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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림님의 서재
  •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 에코페미니즘 연구센터 달과나무
  • 15,300원 (10%850)
  • 2023-11-17
  • : 1,276

지은이들은 지구를 떠나지 않겠다는 단호함과 서로 돌보는 관계를 맺고자 하는 다정함을 가지려 했다. 전문가주의적으로 가르치려는 건조한 설명이나 외부자적 시선에 머물지 않고, 각자의 삶에서 우러난 고민을 함께 녹였다. 그렇기에 이 책은 에코페미니스트들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가지고 독자들에게 건네는 '말 걸기'이기도 하다.

- 여는 글 중에서

에코페미니즘 연구센터 달과나무에서 출간된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는 그런 책이다. 이 지구, 이 나라, 이 땅에서 사는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기도 한다. 최근, 기후위기는 코앞까지 다가온 것을 넘어섰다. 우리는 이미 기후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에코페미니즘은 기후, 환경, 돌봄과 관련한 담론을 펼칠 수 있는 광장을 마련해줄 것이다. 기후위기 사회에서 가지게 되는 고민이나 실천을 알고 싶어 책을 읽었다.


책의 서두에는 '에코페미니스트의 다짐'이 실려 있다. '우리는 모든 소수자 및 비인간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한다'는 다짐은, 이 책이 궁극적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목표와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1부 - 기후위기시대 에코페미니즘

1부 '기후위기시대 에코페미니즘'에서는 기후를 둘러싼 정치적, 윤리적 담론 등을 다루면서, '정의로운 전환'으로 나아가야 함을 제시한다. 1부에는 기후와 관련된 통계나 유의미한 지표가 많이 나온다. 기후위기는 조용하고 보이지 않게 찾아오는데, 숫자로 제시된 현 상황과 정치적 담론을 읽으며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가 내가 인지하고 있던 것보다 더 심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달라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쩌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내게 강제한 인식의 순간이 아닐까. 인식이란 모르던 것을 깨우치는 앎으로, 단지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지식과는 다른 종류의 각성이다. 늦었더라도 우리는 내가 발 딛고 나를 둘러싼 것들이 무너져내릴 수 있다는 일종의 붕괴감각을 깨워야 한다.

- 48쪽

내가 환경에 유해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말 어려운 것은 '실천'으로 나아가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 개인으로서, '실천'에 대한 방향과 정당성을 고민하지 않는 것 또한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는 15인의 발화를 통해 우리 삶의 경험을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해준다.

2부 - 흙과 자급의 기쁨

2부의 제목은 '흙과 자급의 기쁨'이다. 자급이나 소농운동, 도시농업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1인 가구로서 '자급'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자급자족하며 살려면 최소한 볕 잘 드는 베란다가 있는 집에서 흙을 뒤집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있을 때 이런 문장을 만났다.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요즘 젊은이들이 밥도 없고, 집도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허기진 삶이라고 해야 할까? 라면 한끼를 먹더라도 내 생명에게 예배드리듯 귀하게 먹어보고, 단칸방이라도 내 생명의 공간이니 신성하게 가꾸어보고, 작은 화분에라도 채소를 심어 길러 먹다보면, 어느덧 내 생명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고, 다른 생명에 소중해지지 않을까! 밥과 집을 귀하게 여기는 건 자급적 삶을 시작하는 첫길이자 아름다운 길이다. 여성해방의 길이기도 하다.

어렵게만 생각했었는데, 밥과 집을 귀하게 여기는 것만으로도 자급을 시작할 수 있다니 기분이 따스해졌다. 에코페미니즘이 말하는 자급이란 자급적 노동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내 몸과 자연의 연결성을 깨닫고 생산과 소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며 소속감과 충만함을 느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 않을까.


3부 - 몸의 안팎을 통과하기

3부 '몸의 안팎을 통과하기'는 우리 몸과 세계의 횡단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3부는 특히 흥미로운 글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이안소영 연구원의 '월경을 통해 지구와 공생하기'가 특히 신선했다.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귀찮음과 수고로움을 견뎌내는 게 어떤 혁명보다 힘든 일임을 알아갈 때였기 때문이다.

