진 세 명의 아일랜드인이라면 행복해 보여야 하는데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그렇다고 저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에요. 내 말은. 사랑에 빠진 행복은 아니라는 거예요. 진지하고. 단단하고. 깊이 결속되어 있지만 눈빛들, 저런 눈빛을 본 적이 있어요. 서로의 눈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어요. 나무 위에 불쑥. 기린의 눈처럼. 기린은 사랑에 빠지지 않아요. 기린은 늘 서 있지만 서 있는 기린은 서로의 눈 속에서 누워 있는 것을 찾죠. 수평선을 찾죠. 그러니까 저 세 사람은. 애인이 모자를 벗어 집사에게 건넸다. 사랑에 빠진 아일랜드인 세 사람은 아름다웠고 서로 다른 수평선을 지나왔어요. 누워 있는 사람들은. 슬펐고.
각기 다른.
슬펐고.
「애인과 시인과 경찰」 138-1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