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 대통령의 말 한마디.
“수능 시험에서 킬러 문항이 출제되지 않아야 한다”
6월 모평은 그 해 수능의 방향성을 보여주고, 수험생들은 그 성적을 근거로 대입전략을 짠다.
2024년 6월 모평을 앞두고 한 이 같은 대통령이 발언으로 그해 수험생과 교육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사교육 과열의 현상을 꼬집으며 궁극적으로 사교육비 경감과 공교육 정상화라는 목적의 이면에 교육당국과 사교육계를 '이권 카르텔'로 보는 시각이 담겨있다.
정말 킬러 문항을 없애면 사교육이 사라질까?
킬러 문항을 없애고 안 없애고 보다 더 큰 문제는 복잡한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다.
과도한 경쟁과 스트레스, 불평등의 심화, 학벌주의, 과도한 사교육 열풍, 흔들리는 공교육 등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책만 놓고 보면 훌륭하지만 희한하게도 어느 정부의 어떤 교육정책도 위의 문제들을 말끔하게 해결해 주지 못한다.
이 책 『킬러 문항 킬러 킬러』은 그 답답함이 담긴 소설이다.
총 14편의 소설 중 작가 장강명의 작품 <킬러 문항 킬러 킬러>가 이 책의 대표 제목이다.
장강명의 <킬러 문항 킬러 킬러>는 4장으로 된 매우 짧은 분량의 소설이다.
이 챕터는 제목 자체가 몹시 상징적이다. 킬러 문항을 없애라는 정부를 ‘킬러 문항 킬러’라고 부르고, 그런 정부를 콧방귀를 뀌며 사교육계는 자신들을 ‘킬러 문항 킬러 킬러’라고 부른다.
킬러 문항을 없앴으니,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이번 수능시험의 관건이다.
학원에서는 실수를 줄이기 위해 아이들을 문제 푸는 기계로 만들고, 학부모들은 이에 발맞춰 금지된 차세대 집중력 강화제를 찾는다.
수능시험 시 집중력 향상을 위해 아버지는 정부에서 금지한 집중력 강화제를 힘겹게 구해와 아들에게 먹이려 한다. 아들은 규칙을 위반하고 자신을 기만한 채 시험을 보라 하는 부모님이 이해되지 않는다.
아들이 결국 약을 삼킨 모습을 본 아버지의 말이 너무나 위선적으로 느껴졌다.
“시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니…
그런 말을 하는 부모가 아들에게 금지된 약을 먹이려고 설득하는 장면은 기가 막힐 뿐이다.
교육계에 휘둘리는 우리 교육계,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사교육계는 그에 발맞춰 대비를 한다.
학부모들과 학생은 그런 사교육이 건네는 손을 놓칠 수 없다. 놓치는 순간 나만 뒤처지고 못 따라간다는 불안감이 찾아오고, 사교육계는 바로 이 불안감을 자양분 삼아 몸집을 키운다.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에 맞게 즐겁게 진로를 찾아가길 바라지만 처음부터 뚜렷하게 재능이 눈에 띄지 않아 자신의 적성과 하고 싶은 일을 딱 찾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려면 그럴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이 밑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경험을 해보며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빨리 찾을 수 있는 아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부모의 입장에서 기댈 것은 무난하게 공부라도 잘하는 것이 될 것이다.
아이가 공부를 어느 정도만 해준다면 그래도 하지 않을 때보다는 비교적 진로 선택의 폭이 넓어질 거라는 믿음 때문에.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모와 아이의 갈등과 학업 스트레스는 당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자퇴를 다룬 첫 작품 이기호의 <학교를 사랑합니다:자퇴 전날>도 인상 깊다. 소설에서 보이는 풍경이 너무 현실적이라 마음 아팠다. 나도 이제야 입시의 세계에 발을 디뎠기 때문에 정확히는 모르지만, 소설 속 주인공은 평범한 가정의 평범하거나 낮은 성적의 일반고 학생의 입시경쟁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책 속의 상우는 뚜렷이 수능 공부를 해야겠다는 의지도 없어 보인다.
아직은 학교가 좋은데,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걱정하며 검정고시 준비를 권유하는 부모님에 의해 너무도 쉽게 자퇴로 내몰린다.
그래서 안타깝다. 부모의 눈에 학교는 그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아이에게 주는 다른 어떤 의미도 없다고 여기는 것일까?
학교는 자퇴를 하겠다는 아이를 붙잡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렇다면 도대체 학교의 기능은 과연 무엇인지 독자에게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만든다. 학교를 사랑한다는 마지막 상우의 말에 나 또한 목이 막히고 안타까웠다. 붙잡지 않는 학교, 떠나는 학생.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교육의 모습일까 생각해 보게 한다.
인생에 실수와 실패가 없을 수 있을까?
다양한 환경과 변수에 놓인 우리의 삶은 문제집의 정답처럼 딱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지영의 <민수의 손을 잡아요>에서도 많은 생각을 던진다.
우리의 삶은 성적표의 점수보다 실수와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내면의 단단함이 더 필요하다.
'틀릴 수 있다. 틀려도 괜찮다'고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틀린 것을 통해 몰랐던 것을 깨우치고, 다음에 더 발전하면 된다는 것을, 그리고 공식처럼 흘러가지 않는 삶의 다채로운 면들을 끊임없이 경험하고 성장해야 함을 배워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정답과 오답만을 배우고, 문제 푸는 기술만 익힌 아이들이 삶의 시련과 실패 앞에 패배감과 낙오감에 물들어 극단으로 내몰아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염기원의 <지옥의 온도>에 나오는 다음의 문장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던 문장이다.
문장을 입으로 되뇌며 나 또한 아이를 충분히 기다려줄 수 있는 부모가 되길 한없이 바라본다.
"
참아주셔야 했어요.
기다려주셨어야 했어요.
뭐라고?
엄마가 그랬어요.
상대가 실패하고 방황하더라도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여백,
그게 사랑이래요.
p.172 염기원 <지옥의 온도>中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