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 -박웅현
전작으로 이 작가가 쓴 여덟단어를 읽었다. 짧고 강하고 의미를 전달하는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이 그런가 문장을 연마하는 솜씨가 보통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여덟단어는 빌려봤는데, 이 책은 구입했다. 어쩐지 그래야 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책 서문을 읽어보니, “말하자면 나의 도끼였던 책들을 독자 제현에게 팔아보고자 하는 의도, 결국, 나는 광고인이니까”라고 고해 놓았다. 나 역시 그 광고에 말려든건가?
이 책을 읽어보기 오래 전에 제목을 스쳤을 때, 이 사람은 책으로 장작을 패나... 농치고 웃으면서도 괜히 오싹했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 거야” <카프카, 저자의 말, 변신 중에서>
아,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게 책이구나.
이 책은 독서강론을 정리한 내용이다. 그래서 문체가 부드럽고 대화식이다. 독서강론의 시작은 딸아이가 고교생일 때 논술과외 비용이 대학 등록금보다 더 비싸다는 소리에 미쳤군, 하며 딸 친구들을 불러 시작한게 시초란다. 능력되는 위대한 아빠군. (대학생 된 딸이 콩가루 집안 어쩌구 하는 책을 냈다는 광고를 봤다. 난 왜 이런 논외의 이야기가 더 재밌는지...ㅋㅋㅋ)
제목이 너무나 멋진 목차만으로도 논하려는 작품을 짐작할 수 있나 어디 보자.
1강 시작은 울림이다.
2강 김훈의 힘, 들여다보기
3강 알랭드 보통의 사랑에 대한 통찰
4강 고은의 낭만에 취하다
5강 햇살의 철학, 지중해의 문학
6깅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랑,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7강 불안과 외로움에서 당신을 지켜주리니, 안나 카레리나
8강 삶의 속도를 늦추고 바라보다
목차만으로 작품을 짐작할 수는 있으나 내용은 광대하여 짐작을 초월한다.
5강에서 소개한 책의 종류는, 행복의 충격, 바람을 담는 집,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그리스인 조르바, 천상의 두 나라, 지중해 오디세이, 이방인, 지상의 양식, 섬, 말테의 수기까지 10편이다. 8강에서도 10권, 그래서 이 책 한권에서 다뤄지는 책은 모두 42권이다. 헉!!!
작가의 방대한 독서량 뿐만 아니라 그 깊이를 알 수 있다.
1년에 30-40편 정도의 독서를 하며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눌러 읽는단다. 넓게 파기가 아니라 깊게 파기가 전문인가 보다. (나도 양은 어찌 따라갈 수도 있겠는데, 질을 따라가기는 어불성설이로구만. 쩝......)
보통의 서평은 책 한권을 가지고 논하는데 이건 형식이 조금은 다르다. 한 작가의 여러 작품 전반을 꿰뚫어 통찰을 했는가 하면, 여러 작가의 작품을 유사성에 따라 연계지어 놓거나, 읽은 이의 가슴에 맺혀있는 문장을 천천히 반추하여. 자신의 프리즘을 통하여 다시 빛을 입혀 배설해? 놓았다
이를테면, 판화가 이철수의 책을 소개하며
논에서 잡초를 뽑는다 /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 벼와 한 농에 살게 된 것을 이유로 / ‘잡’이라 부르기 미안하다. <이쁘기만 한데...> 라는 구절을 써 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며 유추되는 다른 문장이나 책을 슬그머니 끌어다 놓는 식이다.
직업적인 이유로 책을 많이 접한다는데, 나도 직업적인 이유로 동화를 겁나게 접하는디...(내 도 마, 언젠가 동화를 종횡무진, 총 망라한 서평을 써보리라! 흠)
다행하게도 읽은 책도 있고, 불행하게도 안 읽는 책도 있다. 더 불행한 것은 읽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어, 이런 내용이 있었나?” 하는 내용도 많다는 것이다. 흑,
나의 부족함으로는 서평을 평할 능력이 안되니 함묵하겠지만 미려한 문장으로, 철학적 재해석이 가능하고, 유사한 작품을 얼기설기 엮는 손놀림까지 그 솜씨가 참으로 현란하여, 광고인이라는 작가의 노골적인 의도대로 소개된 책들을 사서 읽어봐야만 할 것만 같은 유혹의 망에 제대로 걸려든다.
그래서, ‘책은 도끼다’ 는 나의 얼어버린 바다를 포획하는 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