- 151쪽

이 장에서는 생리대가 여성 건강과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사회적 터부, 공짜 노동과 연관짓는다. 더 나아가 '건강한 몸'이나 '마른 몸'에 대한 강박, 그리고 자본주의적 문제까지 조명한다. 월경과 월경하는 몸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는 문장을 읽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당장 나부터도 신체를 횡단하는 상호연결성을 모르고 있었다.

이 장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의 생리대가 해외 제품보다 얇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얇은 생리대는 매끈한 신체라인을 추구하는 외모권력사회에 최적화되어 월경을 비가시화한다는 부분이었다. 월경을 소재로 하여 기후위기, 젠더, 신체, 여성 건강 문제를 엮은 내용이 흥미로웠다.

기후문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어떻게 공생할 것인가? 기후문제는 다층적인 문제들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 앞에서 우리는 희미하지만 열려 있는 길을 찾아낼 것이다. (...) 그래서 인간과 비인간 생명 모두에게 안전하고 다정한, 공생의 사회로 가는 길을.

- 163쪽

'트랜스 경험과 퀴어 상상력' 장에서는 사회적 소수자와 취약 계층이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임을 언급하면서, 타자에 대한 이해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레타 가드의 '비판적 에코페미니즘'은 포스트휴머니즘, 동물권운동, 퀴어운동이 포함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모비-딕』의 고래와 여성의 몸'도 흥미로웠다. 이 장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품인 『모비 딕』에서 고래가 가지는 상징성을 서술하며 생태여성주의 비평적 관점에서 소설에 접근한다. '고래'는 자연-물질-여성-동물-몸-에로스에 대한 메타포이며, 여성이 자연, 몸, 소유물, 상품으로 대상화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는 것이다. 고래의 기표와 기의를 재해석하며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의 몸과 그 주체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4부 - 인간과 비인간의 얽힘

4장 '인간과 비인간의 얽힘'은 비인간 존재와 인간의 공생에 대해 다룬다. 대표적으로 길고양이 이야기가 나온다. 길고양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인터넷에서 이런 말을 들어봤으리라 생각한다. '선량한 시민한테 피해를 끼치고 새를 사냥하는 고양이를 왜 돌봐줌? 사냥당하는 새는 안 불쌍하고 고양이는 귀여워서 불쌍함? 책임지지도 않을 거면서. 차라리 그 돈으로 저소득층에 기부나 해라' 같은 말들. 이 장에서는 생태를 돌보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비인간 존재의 가치도 경시하지 말아야 함을 언급한다.

비인간의 삶까지 포괄적으로 고려하는 도시 정치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물적 자원이 무엇이며 접근성은 어떤지, 또 동시에 그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물적 조건 및 담론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지 질문하고 그에 응답해나가는 커머닝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는 인간사회가 독점해왔다고 생각한 도시 내 자원을 이미 인간 아닌 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점유해오고 있었음을 인식하고, '이미 늦었다'는 비판에 관계없이 그들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커먼즈의 비배제의 원칙을 도시에서 선언하고 확장해가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정치를 함께 실현시킬 공동체를 마련해야 한다.

- 228쪽

때로 우리는 내가 환경과 나를 위해 하는 이 일이 너무 사소하지는 않은지,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효과 있을지에 대해 회의하며 좌절하고는 한다. 얼마 되지 않는 쓰레기를 열심히 분리수거하다가도, 내 기여도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에 한숨을 쉬기도 한다. 나와 비슷한 죄책감이나 좌절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를 추천한다. 에코페미니스트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며, 나를 둘러싼 생태에 대한 사유를 하고 삶의 방향을 실천할 수 있다.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는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라 다른 여성들의 삶의 경험이 녹아 있는 책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책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그리고 공동체의 다정한 이웃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

우리의 공동체는 소규모 단위에서 사회로, 국가로, 전 세계로, 그리고 지구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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